역사, 인물 관련

민중의 시대, 통일의 시대를 노래하던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며

道雨 2021. 2. 17. 11:37

민중의 시대, 통일의 시대를 노래하던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민중가이며, 만일 우리가 새로 국가를 만든다면 이걸로 하면 좋겠다 싶은 노래, ‘산 자여 따르라’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말을 만든 백기완 선생이 타계하셨습니다.

 

재수하고 있던 1987년, 6월 항쟁으로 인해 군부정권이 표면적으로나마 항복하고 직선제 대통령제가 부활됐을 때, 그는 대선 후보로 나왔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후보의 단일화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민중후보의 단일화를 외치며 후보 자리를 내려놓았지요. 그렇지만 그런 일이 있었어도 가끔 거리에 나가면 대학생들이 소리를 높여 외치는 소리를 듣곤 했었습니다. “가자, 가자, 백기완과 함께 민중의 시대로!”

 

그는 시인, 노랫꾼이었습니다. 또 통일꾼으로 불리우고 싶어했고, 많은 이들이 그를 통일꾼으로 생각했습니다. 절절한 분노의 상징이었고, 꺾이지 않는 의지의 표상이었습니다. 그의 시 묏비나리를 다시 읽어보는 것으로 그 분을 추모하고자 합니다.

부디 편히 영면하소서. 당신이 만들고자 했으나 못 만들고 간 세상은 우리가 만들 것이고, 우리가 못 만들면 우리의 후배들이 만들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계셔주어 감사했습니다.

 

시애틀에서…

 

 

묏비나리

                                    백기완


맨 첫발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 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발띠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아니 그 한발띠기로 언 땅을 들어올리고
또 한발띠기로 맨바닥을 들어올려
저 살인마의 틀거리를 몽창 들어엎어라

들었다간 엎고 또 들었다간 또 엎고
신바람이 미치게 몰아쳐 오면
젊은 춤꾼이여
자네의 발끝으로 자네 한 몸만
맴돌라 함이 아닐세그려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이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을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시라

돌고 돌다 오라가 감겨오면
한사위로 제끼고
돌고 돌다 죽엄의 살이 맺혀 오면
또 한 사위로 제끼다 쓰러진들
네가 묻힐 한 줌의 땅이 어디 있으랴
꽃상여가 어디 있고
마주재비도 못 타 보고 썩은 멍석에 말려
산고랑 아무 데나 내다 버려질지니

그렇다고 해서 결코 두려워하지 말거라
팔다리는 들개가 뜯어 가고
배알은 여우가 뜯어 가고
나머지 살점은 말똥가리가 뜯어 가고
뎅그렁, 원한만 남는 해골 바가지

그리되면 띠루띠루 구성진 달구질 소리도
자네를 떠난다네
눈보다만 거세게 세상의 사기꾼
협잡의 명수 정치꾼들은 죄 자네를 떠난다네

다만 새벽녘 깡추위에 견디다 못한
참나무 얼어 터지는 소리쩡,쩡,
그대 등때기 가른 소리 있을지니

그 소리는 천상
죽은 자에게도 다시 치는
주인놈의 모진 매질 소리라

천추에 맺힌 원한이여
그것은 자네의 마지막 한의 언저리마저
죽이려는 가진 자들의 모진 채쭉소리라
차라리 그 소리 장단에 꿈틀대며 일어나시라
자네 한사람의 힘으로만 일어나라는 게 아닐세그려
얼은 땅, 돌뿌리를 움켜쥐고 꿈틀대다
끝내 놈들의 채쭉을 나꿔채
그 힘으로 어영차 일어나야 한다네

치켜뜬 눈매엔 군바리가 꼬꾸라지고
힘껏 쥔 아귀엔 코배기들이 으스러지고
썽난 뿔은 벌겋게 방망이로 달아올라
그렇지
사뭇 시뻘건 그놈으로 달아올라

벗이여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

꽹쇠는 갈라쳐 판을 열고
장고는 몰아쳐 떼를 부르고
징은 후려쳐 길을 내고
북은 쌔려쳐 저 분단의 벽
제국의 불야성, 왕창 쓸어안고 무너져라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굽이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노래 소리 한번 드높지만
다시 폭풍은 몰아쳐
오라를 뿌리치면
다시 엉치를 짓모고 그걸로도 안 되면
다시 손톱을 빼고 그걸로도 안 되면
그곳까지 언 무를 쑤셔넣고 아......

그 어처구니없는 악다구니가
대체 이 세상 어느 놈의 짓인줄 아나

바로 늑대라는 놈의 짓이지
사람 먹는 범 호랑이는 그래도
사람을 죽여서 잡아먹는데
사람을 산채로 키워서 신경과 경락까지 뜯어먹는 건
바로 이 세상 남은 마지막 짐승 가진자들의 짓이라

그 싸나운 발톱에 날개가 찢긴
매와 같은 춤꾼이여

이때
가파른 벼랑에서 붙들었던 풀포기는 놓아야 한다네
빌붙어 목숨에 연연했던 노예의 몸짓
허튼 춤이지, 몸짓만 있고
춤이 없었던 몸부림이지
춤은 있으되 대가 없는 풀죽은 살풀이지
그 모든 헛된 꿈을 어르는 찬사
한갓된 신명의 허울은 여보게 아예 그대 몸에
한오라기도 챙기질 말아야 한다네

다만 저 거덜난 잿더미 속
자네의 맨 밑두리엔
우주의 깊이보다 더 위대한 노여움
꺼질수 없는 사람의 목숨이 있을지니

바로 그 불꽃으로 하여 자기를 지피시라
그리하면 해진 버선 팅팅 부르튼 발끝에는
어느덧 민중의 넋이
유격병처럼 파고들어
뿌러졌던 허리춤에도 어느덧
민중의 피가 도둑처럼 기어들고
어깨짓은 버들가지 신바람이 일어
나간이 몸짓이지 그렇지 곧은 목지 몸짓

여보게, 거 왜 알지 않는가
춤꾼은 원래가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눈짓 말일세
그렇지
싸우는 현장의 장단 소리에 맞추어

벗이여, 알통이 벌떡이는
노동자의 팔뚝에 신부처럼 안기시라

바로 거기선 자기를 놓아야 한다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 줌의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한 춤꾼은 비로소 굽이치는 자기 춤을 얻나니

벗이여
저 비록 이름없는 병사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어깨를 쳐거대한 도리깨처럼
저 가진 자들의 거짓된 껍줄을 털어라
이 세상 껍줄을 털면서 자기를 털고
빠듯이 익어가는 알맹이, 해방의 세상
그렇지 바로 그것을 빚어내야 한다네

승리의 세계지
그렇지, 지기는 누가 졌단 말인가
우리 쓰러졌어도 이기고 있는 민중의 아우성 젊은 춤꾼이여
오, 우리굿의 맨마루, 절정 인류 최초의 맘판을 일으키시라

온몸으로 디리대는 자만이 맛보는
승리의 절정 맘판과의
짜릿한 교감의 주인공이여

저 폐허 위에 너무나 원통해
모두가 발을 구르는 저 폐허위에
희대를 학살자를 몰아치는
몸부림의 극치 아, 신바람 신바람을 일으키시라

이 썩어 문드러진 놈의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다
마지막 심지까지 꼬꾸라진다 해도
언땅의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젊은 춤꾼이여
딱 한발띠기에 일생을 걸어라



[ 권종상 ]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5095&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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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백기완 선생님, 안타깝다" 애도... 유족이 전한 물건 2개

'통일 손수건'과 책 '버선발 이야기' 답례... 장례위 "노동문제 해결에 나서 달라"

 

 

 

▲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다.

 

"평소에 백기완 선생님을 여러 차례 만나 뵙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술도 나눈 적도 있고, 집회 시위 현장에서도 늘 뵈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안타깝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를 조문한 뒤 유족들에게 전한 애도의 말이다. 이에 유가족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백기완 소장의 정신이 담긴 선물 두 가지를 전달했다. 백기완 소장이 통일이 되면 북녘에 있는 돌아가신 어머님께 가지고 가 무덤에 올려드리려고 했던 손수건과, 고인의 마지막 저서이기도 한 노나메기 사상, 민중사상이 담긴 <버선발이야기>(오마이북 출간)였다.

이날 오전 9시 10분께 서울대병원 3층 장례식장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의 안내를 받아 고인의 영전에 술을 한 잔 올렸다.



"세월호 진상규명 힘써주시면 좋겠다"... "알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족과 장례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나 애도의 뜻을 표했고, 고인의 아들 백일씨는 "살아생전에 오셨으면 아버님의 말씀도 듣고 그랬을 텐데 안타깝다"면서 "조문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이어 큰딸인 백원담 교수는 "세월호 진상규명이 선생님의 뜻이었다"면서 "진상규명이 안 되면서 사회적 우려들이 많은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될 수 있도록 힘써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알겠다"라고 대답했다.

호상원인 채원희씨는 고인의 살아생전인 2017년 4월께 남북정상회담 전에 문재인 정부에 공개적으로 남긴 통일에 대한 당부의 말이 담긴 동영상(2분)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동영상을 끝까지 봤고, 비서실을 통해 동영상을 전달받으라고 지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백기완 선생의 당부(동영상) 

채원희씨는 이 동영상과 관련해 "백기완 선생님이 심장수술대에 오르기 직전에 남긴 영상"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통일에 적극 나서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노동존중 어디 있습니까' 글귀... 멈춰서 본 문 대통령

한편, 장례위원회 양기환 대변인은 장례위의 입장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생전 고인이 중요하게 여긴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선생님이 마지막 글로 남기신 말씀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김진숙 힘내라, 노나메기 세상, 노동해방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노동자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삶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대통령이 문제 해결에 나서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40일 넘게 단식한 송경동 시인도 와있는데, 선생님의 뜻인 김진숙 복직에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잘 알겠다"고 대답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백기완 선생의 조문을 마치고 장례위원회 양기환 대변인의 안내를 받으며 장례식장을 나설 때 장례식장을 함께 지키고 있던 김소연 장례위 상임집행위원장과 김수억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대표와 유흥희 집행위원장, 박성호 한진중공업 전 열사추모사업회 대표 등이 ‘비정규직 피눈물’, ‘노동존중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나서는 자리에, 장례식장을 함께 지키고 있던 김소연 장례위 상임집행위원장, 김수억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대표, 유흥희 집행위원장, 박성호 한진중공업 전 열사추모사업회 대표 등이 '비정규직 피눈물' '노동존중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잠깐 멈춰 플래카드에 쓰인 글귀를 보고 자리를 떠났다.

한평생 통일운동을 해왔던 진보 진영의 원로인 백 소장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89세였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은 오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8시이고,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한편, 서울대병원에 차려진 장례식장에는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전국 곳곳에서도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는 시민분향소가 설치되고 있다.

 

                                       ▲  고 백기완 선생 전국 시민분향소 설치 현황.
 

 

글: 김병기(minifat)

유창재(karma50)

 

 

*** 주 :  '노나메기'는 '함께 땀 흘리며 일하고 함께 잘 살자'는 뜻의 순우리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