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약탈, 윤석열이 먼저 답해야 할 것

道雨 2021. 7. 6. 10:16

약탈, 윤석열이 먼저 답해야 할 것

 

지난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 선언은 그로서는 최선의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많은 언론이, 심지어 <동아일보> 같은 보수 신문도 윤 전 총장이 ’정권 교체’를 외치긴 했지만 그걸 넘어서는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진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평생 누군가의 비리를 캐는 검사로 지냈고, 불과 넉달 전에 검찰총장직을 내던진 사람이,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나갈지’ 고민하는 생활을 했을 리는 없다. 속성 과외 받듯이 ’국정 열공’을 했다고 해도, 그에게서 비전과 정책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윤석열 자신도 그걸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러니 출마선언문의 대부분을 문재인 정부를 거칠게 공격하고, ’내가 정권교체의 최적임자’라는 걸 야당 지지자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집중했다.

“이 정권이 저지른 무도한 행태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습니다.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 정권은 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하여 계속 국민을 약탈하려 합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건 이 대목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최순실 집단과 다를 게 없는 ‘이권 카르텔’이고 국민을 약탈하는 정권이다, 이것 외엔 기억나는 부분이 없고, 사실 기억할 필요도 없다.

 

거친 수사로 비전과 정책의 부재를 가리는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처럼 보인다. 출마 선언 직후 부인 김건희씨 인터뷰로 ‘윤석열 X파일’ 논란이 다시 불거졌고, 사흘 뒤엔 장모가 요양급여 수십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

그럼에도 윤 전 총장 지지율은 예상만큼 흔들리지 않았다. 5일 공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를 보면 윤석열 31.4%, 이재명 30.3%로 양강 구도는 여전히 굳건하다.

7월1일 출마 선언을 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강력한 경제부흥 정책을 내걸고 외연 확장을 꾀한 것과 달리, 윤석열은 격렬한 ‘반문재인’ 언어로 야권 지지자를 결집하려 애썼다는 게 다를 뿐이다.

 

이것은 대선 후보 윤석열의 선거 전략이 어떨지를 예고한다.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모르나, 지난 넉달간 채우지 못한 비전과 정책을 앞으로 8개월간 충분히 갈고 닦아서 국민 앞에 제시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오로지 ’기승전-반문재인’ 기조의 선거운동에 힘을 쏟을 수밖엔 없다.

 

대통령 될 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 우리는 그런 사례를 이미 봤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나토(NATO) 총사령관을 그만둔 지 5개월 만에 미국 대선에서 승리해 백악관에 입성했다. 물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최고 군지휘관과, 현 정권과 대립하는 몇몇 사건 수사로 인기를 얻은 검찰총장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서 오로지 ‘반문재인’만으로도 대통령 자격이 있다 치더라도, 지금 윤석열이 대답해야 할 부분은 남는다. 비전과 정책을 내놓진 못해도, 현 정권을 향한 격렬한 비난의 근거는 무엇이고, 그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국민에게 말해야 한다.

 

윤 전 총장은 현 정부를 ‘약탈 정권’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누구에게서 무엇을 약탈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과 실패는 무수히 지적할 수 있다. 윤석열과 최재형 같은 이를 요직에 기용하고 유능한 인사를 폭넓게 발탁하지 못한 ‘인사 실패’는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올려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해서 ‘약탈’이라고 비난하는 게 타당한가.

 

윤 전 총장은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으로 청년, 자영업자, 저임금 근로자에게 고통을 안겼다”고 말했지만,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서 좀더 세금을 걷겠다는 ‘포퓰리즘’이 약탈인가. 윤 전 총장이 ‘약탈 정권’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건 기득권층의 이익, 검찰과 같은 권력기관의 이익은 아닌가, 대답해야 한다.

평생을 증거에 몰두해온 윤 전 총장이 ‘약탈 정권’의 의미를 “청년과 서민의 꿈을 빼앗은 것”이라고 문학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을 거라 본다.

 

앞으로 윤 전 총장의 가장 큰 라이벌은 민주당 대선 후보가 아니라, 자신의 임명권자였던 문 대통령이 될 것이다. 윤석열 본인이 잘해서 지지율을 올리기보다, 현 정권의 철저한 실패에 기대야만 지지율을 유지하고 반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꿈꾸는 이가 이렇게 수동적이고 과거 회귀적이고 위태로운 모습을 보는 건 슬픈 일이다.

 

 

박찬수,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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