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똑같은 질문, 새로운 답변

道雨 2021. 11. 8. 09:21

똑같은 질문, 새로운 답변

 

*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카드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 교수의 사진. 카드 교수가 노벨경제학상 수상 소식을 들은 직후 노벨위원회와 인터뷰를 하던 중 그의 아내가 찍은 사진이다. 노벨위원회 트위터(@NobelPrize)에서 갈무리.

 

 

“무심히 아들의 경제학 시험지를 들여다보던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예전에 그가 풀었던 문제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즉시 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30년 전 저희에게 출제했던 문제를 그대로 내시다니요.’

그러자 이런 태평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걱정 말게. 문제는 같아도 해답이 다르니.’” 문제 하나로 30년을 우려먹는 게으른 교수를 비꼰 고 정운영 교수 칼럼의 한 구절이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똑같은 질문에 대해 새로운 답을 찾으려는 시도에 때로는 큰 보상을 주기도 한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데이비드 카드 교수가 그 예이다.

 

노벨위원회가 카드 교수를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언급한 대표적 업적은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효과’이다. 카드 교수는 1992년 미국의 뉴저지주가 시간당 최저임금을 4.25달러에서 5.05달러로 약 20% 인상한 결정이 패스트푸드 업체의 저임금 노동자 고용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다.

그는 인접 주인 펜실베이니아주의 패스트푸드 업체의 고용 상황도 함께 조사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없었기 때문에 좋은 비교 상대였다. 카드 교수는 펜실베이니아에 비해 최저임금이 오른 뉴저지에서 고용 감소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고용을 줄여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는 학계 통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후 최저임금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변화하였다. 전미경제학회 회원들에게 한 조사에서 위 주장의 동의 비율은 1978년 90%에서 2000년 46%로 크게 줄었다. 2015년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경제학계의 권위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시간당 15달러의 ‘급격한’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이라는 주장에도 21%만이 동의했다.

 

카드 교수의 수상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편에서는 이를 정책 정당성의 직접적 논거로 삼고, 반대편에서는 카드 교수조차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해 유보적이었다며 반박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모두 카드 교수가 그토록 거리를 두려고 했던 ‘이념적 태도’이다.

 

카드 교수의 공헌은 ‘가격(임금)이 오르면 수요(고용)가 줄어든다’라는 ‘경제원론의 명제’를 반박했다는 것에만 있지 않다. 지금이야 정부가 민간 데이터를 통해 실시간 고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지만, 30년 전에는 달랐다.

카드 교수는 연구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 이전과 이후, 뉴저지와 펜실베이니아의 400개가 넘는 업체에 전화나 인편을 통해 고용 자료를 수집했다. 당시로서는 전례가 드문 일이다. ‘부정확한 2차 자료에 쉽게 의존하기보다, 1차 자료를 발굴하여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태도는, 경제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최저임금에 관한 인식의 변화 과정이다. 카드 교수의 선구적 연구가 그 촉매제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탁월한 개인의 한두 편의 논문이나 정부의 보도자료로만 돌릴 수 없다. 2000~2015년 미국의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대한 실증연구는 60편이 넘는다. 이러한 연구의 축적을 통해 ‘오래된 질문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형성된 것이다.

 

“이념이 아닌, 데이터에 근거하여 정책 효과를 판단해야 한다”는 카드 교수의 태도는, 2000년 이후 증거 기반 연구라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제 경제학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금을 나누어주면 낭비할 것인가?’ ‘법인세를 낮추면 투자가 늘어날 것인가’와 같은 논쟁적 질문에 대해, 추상적 이론보다 ‘자연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에 기반한 답변을 내리려 노력한다. 좋은 연구들이 쌓이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얻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전세 상한제’와 같은 논쟁적 정책을 추진해왔다. 시행 때마다 정치적 견해에 따라 찬반이 극단으로 갈렸다. 그러나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닌 결과다. 새로운 자료와 방법을 통해 이러한 정책의 시행이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것은 특정 정권의 호불호로 치환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며, 이것이 학계의 존재 이유이다. 그리고 이것이 올해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카드 교수에게서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최한수ㅣ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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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8283.html#csidx6c1189a42db7f70ab16300b09b90b1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