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거대한 전환’ 요구받는 시대, 지도자도 달라야 한다

道雨 2021. 11. 10. 09:44

‘거대한 전환’ 요구받는 시대, 지도자도 달라야 한다



지속 가능성 위협하는 난제들 산적
기후위기·포스트코로나 등 공약 흐릿
공동체 미래 보장할 대안 제시하길

 

20대 대통령 선거의 대진표가 사실상 확정된 지금, 한국 사회 전체가 요소수 공급 차질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직접적 원인은 중국이 요소수 수출을 통제한 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중국의 오스트레일리아산 석탄 수입 금지와 탄소 감소 정책에 따른 광산 폐쇄 등, 국제정치와 기후위기 대응 문제가 얽혀 있다.

게다가 요소수는 일례일 뿐, 기후위기는 국제정치와 맞물려 글로벌 공급망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식량을 1순위 후보로 꼽는다. 자급률이 45%대에 머무는 식량이 공급 차질을 빚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드높지만, 원론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2018년 봄에 닥친 초미세먼지는 눈앞에 ‘지옥도’를 펼쳤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와 해류 흐름의 변화가 일으키는 극단적인 홍수와 가뭄, 화재 같은 재앙에 견줄 바가 못 된다. 하지만 초미세먼지를 잡겠다며 벌였던 호들갑에 비하면, 지금 우리 사회는 더없이 한가해 보인다.

기후위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최근 세계 과학자들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억제하기 위한 탄소중립 시기를 기존의 2050년에서 10년 이상 앞당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한테서도 기후위기에 맞설 비장한 태도나 이렇다 할 공약을 찾아보기 어렵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국가 지도자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퇴임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대표적이다. 메르켈 총리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전략을 앞장서 제시하고, 산업계와 국민을 설득해왔으며, 이를 국가경제 경쟁력에 접목하는 데도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이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유력 대선 후보들의 인식과 태도는 안타깝기만 하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외려 2080년까지로 설계된 탈원전 전략을 폐기하겠다고 나섰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국가 지도자의 역할이 막중한 이유는, 무엇보다 기존 체제로부터의 ‘거대한 전환’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인류세’라고 불리는 현 단계의 지구 환경이 몰락을 향해 치닫고 있는 필연적인 국면이다. 인류에 의해 인류 자신뿐 아니라 지구 전체를 존속의 위기로 내몰고 만 것이 기후위기다. 자연환경에 대한 무한 착취, 최대의 이윤 창출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고 체계가 근본적인 원인이고, 그 원인을 해소하지 못하면 탄소중립도 불가능하다. 국가 지도자들이 아니고서 누가 이 전환을 앞에서 이끌 수 있겠는가.

 

코로나19 위기도 기후위기와 동전의 양면 관계다. 코로나19가 위력을 잃는다 해도, 인류를 위협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간헐적 팬데믹 시대’가 올 거라고 예측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인류가 자연환경을 파괴해 바이러스의 숙주와의 거리를 좁혀놨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반복을 최소화하기 위한 근본 대책은 기후위기 대책과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는 불과 2년 사이에 가뜩이나 심각하던 부의 편중과 양극화를 빠르게 악화시켰다. 이 질주에 제동을 거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최우선 목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지금 대선 후보들은 이렇다 할 재원 대책도 없이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냐, ‘자영업자 50조원 손실보상’ 지급이냐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기에 바쁘다. 정책 공약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구조를 전환하는 일관된 방향성을 보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기존의 구조를 방치하거나 외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줄기를 잡는 후보라면, 아무리 재정 투입을 늘리겠다고 약속해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헤쳐가야 하는 국가 지도자로 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위기도 눈앞의 재앙으로 닥쳐왔지만, 대선 후보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이 문제들 역시 근본 원인은 불평등에 있다.

인구 감소는 성차별과 경제 양극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천문학적인 재정을 들이고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근본적인 원인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지방 소멸 위기는 지역 인구 감소와 직접 맞닿아 있고, 지역 인구 감소는 갈수록 서울과 수도권으로 돈과 일자리가 집중되는 지역 불평등 구조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기성 체제의 기득권을 해체하고 더 평등한 구조를 세워야 풀릴 문제다.

 

다음 대통령이 맞게 될 과제들은 이전 대통령들이 경험하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들이지만, 우리가 그동안 구조적 원인을 방치해두는 바람에 악화시킬 대로 악화시킨 오래된 문제들이기도 하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공동체의 생존과 지속성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 대선은 우리 정치사에서 낡은 질서를 허물기 위한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고, 이행 전략을 구체화하는 대전환의 일정으로 기록돼야 한다.

후보들의 분발과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으로, 향후 5년뿐 아니라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대선이 되기를 바란다.

 

 

[ 2021. 11. 10  한겨레 사설 ]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018629.html?_fr=mt0#csidx39d9daa364e152cae67006502128ff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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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과 윤석열의 대결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재명 전 경기지사로 결정된 데 이어, 국민의힘 후보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으로 결정됨에 따라 양대 정당의 경선이 끝나고 본선 경쟁이 시작됐다. 이변이 없는 한 이번 대선의 최종 승자는 두 후보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선거의 의미를 이재명 대 윤석열의 대결이라는 프레임 안에서만 사고한다면 한국 정치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것이다.

 

이번 대선은 ‘비호감 선거’라고 불릴 만큼 두 유력 후보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회의적인 유권자가 많다. 심지어 지지의 배경에도 부정적 동기가 작지 않다. 윤석열은 절대 안 되니 이재명을 찍는다거나, 민주당은 절대 안 되니 윤석열을 찍는다는 식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누가 당선되어도 출발점부터 지지기반이 너무나 좁고 국정수행에 파열음도 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치를 회피하면 정치는 더 망가질 것이다. 직시해야 한다.

 

이런 대결정치는 두 인물의 특성에 기인한 면도 있겠지만, 왜 그런 두 인물이 최종 후보가 되었을지를 생각하면 더 깊은 구조적 맥락을 묻게 된다. 두 후보의 공통점은 양당 핵심 지지층의 열망을 가장 확실히 실행할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본선에서 외연을 넓히는 전략은 그다음 문제다. 이재명 대 윤석열 구도는 그동안 심화된 정치 양극화와 진영대결이 차기 정권에서 더욱 격화되고 공고화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선거 과정에서 그런 대결의 정치가 계속된다면 윤석열 후보가 유리할 것이다. 그는 그동안 가족 문제, 잦은 실언, 철학의 빈곤, 정책 현안에 대한 무지 등 여러 약점을 보였지만, 그런 개인적 요인들 때문에 이재명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고 보는 건 안이하다. 2007년에 이명박 후보는 ‘전과 18범’ 소리를 들으면서도 정동영 후보를 역대 최대 격차로 이겼다. 후보 간의 전투는 민심의 지도 위에서 벌어진다. 그 지도의 형세가 더 중요하다.

 

윤석열 후보는 희망, 신뢰, 공감 같은 긍정적 에너지로 이 자리까지 온 게 아니다. 그는 분노, 증오, 복수심, 배신감 등 온갖 부정적 에너지의 응축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수모를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진보좌파를 뿌리 뽑자는 사람, 부동산세를 참을 수 없는 사람,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실망한 사람 등 이질적 동기가 섞여 있다. 그 힘이 지금 대단하기 때문에 윤 후보는 목적지도 알지 못한 채 분노의 기관차를 몰고 가고 있다.

 

그에 반해 이재명 후보가 대결정치로 규합할 수 있는 세력은 제한적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낮지 않지만 반대 여론이 거의 두배이고 그중 강한 반대층이 다수다. 정권교체 여론은 60%에 달하고 민주당 지지율은 탄핵 이전으로 돌아갔다. 부동산 가격 폭등, 검찰개혁 추진 과정의 갈등, 안희정·조국·박원순 등 거물급 인사들의 이슈를 포함해서 다양한 계기가 누적되어왔다. 그래서 윤 후보에 대한 반감으로 추가할 수 있는 우군이 많지 않다.

 

민심 잃은 여당과 비전 없는 야당, 이 불행한 구도는 몇몇 정치인의 잘못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정부·여당은 너무 잘하고 있는데 적폐세력만이 문제라고 믿는 한편의 사람들, 그 반대편에 민주당과 진보·노동 세력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적대적 공존을 공고화시켜온 것이 더 큰 맥락이다.

이런 환경에서 여당이 오류를 수정하면서 더 좋은 정치를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됐고, 보수가 탄핵 이후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기회도 날아갔다.

 

여기에는 더 넓은 제도적, 사회적 맥락이 있다. 근본적인 배경은 현재의 양당 독점 체제다.

대통령제와 지역구 승자독식 선거제 아래에서 치러진 지난 총선 결과, 1, 2당의 의석이 전체의 94.3%에 달했다. 또한 지난 몇년 사이에 정당 당원 수가 급증해서 현재 유권자의 20%에 달하는데, 그중 87%가 1, 2당의 당원이다. 양당의 권리당원 수도 전체 권리당원의 90%에 가깝다. 양당 대결 너머의 다양한 정치적 선호와 의제가 반영되기 힘든 구조다.

 

지금 이재명 대 윤석열의 강대강 대립 구도가 탄생한 것은 이러한 정치적 역학, 제도적 환경, 사회적 기초의 효과가 중첩된 결과다.

 

이재명인가? 윤석열인가? 이 틀에 갇혀 있는 한, 누가 당선되든 한국 정치는 영원한 도돌이표의 저주에 갇혀 있을지 모른다. 과거에 의해 주어진 선택지를 넘는 미래를 구상해야 할 때다. 그것을 위해 각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두 후보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길 기대한다.

 

신진욱ㅣ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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