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대선 후보가 말해야 할 시대정신

道雨 2022. 2. 21. 12:14

대선 후보가 말해야 할 시대정신

 

 

대선이 이제 스무날도 남지 않았다. 장안에 회자되는 대로 역대 최고의 비호감 대선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네거티브는 그칠 줄 모른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상식적으로 투표 포기층이 늘어나야 하는데, 그 반대로 83% 이상이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한다. 상대방 후보에 대한 혐오가 대선의 저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당선되든 60%가 반대하고 40%가 극도로 혐오하는 상황에서 국정을 잘 이끌 수 없다. 정녕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전환의 시대에 대선 국면마저 시대정신이 담론으로 부상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너무도 암울할 것이다. 지금 대선 후보가 반드시 말해야 할 시대정신은 코로나 이후 사회가 맞은 6대 위기와 이 극복을 위한 ‘거대한 전환’이다.

 

불평등의 위기는 사회를 붕괴시킬 지경에 이르렀다. 2022 세계 불평등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0%가 전세계 소득의 52%(한국 46.5%), 자산의 76%(한국 58.5%)를 점유하고 있다. 생산성이 저하하고 기업의 평균 이윤율은 46%에서 10%대 이하로 떨어지고, 전세계 부채 총액은 272조달러(약 30경3062조원)에 이를 정도로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았다.(Global Debt Monitor: Attack of the Debt Tsunami) 자본이 노동을 유연화하고, 공공영역을 사영화하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금융수탈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 위기를 돌파하면서, 불평등은 나날이 치솟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일제 환산 고용률은 2021년 58.8%에 지나지 않으며(유경준 의원 분석자료), 비정규직 노동자는 공식 848만여명, 비공식 1100만에 달하며, 이들의 평균 월급은 172만8천원에 지나지 않는다.(<통계로 본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는 인류 문명의 지속을 위협하고 있다. 1만년 동안 4도가량 오른 지구의 평균기온이, 최근 1백년 만에 1도가 상승하였다. 시속 4㎞의 속도로 걷던 인간이 시속 100㎞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로 가는 것처럼, 25배에 이르는 빠른 속도로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대형 산불, 역대급의 홍수, 폭설, 가뭄, 폭염, 한파, 태풍, 미세먼지가 일상화하고 있다. 빙하가 녹고, 바다의 수면은 매년 평균 3.4㎜가 높아지고 있다.(NASA)

기후위기와 오염, 서식지 파괴로 동식물의 38%가 멸종위기에 놓였다.(국제자연보존연맹)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이 순 영점에 도달하지 않으면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디지털혁명과 4차 산업혁명, 신자유주의 체제가 어우러져 노동은 노동운동의 종말을 말할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플랫폼들은 지대의 형식으로 착취하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불안정 노동이 폭증하고 있다. 한 예로 24억명이 무료로 글을 올리는 노동을 한 덕에, 2020년에 페이스북(현 메타)의 순이익이 매출의 38%인 무려 39조원에 이르는데, 고용 노동자는 5만8604명에 지나지 않는다.(www.statista.com)

“2020년에 한국 제조업 일자리 1만개 당 로봇 대체율이 868대에 달할”(세계로봇협회) 정도로 4차 산업혁명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다. 노동운동 자체가 무력화한다. 노동자로 존재하지도 못한 채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남긴 부스러기 일을 하는 유령노동자가 증대하고, 노동자가 노동거부로 맞서면 이제 자본가들은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위기는 동아시아에서 전쟁의 파고를 높이고 있다. 생산성이 저하하고 부채가 증대하자,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저가상품을 수입하고, 금융정책으로 달러를 다시 환류시키고 있다.(한지원) 이로 인하여 미국에서는 중간층의 노동자들이 몰락하고, 이들은 트럼프와 같은 극우 지도자를 지지한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경제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였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태평양을 내해로 간주하고 전략을 구성한다. 이 토대 위에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소련 대신 새로운 적과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상실한 정당성을 회복하고,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패권을 유지하고 무기 수출로 적자를 메우기 위하여 인도와 호주까지 끌어들여 중국 포위 전략을 강행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포위 전략이 첨예하게 마주치고 있는데, 나토의 확장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중국과 한 편이 되었다. 이 바람에 우크라이나와 대만, 한반도가 전쟁의 위기에 놓였다.

 

우리는 5~6년 단위로 팬데믹을 겪는 간헐적 팬데믹 시대로 접어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3년째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으며, 사람살이의 핵심인 관계를 단절시키고 있다. 확진자가 4억2천만에 이르고, 590만명이 넘게 사망했다. 디엔에이(DNA)를 역전사하면서 오류가 자주 발생하는 아르엔에이(RNA)-바이러스의 특성상 수많은 변이들이 만들어지고, 그중 몇몇은 백신을 무력화하며 돌파감염을 일으키고 있다.

설혹 올해 후반기에 코로나를 풍토병화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5~6년 주기로 또 다른 팬데믹을 맞을 수 있다. 근본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빈틈’의 숲마저 파괴한 탓과 세계화 때문이다. 오랫 동안 숲속의 동물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던 바이러스들이 완충 구실을 하던 숲마저 사라지자, 인간과 접촉하면서 인수 공통의 바이러스로 변형을 하고, 그중의 몇몇이 세계화의 고속도로를 타고 퍼지며 팬데믹을 일으키고 있다.

 

민주주의의 토대인 공론장은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붕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지속되면서, 자본과 국가와 거리를 두고 제4부의 역할을 하던 언론들이 자본에 포섭되거나 잠식되기 시작하였다. 디지털 혁명 이후 주술적 담론과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반향실효과(echo chamber effect)와 확증편향이 증대하였다.

유튜버들은 언론 윤리나 대의는 저버린 채 오로지 돈과 이익을 위하여 선동과 조작을 일삼는다. 언론, 에스엔에스(SNS), 교육, 종교, 지식인의 장에까지 올바르고 정확한 공론을 조성하는 것이 심각하게 공격을 받거나 배제되었고, 공론장의 적인 주술과 광기, 공포, 반지성, 부족주의가 압도하고 있다.

정론지들이 SNS를 베껴서 보도하고, 진실성이나 뉴스가치보다 접속횟수에 더 치중할 정도로, 정론지와 SNS 사이의 경계 또한 많이 무너졌다. 공론장이 붕괴한 곳에 민주주의의 꽃은 피어나지 않는다.

 

이 위기의 대안은 무엇인가. 피케티의 지적대로 경제성장률을 늘 상회하는 자본의 수익률(r>g), 기술격차, 교육격차, 정보격차, 인간중심주의, 과학기술의 도구화, 도시화, 산업화 등 위기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근본 원인을 추적하면 모두 자본주의로 귀결된다.

자본주의는 확대재생산과 경쟁에 기반을 둔다. 이 체제는 탐욕과 경쟁심, 이기심을 증대시키면서, 계급갈등과 소외를 심화하고, 과학기술과 지식을 더 많은 이윤추구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오염 물질과 쓰레기,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무엇보다 권력과 결탁하여 자연과 노동을 과도하게 착취하였다.

흔히 윤리적 자본주의를 말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이 또한 미봉책이다. 3%의 성장을 유지해도 23년 만에 경제는 두 배가 되고,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나 오염물질도 두 배에 이르게 된다.(<적을수록 풍요롭다>)

이 체제가 탄소세 등 그 어떤 좋은 대안도 결국 시장체제의 상품으로 전락시켜서 무력화하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시간이 많으면 온건한 대안도 가능하겠지만, 이미 티핑 포인트를 넘어섰다. 우리에게 전환을 위해 남은 시간은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 여기서 전환하지 않으면 21세기는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다.

 

이제 탈성장과 탈자본, 국내총생산(GDP)보다, 국민의 행복지수와 생명의 다양성, 경쟁보다 협력, 개발보다 공존을 지향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돈보다 꽃을 더 추구하고,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동력이 되는 사회, 타자와 생명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욕망을 절제하면서 환희심을 느끼는 사회, 모두가 다 같이 존엄하고 평등하며 민주적이고 생태적인 공동체, 노나메기로 바꿔야 한다.

20대 대선 후보의 정책은 당연히 이 목표로 가기 위한 경로들이어야 한다. 문제는 생산성이 아니라 생산관계다. 한 예로,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102.3%인데, 자가 주택비율은 56.8%에 지나지 않고(E-나라지표), 기득권과 토건카르텔이 과잉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확대는 대안이 아니다.

국가 소유 토지의 100% 공공임대주택화와 같은 획기적 대안이 필요하다. 불평등의 핵심은 소득불평등이 아니라 자산불평등이다. 기본소득보다는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주는 사회연대소득, 출생 직후에 1억원씩 입금하였다가 20대 말에 2억원을 주는 기본자산제, 한 기업의 임금 차이를 10~30배로 한정하는 살찐 고양이법, 부유세, 글로벌 자본세와 토빈세 등의 조세개혁 없이 불평등은 완화되지 않는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는 2050년 탄소제로를 목표로 하되, 선언이 아니라 산업전반과 관련 법안을 이 목표에 맞추어 전환하지 않으면 극복이 불가능하다. 의료, 주택과 토지, 교육, 교통, 데이터, 로봇, 금융의 단계적 공공화, 특수 영역을 제외한 비정규직의 철폐, 실제 산재사고의 80%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을 포함시키고, 업주의 처벌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 마주치는 노동법 개정, 로봇의 사회화와 로봇세 신설 등의 정책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80% 이상이 불안정노동자로 전락하여 열악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며, 매년 2000여명가량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할 것이다.

아울러, 임기 내 핵과 제재해제를 맞바꾸고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을 맺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한다.

입시철폐와 대학평준화 없이는 그 어떤 교육정책도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을 네트워크하여 특성화와 재정지원,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연계하여 대학을 평준화하고, 이어서 입시를 철폐하고 교양대학을 운영하면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국립대학을 네트워크화하는 것과 함께, 지역의 문화와 산업과 연계하여 특성화하고 재정지원을 하면 된다. 예를 들어, 경북대 섬유산업학부를 경북지역의 다른 대학의 섬유산업부의 교수와 학생과 하나로 네트워크하고, 1년에 1000억원 정도씩 재정지원을 하고 이를 졸업한 이들이 대구 지역의 섬유 관련 산업체에 취업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이명박 정권에서 행하였던 부자 감세를 원래대로 되돌리면 20조의 재정이 확보된다.

우리가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 뼈저리게 인식한 것은 대의민주제의 한계다. 우선 검찰, 국세청, 국가정보원에 시민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수장은 교육감처럼 직선제로 선출한다.

현 상황에서는 물적 자본, 인맥 등의 사회자본, 대중적 인기 등의 상징자본이 많은 이들이 국회의원이 될 수밖에 없기에,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 아니라 실은 ‘기득권의 대표기관’이다. 직접민주주의로 가기 위해서는 국회부터 개혁해야 한다.

위성정당 설립이 불가능한 완전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도 되어야 하지만, 국회를 양원제로 바꾸어야 한다. 상원은 지금처럼 정당에 기반한 비례대표제로 한다면, 하원은 1만인 당 1인의 직능대표제로 하는 ‘만인민회’로 구성하되, ‘몫 없는 자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전 국민을 직업이나 직능별로 구분하고, 그 직업과 직능 안에서 무작위로 추첨을 하여 대표자를 정한다. 예를 들어 2천만 선거권자 가운데 노동자가 1000만이라면 노동자 의원으로 1000명을 추첨으로 선정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전문성을 의심하는데 아이슬란드의 경우 사안마다 전문가를 초빙하여 숙의민주제를 거칠 경우 더 전문적이고 공정한 의결을 하였다.

 

경제개혁의 경우 재벌의 여러 독점을 제한하고, 재벌에 대한 사회적,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금융과 산업, 언론의 완전한 분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며, 공기업의 공적 기능을 강화한다.

이와 함께 포지티브적 방식으로 대한민국을 첨단기술의 중소기업 중심으로 6T(정보통신기술, 나노기술, 생명과학기술, 환경에너지기술, 로봇기술, 문화기술)의 산업국가로 재편하면서, 사회적 기업 및 협동조합형 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한다.

조나스 소크는 소아마비 백신의 특허를 출원하지 않고 공유하였다. 그 바람에 매년 수십만명의 어린이가 불구를 면하였다. 5조원을 벌 수 있는데 왜 특허를 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그는 “태양을 특허내느냐?”라고 반문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렇게 했으면 이미 종식시켰다. 지금 접종률이 저조한 나라에서 만들어진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부메랑이 되어 선진국의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간헐적 팬데믹의 대안은 접종, 마스크 쓰기 등 과학적 대응과 백신의 공유와 함께, 공공의료체계를 확고히 하고 궁극적으로 무상의료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위기는 원인을 파악하고 대안을 올바로 모색할 때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유토피아의 오아시스가 말라 버리면 진부함과 무력함의 사막이 펼쳐진다.”(New Conservatism-Cultural Criticism and the Historians' Debate)

보수가 진보보다 영남이 호남보다 젊은이보다 고령자가 더 많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정권교체 프레임마저 작동하는 대선 판에서, 여당 후보가 뒤집기를 하는 길도 이런 정책들로 프레임을 확 바꾸는 것 외에는 없다. 마지막 남은 나날에 이런 정책들로 담론들이 풍성해져, 누가 당선되더라도 대한민국이 이를 지향하도록 발판을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당선되더라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고, 우리의 자식들은 우리가 남긴 부채와 오염물질, 역기능들로 생존이 위험한 지경에 이를 것이다.

 

이도흠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