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그늘은 관심 두는 게 아니라 없애는 것이다

道雨 2022. 3. 17. 10:33

그늘은 관심 두는 게 아니라 없애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나는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았다. 당선자의 유세에서 빈곤과 불평등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티브이 토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외면했던 주제는 아닌 듯하다. 후보로 선출되기 전, 그는 ‘코로나에 의한 빈곤과의 전쟁’을 차기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기도 했다. 선대위 출범 당시 기자회견에서도 “무주택 가구가 절반에 가깝고, 근로자 세명 중 한명은 비정규직이고, 여섯 가구 중 한 가구가 빈곤층”인 현실을 지적하며, 사회안전망 확충을 강조했다.

하지만 유세 활동을 시작한 뒤, 당선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만 온몸으로 외쳤다.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자, 자본주의가 이대로 가다간 모두 망한다며, 전세계에서 대안 사회 논의가 빈번하던 때였다. ‘자연’을 인간 바깥의 프런티어로 취급하고, 온갖 비용과 부담을 전가한 결과를 목격하면서, 자본주의와 기후재난의 폭력적 얽힘에 대해 경각심이 고조되던 때였다. 심지어 자본주의 위기에 누구보다 예민한 기업들이 ‘포용적’, ‘윤리적’ 같은 수사로 땜질에 돌입하고, 스타트업이 상품을 구매할 소비자가 없으면 망한다며, 실리콘밸리에서 기본소득 실험에 나선 지도 한참이 지났다.

그런데 당선자의 지난 유세는 이상했다. 시장과 정부, 규제와 혁신을 대립물로 삼으면서,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렸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국제기구들마저 포스트-워싱턴 컨센서스로 이행하고, 시장경제에서 국가 개입이 갖는 중요성을 역설한 때가 1990년대 후반이다.

전염병, 전쟁, 기후위기로 지구가 휘청거리는데, 당선자는 ‘개발’, ‘성장’, ‘탈원전’을 주문처럼 반복했다.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하자면 분배가 중요한데, 감세 구호만 요란했다. 시민사회의 불평등·양극화 분야 공약 질문에도 대부분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이념에 치우친 586 운동권’을 원색적으로 비난했지만, 정작 자신이 설파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도그마가 되진 않았는지 돌아보지 않았다.

 

혐오가 난무한 유세 기간이 끝나고, 개표방송을 지켜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당선자는 애초 빈곤에 관한 이해도, 빈곤을 감각할 기회도 부족했던 게 아닐까? 방송 카메라가 연신 비춘 그의 서초동 아파트는 ‘집’이라 부르기에 망설여지는 구석이 많았다. 안과 밖, 위와 아래를 나눌 의지가 결연해 보이는 건축물이었다. 그곳에서 굽어보는 세상은 어떤 풍경일까?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의 그늘진 곳에 당선인이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는 부인 김건희씨 말도 의심을 증폭시켰다.

 

빈곤은 일찌감치 “정부의 손길” 바깥 “그늘”에 자리잡은 게 아니었을까? 당선자가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고, (사실상 ‘기업’과 동의어인) ‘민간’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동안 구조적으로 생겨날 “그늘”을 자선가처럼 돌보겠다는 얘기인가?

오랫동안 빈곤과 싸워온 사람들의 바람은 “그늘” 자체를 없애는 것이지, “그늘”에 눈길을 주자는 게 아니었다. 건물이 무너져야, 누군가 생활고를 비관해 죽어야 정부가 ‘사각지대’를 수선하는 임시변통의 고리를 끊고,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조항이 제도로 안착하길 바랐다.

곧 사라질 문재인 정부도 이 “그늘”을 없애는 데 실패했지만, 적어도 개발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는 내쫓기는 일이 없도록 공공개발에 큰 걸음을 내디뎠다. 2021년 2월5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서울시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 사업이 그 성과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 주거권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이 사업은, 안타깝게도 개발이익의 극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반발 때문에 지구지정 고시도 이뤄지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국힘이 정권을 잡으면”,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게임은 끝난다는 기득권자들의 호언장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윤석열 정부는 ‘살고 싶은 곳에,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는 정책’으로 공공임대주택의 방향을 잡겠다”는 당선자의 공약을 믿고 기다려야 하나?

 

이번 학기 ‘빈곤의 인류학’ 수업 주제를 동자동의 공공개발로 잡아 학생들과 현장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당선자가 외친 ‘시장경제’가 한 세기 전에 떠돌던 자유방임인지,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시스템의 구현인지 지켜볼 계획이다.

 

조문영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