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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공무원 피살’과 민주당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道雨 2022. 6. 24. 08:59

‘서해 공무원 피살’과 민주당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민주당에는 불치병이 있다. 한때 집권했던 정당이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무능력과 무기력이 어느 순간 도져버리는 현상이다. 비록 대선에서 패배했다고 해도 지난 정권의 핵심 주체들은 새로운 권력의 부당한 공격에 맞서 자신들의 가치를 수호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정권 핵심 인사는 어디론가 잠적하고, 책임지는 사람 없이 정치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현상은 이전에도 질리도록 보아왔던 터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와 군 수뇌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고 위협에 대비하지 못해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에서 해군 장병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5년 내내 공격했다. 당시 군은 통신감청 등으로 북한군의 무력도발 징후에 관한 ‘매우 민감하고 엄중한’ 특이징후인 특수정보(SI) 14자를 포착했음에도 군 수뇌부가 예하 작전부대에 전달하지 않아 연평도 인근 해군 참수리 고속정 장병들이 전멸했다는 일종의 ‘가설’을 진실로 둔갑시켰다. 이 주장에 따라 전사한 장병들의 유족과 부상자는 2012년 김동신 전 국방부 장관 등 군 지휘부를 고소하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역사적 진실은 무엇이었나?

2년 뒤 서울중앙지법은 “특수정보가 해군본부와 2함대에도 전파되어 예하부대가 알고 있던 내용”이었으며 “이 14자만으로 도발 징후가 명확하다고 특정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10년 넘게 민주당이 입은 피해는 치명적이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민주당 인사들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왜곡된 시각이 반영된 보수정권에서 만든 영화 <연평해전>으로 거짓은 국민에게 퍼져나갔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진실에 대한 확신이 결여된 비겁한 태도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군 수뇌부가 고소당한 그해. 연초에 제주도 강정마을 파동과 탈북자 북송 논란이 일더니,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북방한계선(NLL)을 부정했다”는 해괴한 정치공세를 들고나왔다.

당시 정문헌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단독회담 자리에서 ‘남측은 앞으로 엔엘엘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김무성 의원은 선거 유세장에서 국정원으로부터 빼돌린 대화록을 줄줄 읽어나갔다.

 

역사적 진실은 무엇이었나?

박근혜 정부 초기에 전격적으로 공개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는, 엔엘엘 포기 발언도 없었고, 정문헌 의원 주장은 허위였다. 심지어 2007년 국방장관이었던 김장수 전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엔엘엘을 사수했다”고 정반대 증언을 했다. 민주당은 진실 왜곡과 기밀유출의 주범인 정문헌, 권영세, 김무성 의원을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다.

더 황당한 일이 있다. 2007년 정상회담 당시 대화록을 작성한 조명균 전 청와대 비서관은 대선이 끝나도록 잠적했고, 책임 있게 대응해야 할 노무현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은 남의 일 보듯이 했다. 무기력한 민주당은 집권이 유력시되던 그해 대선에서 졌다.

 

지금은 어떤가.

2년 전 연평도 인근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고 사실을 조작했다”는 여당 의원의 주장까지 나왔다. 이는 단순한 정치공세가 아니라 국가안보 체제를 뒤흔드는 위험한 발언이다. 정치논리가 국가안보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피해는, 강력한 정보공동체인 한-미 동맹에 미칠 것이다. 그런데도 사건 발생 당시 문재인 정부 안보실장은 외국에 나가 아무런 말이 없고, 사건 당시 국방장관도 말이 없다.

민주당이 위험한 주장을 하는 여당 의원을 응징할 생각이 없으니, 국민의힘은 마음 놓고 민주당을 두들겨 팬다. 대담한 역공이 필요한 시기에 170석의 민주당은 일부 의원들의 소극적인 저항에 안주하며 책임 정당의 면모를 훼손시킨다.

안보 공세로부터 스스로를 식민화하면서 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심리에 포획된 민주당은, 세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유독 북한 문제에 불거지는 이 증상은, 오랜 색깔 공세에 시달린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자 학습된 무기력으로 보아야 한다. 더는 방치하기 어려운 오래된 질병이다.

 

김종대ㅣ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