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박진 장관 해임해야 정치가 산다

道雨 2022. 10. 4. 09:03

박진 장관 해임해야 정치가 산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발의는 성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고 외교·안보 참모진 개편과 사과를 요구한 뒤,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해임건의를 추진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전대미문의 외교적 참사’로 규정한 것도 지나치다.

대여 공세에도 금도와 절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을 의결한 이상, 윤석열 대통령은 박진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헌법 정신을 받들어야 한다. 당위론이다.

둘째, 정치를 살리고 국정을 끌어가야 한다. 현실론이다.

 

해임건의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정부에 정치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한 수단이다. 의원내각제에서 차용했다. 1952년 1차 개헌, 1954년 2차 개헌을 통해 도입했다.

1963년 3공화국 헌법은 “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1972년 유신헌법, 1980년 5공화국 헌법에서는 ‘건의’가 아니라 ‘의결’로 강화했지만, 실효성은 없었다. 대통령이 국회 구성에 개입한 독재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1987년 6공화국 헌법은 3공화국 헌법의 ‘건의’로 돌아가면서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빠졌다.

 

해임건의의 구속력에 대해서는 비구속설과 구속설이 대립한다. 헌법재판소 판례는 비구속설이다.

헌법학자인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의 견해는 좀 다르다.

“비록 헌법 규정의 정치성·강령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 제도가 한국 헌법사에서 계속 존치하는 이유는, 이에 대한 헌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려는 제도적 장치로 보아야 한다. 국민주권을 대표하는 의회로부터 불신임당한 정부나 그 구성원의 계속 재임은 정국의 경색만을 초래할 뿐이다.”

“대통령이 취할 입장은 3공화국 헌법의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여야 한다.”(헌법학, 2022)

 

지금까지 국회가 국무위원 해임을 건의한 것은 여섯 차례다. 임철호 농림부 장관(1955년), 권오병 문교부 장관(1969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197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2001년),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2003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2016년)이다.

 

임철호부터 김두관까지 다섯 차례는 당시 대통령들이 국회의 건의를 수용해 장관을 해임했다.

1971년 오치성 장관 해임건의는 ‘10·2 항명 파동’으로 유명하다. 김성곤·길재호·김진만·백남억 등 ‘공화당 4인방’이 김종필계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이 제출한 내무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찬성해 가결시켰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사건을 ‘항명’으로 다뤘다. 김성곤·길재호 의원이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가 고문당하고 탈당해 의원직을 상실했다. 야만의 시대였다.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은 오치성 장관을 해임했다. ‘특별한 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2001년 임동원 장관, 2003년 김두관 장관 때는 구속력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 정신을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버지도 존중했던 헌법 정신을 무시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 소추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장관을 해임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했다면 탄핵까지 당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해임건의 거부는 탄핵의 서막이었던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다음날 박병석 국회의장을 방문해 “의회주의를 늘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5월16일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의회주의”라고 했다. “의회주의는 국정 운영의 중심이 의회라는 것”이라고도 했다.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의회주의 존중이다.

 

박진 장관은 억울할 것이다. 사고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들이 쳤는데 불똥은 자신에게 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관은 법적 책임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지는 자리다.

 

정치를 살려야 한다. 그래야 외교·안보가 살고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산다. 정치를 오래 한 박진 장관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