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무엇을 위한 ‘한-일 정상회담’인가

道雨 2022. 10. 5. 09:37

무엇을 위한 ‘한-일 정상회담’인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 중 대일본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분명해 보인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 지난달 22일 미국 뉴욕에서 두 나라 정상이 30분 동안 만난 것을 두고, 일본 정부는 ‘간담’이라며 그 의미를 축소했고, 한국 정부도 ‘약식회담’이라고 표현했다. 의제, 합의문, 의전이라는 정상회담의 요건이 충족된 한-일 정상회담은 여전히 열리지 못하고 있다.

 

한-일 관계의 오래된 경색은 주지의 사실인데, 한국 정부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 문제일까. 정상회담이 수단이 아닌 목표 그 자체가 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정상회담은 양국이 쟁점을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와의 차별성과 함께 정권의 성취를 보이기 위해 정상회담 자체에 매달리고 있다. 뉴욕의 괴이한 만남은 주객이 전도된 외교 방향이 낳은 사고 중 하나다.

 

무엇을 주고받을지가 아니라, 회담 성사 자체가 지상과제가 된 구도에서, 회담을 가로막는 조건들은 장애물일 뿐이다.

 

필자는 윤석열 정부 외교부가 7월 초부터 개최한 강제동원 문제 관련 민관협의회에 피해자 쪽 대리인 자격으로 몇차례 참석했다. 첫 회의에서 외교부는 ‘속도감’을 강조하며 8월 중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고령인 피해자들과 강제집행 절차가 막바지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피해자분들이 고령인 것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강제집행 절차 역시, 조금만 면밀하게 살펴보면, 법원 판단 이후에도 경매절차 등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됨을 알 수 있다. 연내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수십년간 이어온 소송과 판결을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민관협의회 종료 이후 나오는 논의를 보면 이 의심이 정확했다. 강제동원 문제는 일본의 강경한 입장으로 풀리지 못하고 있는데, 협의회는 이 문제의 본질에는 조금도 다가서지 못했다.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피해자들의 판결 채권을 소멸시킬 방법에 관한 논의만 남겼을 뿐이다.

이제 청산 대상은 식민지 시기 불법행위가 아니라 피해자가 되었다. 피해자들의 권리행사가 정상회담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최고 정치지도자도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의 충돌 없이”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귀를 의심했다.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법적 오류가 담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주권은 ‘국가’의 문제다.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은 일본 기업, 즉 ‘사인’에 대한 판결이다. 집행 절차 역시 일본 기업의 한국 영토 내 자산에 대해 이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사자가 아니다.

강제동원 사법절차가 일본국 영토를 침해하거나 일본의 사법권을 침해한 사실은 전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일본 정부조차 강제동원 문제를 언급해온 지난 수년간 ‘주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는데, 한국 대통령이 이 문제를 주권 문제로 격상시켰다. 정상회담을 위해 최대한의 저자세 입장을 공표하다 실수한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한덕수 총리는 지난달 28일 아베 전 총리 국장에서 기시다 총리를 만나 2015년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국제법적으로 보면 조금 좀 일반적으로 좀 이해되기가 조금 어려운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는 국제법(조약)이 아니다. 서면 형식이 조약의 최소요건인데, 2015년 위안부 합의는 구두 합의였을 뿐이다. 국무회의 심의나 국회의 동의 등 헌법상 조약체결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물론, 국가 간 합의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 총리가 일정한 표현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국제법 쟁점이 아닌 사안에서 구속력 있는 국제법을 언급하는 것은 틀렸다.

한국 총리가 일본 총리에게 굳이 틀린 이야기까지 하는 이유는 역시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함일 것이다.

 

무엇을 위한 한-일 정상회담인가. 역사적·객관적 사실을 희생시키고, 한국의 피해자들까지 청산시키면서 기어코 이뤄내는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인가? 환하게 웃는 두 정상의 사진인가?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