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김건희 액세서리’ 된 캄보디아 아이

道雨 2022. 11. 23. 10:25

‘김건희 액세서리’ 된 캄보디아 아이

 

 

 

 

한국 정치에는 ‘민생투어’나 ‘봉사쇼’ 같은 독특한 관습(?)이 있다.

대통령 부부나 장관, 국회의원 같은 높으신 분들이 전통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몇마디 나누거나 재해 복구 현장에서 삽을 잡고 노동하는 포즈를 취한다.

기자들은 이를 사진으로 포착해 ‘민생을 챙겨주는’ 통치자들의 보기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아마도 이런 관습의 뿌리를 추적하면, 전통 왕조시대 군주의 ‘순행’(巡幸) 같은 의식 행위로 거슬러 올라갈지 모른다. 유교의 민본 이데올로기에서는 군주와 고관들이 ‘어린 백성’을 어루만지며 그 고락을 직접 볼 도덕적 의무가 있었다.

북한 지도자들의 ‘현지지도’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근대화된 ‘순행’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이런 정치 행위 근저에 깔린 민본 이데올로기는, 현대의 민주주의나 평등 원리와 본질에서 다르다. 예를 들어, 평등주의가 철저하게 뿌리내린 노르웨이에서는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자신의 아이를 직접 유치원에 등하원시키고, 때 되면 지역주민들과 함께 자원봉사하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다. 따라서 그런 모습을 사진 찍어 언론에 공개할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사거나 삽을 손에 드는 ‘윗분’의 모습이 이례적인 사회에서야말로 그런 모습이 ‘뉴스’가 된다.

 

김건희 여사가 심장병을 앓고 있는 수척한 캄보디아 소년을 안고 있는 논란의 사진을 처음 봤을때, 나는 이것도 일종의 ‘국제화된 봉사쇼’로 받아들였다. 그런 쇼란 게 대개 정치의 ‘부실’을 가리는 데에 동원되는데, 실은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한국의 지원은 부실해도 너무 부실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내총소득(GDI) 대비 공적개발원조는 0.16%로, 1% 수준인 노르웨이나 스웨덴은 물론, 폐쇄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일본(0.34%)이나 헝가리(0.29%)보다도 낮다. 선진국 가운데 개발원조에 가장 인색한 나라라는 사실을 가리고자 이런 쇼를 벌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사진을 보는 순간 떠올랐다.

한데 이 사진을 가만히 보면 볼수록 마음이 자꾸 불편해졌다.

 

정치인들의 ‘봉사쇼’를 보는 서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짧은 시간 이뤄지는 일회성 행사라 어려운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안 되는데다, 평상시 삽 같은 도구를 잡아보지도 못한 손으로 카메라 앞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시늉을 하는 모습이 위선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데 이 사진에서 대통령 부인이 잡고 있는 것은 삽이 아니라 아이였다. 어려운 삶을 사는 그 먼 나라의 아이를, 일개 정치적 ‘쇼’의 도구로 만드는 것이, 과연 납세자의 돈으로 외교 현장으로 간 선출직 공무원의 배우자가 해야 할 일인가?

만약 대통령 부인이 이번에 방문한 소년 또는 소년이 수술받은 헤브론의료원을 예전부터 후원하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쑥 소년의 집을 찾아 아픈 소년과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것은, 한 인간을 정치적으로 도구화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또 다른 문제는, 많은 국내외 관찰자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이 ‘해외 봉사쇼’ 과정에서 대통령 부인이 네덜란드계의 유명한 영미권 배우인 오드리 헵번의 소말리아 아이를 안고 찍은 유명한 사진을 ‘벤치마킹’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을 계획된 ‘연출’에 동원하는 것은, 주류 정치인 다수의 공통점인 ‘위선’을 넘어, 아예 가탄스러운 비양심, 몰상식으로밖에 안 보이지만, 이를 통해 유명한 서양 배우를 ‘코스프레’하는 게 몰상식한 개인이 벌인 쇼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 지배층 상당수가 공유하는 의식·욕망임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을 제공해준다.

 

현직 대통령 부인과 달리, 오드리 헵번은 유니세프를 위한 활동을 수년 동안 지속했으며, 의료원조 같은 분야에서 나름의 전문성을 쌓은 인물이었다. 헵번이 국제적 구호활동에 나선 동기 역시, 불량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정책적 부실을 가리기 위해 벌이는 봉사쇼와 차원이 달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가 나치 독일군에 점령을 당했을 때, 기아에 시달리고 영양실조로 인한 질환을 겪어본 헵번이었기에, 에티오피아나 소말리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어린이들이 겪는 곤란에 “동병상련을 느꼈다”고 말했을 때 왠지 그 진정성에 믿음이 갔다.

 

한데 헵번으로 대표되는 구미권 주류에 의한 국제적 자선활동은, 그 활동을 벌이는 개개인의 진정성 여부와 관계없이, 세계 체제 주변부가 겪고 있는 기아·빈곤이나 유행병 문제의 기원을 호도하는 역할을, 심하게 이야기하면 구미권 주류의 ‘이미지 세탁’을 위한 역할을 했다.

문제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국가가 경제개발을 주도해 부가가치 높은 상품을 생산하도록 이끌었던 한국이나, 현재 비슷한 모델을 이용해 세계 최대 실물경제를 키운 중국은, 구미권의 자선을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자선조차 필요로 하는 최빈국들 대부분은, 개발을 주도할 만한 국가의 정치력·행정력이 부족하고, 구미권을 비롯한 해외자본이 매장자원 채굴이나 저임금 위주 저부가가치 제조업을 장악하고 있다.

 

결국, 본인 의도와 무관하게 헵번 같은 자선가들의 ‘착한 일’은, 구미권 자본이 주변부 국가에서 벌이는 추악한 돈벌이를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한데 오늘날 한국 대통령 부인의 헵번 ‘코스프레’는, 한국과 캄보디아의 관계가 구미권과 세계 주변부 사이의 관계와 한 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명예 백인’ 노릇이나 즐겨보려는 한국 지배층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12년 전 캄보디아 국가별 투자 누계에서 1위를 차지한 한국은, 캄보디아 현지에서도 국내에서도 캄보디아인들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이윤을 챙기는 한편, 구미권의 백인 못지않게 남의 빈곤을 이용한 초과 이윤 추구를 자선 이미지로 아름답게 가리려 한다.

 

김건희 여사뿐만 아니라 국내 많은 기업체나 종교단체들이 캄보디아에서 벌이는 자선활동을 홍보에 이용하며 이미지를 세탁한다.

아픈 아이를 ‘장신구’처럼 이용한 자기 홍보 행각은, 그중에서도 특히 ‘뻔뻔스러움’의 상징처럼 눈에 띈다.

 

이 낯 뜨거운 자선쇼를 지켜보는 캄보디아 현지인들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조차 두렵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