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위기 안정성’을 생각한다

道雨 2022. 11. 28. 09:31

‘위기 안정성’을 생각한다

 

 

 

 

한·미와 북한의 강 대 강 대결 구도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에 이어, 지난 18일 동해안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한·미 쪽도 B-1B 전략폭격기 전진배치로 맞섰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의 7차 핵실험이고, 한국과 미국은 강력한 대응을 경고한 바 있다. 한반도의 군사긴장 고조와 안보불안 악순환이 지극히 우려스럽다.

우리 정부는 이와 관련해 재래식 전력 및 확장억지력 강화, 미국의 전략자산 수시 배치와 보복 타격능력 심화, 연합훈련 강화와 전투준비태세 고양, 그리고 3축 체제 운용으로 대응하고 있다.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대북억지력 구축이자 유사시 평양을 압도하고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군사태세다.

 

그러나 국가안보의 요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의 보호에 있다.

문제는 지금의 안보전략이 과연 그런 목표를 근본적으로 달성할 수 있느냐다. 한반도 내 군사위협의 본질적 비대칭성 때문이다. 우리는 가진 게 많지만, 북은 그렇지 않다. 북한 심장부 평양은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요새화돼 있지만, 우리는 수도권에 전체 인구 절반이 밀집해 있다. 북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전방 배치 방사포 위협에 마냥 노출된 실정이다. 이는 풍요한 열린 사회가 가지는 내재적 취약성이기도 하다.

북이 침공하면 한미연합전력의 보복반격을 통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은 명확해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대규모 인명피해를 막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위기를 안정시키는 예방외교가 중요한 이유다.

 

특히 염려스러운 것은 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체제의 허점이다.

원래 미사일 공격의 방어는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적극적 방어(active defense), 요격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방호시설 구축과 민방위 훈련 등 소극적 방어(passive defense), 상대의 공격 의도를 사전에 파악했을 때 선제타격을 가하는 공세적 방어(offensive defense), 지휘·통제·통신·정보·정찰·감시 기능을 효과적으로 연계하는 전장관리(battle management)로 구성된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한국의 미사일 대응은 요격과 선제타격에만 집중돼 있다. 그동안 실시해오던 민방위 훈련은 중단됐고, 시민들은 지하철을 제외하고는 주변에 어떤 방호시설이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소극적 방어가 뒷받침되지 않는 요격과 선제타격에 대한 과신은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크게 우려된다. 북이 군사적 위협을 가할 때마다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를 마법의 카드처럼 제시하고 있다.

동맹이 우리 안보의 사활적 자산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맹신은 자칫 자주국방이나 외교적 노력에 소홀하게 만든다.

더욱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공약은 미국 국내정치 지형과 직결돼 있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나 그와 유사한 대외정책을 펴는 공화당 후보, 혹은 버니 샌더스 같은 급진적 민주당 후보가 당선돼도 한-미 동맹이 과연 현재와 똑같을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하거나 대만해협에서 미-중 군사충돌이 가시화할 경우,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군사 개입은 어려워질 것이고, 오히려 주한미군 감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미 동맹의 가변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정치와 외교의 기본은 적대세력을 최소화하고, 우호세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중립세력을 포섭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일부 여당 지도부 인사는 이러한 원칙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인다.

얼마 전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한민국이 애처롭다. 4개의 북한에 포위됐다”고 개탄한 바 있다. 북한을 포함해 중국, 러시아,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촉구하는 진보세력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적했듯, 아직은 신냉전이 도래한 것이 아니며, 북·중·러 3각 동맹 복원은 여전히 미지수다. 섣부른 기정사실화로 중국과 러시아를 평양 쪽으로 내몰 이유가 무엇인가.

 

시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내 진보정치세력을 ‘또 하나의 북한’으로 규정해 적대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튼튼한 안보정책의 기반은 국민적 합의다. 이를 무시한 채 차이를 과장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우리의 안보태세를 사상누각으로 만드는 자해행위일 수 있다.

 

억지 못지않게 위기안정성을 확보하고, 승리보다 전쟁 예방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오랜 교훈이자 이 시대의 상식이다.

그리고 전략적 우위도 중요하지만, ‘시민의 생명이 안보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그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민해야 할 때다.

 

 

 

문정인 | 세종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