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교과서에 있는데... "대통령이 별나라에서 온 분 같다"
[분석] 현실 모르는 대통령,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교과서에 느낌 적을 수 있어야"
윤석열 대통령이 작심한 듯 교육경쟁과 교과서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쏟아냈다. 지난 5일 오후 교육부·문체부 2023년 업무보고 자리에서다.
이날 윤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15분, 마무리발언에서 28분 등 모두 43분에 걸쳐 견해를 피력했다. 대부분이 교육에 대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교육이라는 것은..."이라는 식으로 교육에 대한 개념정리를 여러 차례 시도했다(관련 기사 : "경쟁해야 다양성 생겨" 15분 동안 윤 대통령이 설파한 '교육론' http://omn.kr/2298f ).
하지만 교사와 교수 등 교육전문가들은 "20년 전 얘기를 현실인 줄 착각하고 있다. 별나라에서 막 오신 듯한 분의 말씀"이라고 매섭게 분석했다.
#자유경쟁론_"세계 최악의 경쟁이 문제인데, 경쟁 강화?"
윤석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교육을 통해 그 사회의 경쟁력을 키우려고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의 다양성"이라면서 "이 교육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하나의 서비스라고 한번 생각을 해보자. 국가가 관장한다고 해서 이것(교육)을 국가의 독점 사업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육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의 서비스라고 보고, 용역이라고 보고, 그 수요자와 공급자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제도상 보장이 돼야만 이런 교육에 있어서의 다양성이 보장된다"라고 말했다. "국가주도 독점교육을 다양한 교육으로 만들어야 경쟁시장 구도가 형성돼 경쟁력이 키워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학생들의 과잉 경쟁으로 청소년 자살이 속출하는 나라로 유엔에까지 알려져 있다. 2019년 9월에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에서 알도세리 위원은 "한국의 공교육 제도의 최종 목표는 오직 명문대 입학인 것으로 보인다. 경쟁만이 목표인 것 같다"고 일침을 놨다. 윈터 위원도 "한국 정부는 교육 투자 목표로 아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인가, 아니면 아동이 스스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인가?"라고 우려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대학원 교수는 <오마이뉴스>에 "과도한 경쟁에 의해, 번 아웃된 한국 학생과 청년들이 많고, 그것이 국가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있다"면서 "지금 우리나라 교육의 최대 문제는 대통령 지적과 달리 세계 최악의 경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육 다양화'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등 특목고를 존치하는 것 자체가 서열화 독점 고교체제를 존치하는 것이며, 선발권에 대한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것"이라면서 "윤 대통령은 교육다양화를 말하고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온전한 국가 책임을 방기한 산업화시대의 문법 논리"라고 우려했다.
#느낌 적는 교과서 만들라?_교과서에 이미 존재
▲ 한 출판사에서 낸 현행 고교 <국어> 교과서 시 영역 활동.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제가 자녀가 없다 보니 아이들의 이런 교과서를 본 적이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교과서가 과거와 같이 소위 강의식, 지식전달식의 교과서는 이제 퇴출돼야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보여주고 함께 생각하고 답을 구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저도 학교 다닐 때 <국어>가 재미가 없었다. 문학 하시는 분들은 이런 청록파냐 이런 것을 국어라고 했지만 그게 아니다"면서 "예를 들면 어떤 시라든가 이런 거를 놓고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뭔가 자기의 느낌을 적는다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한다면 재미없어 할 사람이 아마 없지 않겠나 싶다"라고 제안했다.
<역사>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역사(교과서)도 말이다. 그냥 쭉 이렇게 책으로 써놓고 그냥 각자 알아서 공부하고 선생이 그냥 얘기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 시청각 자료, 다큐멘터리 이런 것들을 다 보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저는 지금 교과서가 어떻게 돼 있는지 모르겠지만 좀 전반적으로 디지털화 돼야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행 <국어>교과서를 살펴본 결과, 대통령 발언과 달리 강의식·지식전달식 내용보다는 학습문제 제시나 협력학습 내용 그리고 시에 대한 느낌을 적는 내용이 이미 들어가 있었다. 한 출판사에서 낸 고교<국어> 교과서에는 "자신의 정서를 표현해보자" "자신의 정서 표현을 바탕으로 편지를 써 보자"는 학습 문제가 제시돼 있었다.
현행 <역사> 교과서도 대통령이 지시한 "여러 가지 시청각 자료, 다큐멘터리 이런 것들을 다 보게" 하고 있었다.
▲ 한 출판사가 펴낸 현행 고교<한국사> 교과서 내용의 일부.
"별나라서 막 오신 분 같아... 교과서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런 말 못 해"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임원을 역임한 한 중등교사는 "지금 대통령은 20년 전 얘기를 하고 있다. 별나라에서 막 오신 분 같다. 교과서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런 말 못한다"라고 지적하면서 "중·고교<국어>의 경우 검인정 교과서라 활동 위주 내용이 아니면 학교에서 선택 자체를 받지 못한다. 시 영역의 경우 느낌을 적는 수준이 아니라 지금 시를 창작하고 패러디 하고 그걸 갖고 토론하는 게 우리 아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임원을 맡았던 한 중등교사도 "지금 역사교육 현장은 대통령이 제안한 시청각, 다큐 수업을 이미 10여 년 전부터 거의 모두 해오고 있다"면서 "학생들은 단지 영상을 시청하는 단계를 넘어 각종 수행평가에서 UCC 등 자신들의 시선으로 역사 영상을 생산하는 단계로 접어든 지도 오래 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교<한국사> 교과서를 살펴보니, '영화보고 소감문 쓰기' '세계 1억인 서명운동하기' '프로젝트 학습 결과 발표하기' 등의 활동이 곳곳에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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