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거꾸로 가는 경제정책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온 힘을 쏟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실제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기대는커녕 우려가 앞선다.
우선 연초에 내놓은 부동산 규제 완화조치는 정책적 합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부동산 시장 연착륙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본래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개입하는 거시경제적 근거는, 자산가격 변동이 물가와 총수요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거나,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협하는 경우로 한정된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은 물가안정에 도움이 되고, 총수요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다주택자들은 소비 성향이 낮은 소득 5분위(상위 20%)에 몰려 있기에 자산가격이 올라도 소비를 크게 늘리지 않고, 반대로 가격이 하락해도 소비를 줄이는 데 있어 제한적이다. 고신용자 중심으로 대출이 이뤄진 만큼 자산가격 하락이 원리금 연체를 통해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위협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적다.
결국 최근 부동산 규제 완화조치는 개발사업 시행사와 230만 다주택자만을 돕는 편파적 정책이자, 무주택자에 대한 노골적 차별이다.
팬데믹 시절 세계 공통으로 나타났던 자산가격 상승에 당시 금융감독당국은 자산가격 상승과 신용공급(가계대출) 확대라는 순환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축소 등 규제를 강화했다. 현 정부가 이를 완화하는 정책을 펴면서 시장 기능 회복에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책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다른 경제정책들도 우려되긴 마찬가지다.
현 정부는 지난해 6월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경제정책의 목표를 ‘저성장 극복과 성장-복지 선순환’으로 정했다. 하지만 6개월 뒤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는 ‘성장-복지 선순환’은 찾아볼 수 없다.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4대 정책방향의 하나로 제시된 ‘함께 가는 행복경제’도 2023년 경제정책방향의 4대 정책방향에서는 사라졌다. 4대 방향 중 하나인 ‘민생경제 회복 지원’의 3번째 작은 카테고리인 ‘약자복지 확충’으로 왜소화됐기 때문이다.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주장은 톤 다운 됐고 그 자리는 새로운 추상적인 주장으로 대체됐다. 지난해 6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의 4대 정책방향 중 첫번째인 ‘민간중심 역동경제’의 대표 상품은 ‘규제혁파’였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고 나설 것 같았지만,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는 4대 정책방향 중 세번째 ‘민간중심 활력 제고’의 두번째 카테고리인 ‘투자촉진·규제혁신’으로 격하됐다.
세상 어느 나라 정부가 투자와 고용의 주체로서 경제성장과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의 투자를 억제하자고 규제하겠는가? 규제는 불가피한 사회적 효용이 있어 도입된 것이고, 때문에 이를 무조건 완화 혹은 폐지하겠다는 것은 애당초 올바른 방향일 수 없다.
‘규제혁파’가 물러난 자리는 ‘수출활성화’로 대체됐는데, 규제혁파가 그랬던 것처럼 수출활성화도 올해 말 발표될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대표 상품으로 생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중 갈등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세계 각국의 수요가 위축되고 있는데, 양적 수출 증대는 가능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기 때문이다.
수출 증대가 경제정책방향으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가계의 실질소득 증대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교역 조건이 개선돼야 하고 수출부가가치의 국외 유출 비중이 낮춰져야 한다. 그래야 수출이 국내 투자와 고용 증가로 이어진다. 이런 고려가 없는 수출활성화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통령 주재 수출전략회의를 열고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던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민간분양에 도움을 주기 위한 공공부문 주택분양 일정 조정, 생활인프라 민자사업으로 확충, 민간금융과 중복되는 정책금융 축소, 노인돌봄서비스 민간부문 주도로 전환, 국유재산 매각과 민간 참여 개발 활성화….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된 또 다른 정책들은, 정부 역할을 위축시켜 불평등을 심화하고 경제 역량 약화를 초래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정부가 거시경제 안정성을 관리하는 가운데 공공재에 투자하며 시장 실패에 대응하고 불균형 축소에 나서는 것은 시장을 방해하는 행위가 아니다. 정부는 이러한 역할을 통해 시장을 만들고 보호하며, 시장의 기회를 확대한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상호보완적 기능을 축소하려는 경제정책 기조가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김용기 | 아주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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