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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웃으며 “대통령은 벌거숭이!”

道雨 2023. 1. 18. 08:57

하하하 웃으며 “대통령은 벌거숭이!”

 

 

몇십년 전, 누나들에게 쥐어박히며 알파벳만 겨우 익힌 채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영어 선생님은 영어를 잘하는 몇몇 학생들과만 영어로 이야기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손을 들고 일어났다.

“선생님! 우리 반 몇명 빼고는 알파벳도 잘 모릅니다. 처음부터 가르쳐 주십시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는 그 말을 하며 ‘울었다.’ 그 눈물 때문에 내 인생에서 가장 멋있을 수 있었던 순간이 부끄러운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어린 시절, 강호의 싸움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법도는 하나였다. “먼저 울거나 코피가 나면 지는 거다.” 젊은 날 아프지만 지지 않으려 울음을 참았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새해가 왔지만, 여전히 웃을 일보다 슬퍼하고 분노할 일이 많다. 그래도 화장실 거울 앞에서 웃어보려 하니 입꼬리가 찌그러지는 게 영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내 뇌의 구석에서 마음껏 웃지 말라 명령해서다. 너무 많은 아픔이 자리한 시대에 살아 있는 게 미안하지 않냐고.

 

그래도 울음보다 웃음이 좋다. 특히 새해에는 모두 울 일보다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도 가급적 웃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결심을 하자마자 큰 난관에 부딪혔다.

지난달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건강보험제도의 본래 취지대로 ‘정상화’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보장수준은 65.3%로, 일본 83.4%, 독일 85.1%, 프랑스 84.7%, 네덜란드 84.9% 등 주요 선진국보다 턱없이 낮다. 그나마 다소 증가하던 보장률은 2021년 64.5%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낮아졌다.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미충족률이 5.3~1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 2.5%의 2~5배에 달한다.

2016년 기준 소득 대비 의료비 지출이 40%가 넘는 재난적 의료비도 7.5%에 이른다. 이 역시 2% 미만인 유럽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하면 빈곤층으로 떨어질 확률이 발생하지 않은 군보다 4.4배 높다.

 

이런 비정상적인 건강보험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선진국들이 그랬듯, 국민건강보험 급여범위와 수준을 대폭 늘리고, 국고지원도 확대하며, 지급 방식도 바꾸고, 공공병원을 더 만들고, 민간 병·의원의 공공성도 높이며, 1차 의료와 지역사회 돌봄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료민영화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이런 노력을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하고, 그 반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정상’을 ‘비정상’이라 하고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하니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잔하자”는 격이다.

 

국민건강보험을 자동차보험 정도로 인식하는 대통령의 무지를 새삼 탓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이런 발언의 뒷배다.

한국은 부자나라 중에 국민건강보험 보장수준이 가장 낮아 보험회사들엔 최고의 시장이다. 실제로 한국 민간보험시장 규모는 세계 7위이고, 전 가구의 82%가 민간보험에 가입해 가구 평균 월 30만원 훌쩍 넘는 보험료를 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이 보장성을 확대할 경우 이익 감소를 우려하는 대형 민간보험회사들의 달콤한 베갯머리 송사가 없을 리 없다.

 

또한 정부는 보장성 강화에 쓰던 돈을 의사들조차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각종 검사와 치료약 개발 지원에 쓰고,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신약·신기술의 안전성과 효과성 확인 작업을 ‘규제’라면서 풀겠다 한다.

이른바 의료민영화 프로젝트의 재가동이다.

 

결국 골탕을 먹는 건 국민이다. 매달 평균 30만원 넘는 민간보험료를 내느라 허리춤을 졸라매야 하고, 그나마 민간보험에 가입할 여력이 없는 이들은 의사가 처방해준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 검사비가 없어 그냥 병원 문을 나서야 한다. 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모든 국민에게 효과적이며 낭비 없는 의료안전망을 구축해야 하는 골든타임도 놓치고 있다.

 

대통령의 무지와 비전 없음은 대통령 주위를 이윤추구에 혈안이 돼 있는 대자본 로비스트와, 중국 견제를 위해선 한반도에서 전쟁도 불사하려는 미국 이익 우선주의자들로 가득 차게 만들었고, 대통령은 너무 빨리 이들의 꼭두각시가 됐다. 하여 국민은 새해 벽두부터 국민 생존의 두가지 기둥인 국가안보와 핵심 사회안전망의 붕괴 조짐을 공포스럽게 목격하고 있다. 웃음은커녕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와 눈물이 북받친다.

 

이런 상황에서 일개 서생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울면 지는 거다. 그래서 지난 중학생 시절의 굴욕을 만회하고자 이번에는 우는 대신 배꼽을 쥐어 잡고 하하하 웃으며 이렇게 외쳐본다.

 

“대통령은 벌거숭이!”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