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김건희는 치외법권인가

道雨 2023. 1. 27. 09:08

김건희는 치외법권인가

 

 

 

김응교 시인은 용산을 “내 고향 식민지 1번지”라고 과감하게 호명한 바 있다. 그의 시 ‘도쿄 타워’ 속 용산은 “일제 때 히노마루 휘날리고/ 지까다비 각반 찬 포병대원 행군하던 거리/ (…) 껌 씹는 백인과 흑인이 거닐고/ 트럼펫 소리에 성조기 오르는”(시 ‘도쿄 타워’) 곳이다.

실제 용산은 1905년 이래 아직껏 외국군 주둔지의 운명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군림하던 그곳을 광복 이후 미군이 그대로 물려받았다.

 

미군 주둔의 역사까지 ‘식민지 1번지’로 아우른 건 논쟁적인 대목이다. 나라를 빼앗은 점령군과 공동의 안보 위협에 맞선 동맹군을 동일선상에 둘 수 있느냐는 물음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각반 찬 일본군의 총칼 때문이냐 동맹에 바친 자발적인 대가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용산 기지 차단벽 앞에서 우리의 주권이 지속적으로 정지해왔다는 사실만큼은 다르지 않다. 용산 100여년 역사를 주권의 차원에서 갈파한 시적 통찰이 예리하다.

 

‘주권 정지’는 두 층위를 이룬다. 군사 주권에 해당하는 작전지휘통제권 이양이 핵이라면, 주한미군의 특수지위를 인정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은 표층이다. 둘 중 한-미 주권의 비대칭을 일상적으로 드러내는 건 소파이다. 서구 열강들이 분점했던 중국 상하이 조계처럼 노골적이진 않지만, 소파 역시 주한미군의 범죄에 관한 한 일종의 치외법권을 허용한다.

 

노무현 정부 이후 용산기지 대부분은 평택으로 옮겨갔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용산으로 옮겨왔다. 이른바 ‘용산 시대’다.

용산은 이제 ‘식민지 1번지’에서 벗어나는 걸까.

 

내 생각은 부정적이다. 또다른 측면에서 법적 주권이 정지하는 특권의 선이 용산에 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이전 8개월여 만에 용산은 불통과 배제, 특권의 상징으로 퇴락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 부부 지인의 자제들과 윤핵관의 수하들로 채워진 엽관들의 거소로 전락했다. 한남동 관저는 윤심에 맹종할 새 여당 대표를 간택하는 신구 윤핵관들과의 만찬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윤심에 밉보인 비윤·반윤, 야당 대표는 초대 명단에 없다.

 

가장 불길한 건 용산이 치외법권의 성역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대통령에겐 재임 중 형사상 불소추 특권이 주어지지만, 가족은 다르다. 헌법 11조는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2항)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다’(3항)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 대통령 부인에게 이 조항들은 어떤 의미가 있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거래에 김건희 여사가 핵심 공범들과 연락하며 직접 참여한 정황이 재판을 통해 수차례 드러났다. 다른 누구도 아닌 공판 검사가 밝힌 내용이다. 그러나 정작 검찰 수사는 시작될 기미조차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야당 대표에 대해 불법적 수사지휘에 해당할 법한 발언을 쏟아내면서, 김 여사에 대해선 “오랫동안 철저하게 수사가 진행돼왔다.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는 소리만 구간 반복하고 있다. 공범들이 기소된 지 1년 넘게 지났고, 2월10일엔 1심 판결이 나온다. 그러도록 손을 놓고 있으면서 뭔 철저한 수사라는 건지, 말장난만 하고 있다.

 

점령군과 동맹군의 주둔사를 주권의 작동 여부를 기준으로 묶을 수 있다면, 용산 시대 이전과 이후를 하나의 범주로 아우르는 일 또한 가능할 것이다. 치외법권, 특권이란 범주다. 기지 이전이 진척될수록 서울 용산도 우리 주권의 작동 범위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외국 군대건 내부 권력자건 여전히 특정 거주자에게 우리 형사 사법권이 정상적으로 도달하지 않는 한 그걸 온전한 주권 회복이라 부를 수는 없다. 민주공화국에서 국가 주권은 곧 국민 주권이기 때문이다.

 

외국군 기지 앞에서 국가 주권이 정지되는 것과 권력자 일가의 범죄 의혹을 국민 주권이 비켜가는 것은 주권의 제약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국민 주권이 닿지 않는 성역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특권지대와 내부 식민지로 분할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21세기 민주공화국에 특권지대는 외부에 대해서도 내부에 대해서도 허용될 수 없다. 김 여사 의혹을 다른 공범들과 똑같이 수사해서 법정에 세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국민 주권 국가에 살고 있음을 자긍할 수 있을 것이다.

 

 

 

손원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