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 최대 리스크가 된 윤 대통령의 입
[전직 외교관이 본 이란 발언 논란] 중동 패권경쟁 무시...상습적 말실수 감안하면 참모 책임 커
외교에서 말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말이 '최고의 외교 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의 말은 백 명, 아니 천 명의 외교관, 아니 모든 외교관의 말을 합친 것보다 영향이 큽니다.
그런데 한국의 최고 지도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해외에 나갈 때마다 말로 대형 사고를 칩니다. 가히 한국 외교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대통령의 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 방문 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하하는 말을 했다는 논란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는 가운데, 윤 대통령이 1월 15일(현지 시각)에 순방 중인 아랍에미르트연합(UAE)에서 또다시 큰 실언을 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의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을 격려하면서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 여기는 바로 여러분들의 조국이다. 우리 형제 국가인 아랍에미리트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다"라고 말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삼단논법을 적용해 보면, 아랍에미리트와 한국은 형제 국가이고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이므로, 이란은 곧 한국의 적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는 말의 흐름입니다.
'한국 대통령의 간섭하는 발언'
이란 관영 통신 IRNA의 보도에 따르면,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이 즉각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이란과 아랍에미리트를 포함한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의 역사적, 우호적 관계와 이와 관련하여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긍정적인 발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면서 "이란과 아랍에미리트 관계에 대한 한국 대통령의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발언을 심각하게 주시하고 평가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통신은 심지어 기사의 제목을 '한국 대통령의 간섭하는 발언'이라고 달았습니다.
중동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와 이란을 축으로 한 시아파의 종파 대결, 즉 사우디와 이란의 패권 경쟁입니다. 지금 중동의 정세를 보면,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예멘 등 곳곳에서 사우디와 이란이 대리전에 가까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수니파 국가로 사우디의 우호 국가입니다. 이런 대결 구도를 보면, 이란이 윤 대통령의 발언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대통령 순방을 수행 중인 고위 관계자는 16일(현지 시각) "우리 장병을 격려하기 위한 취지의 말씀이었다"라며 "한국-이란 양자 관계와는 무관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우리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한 취지의 말씀이었다. UAE가 당면한 엄중한 안보 현실을 직시하면서 열심히 근무하라는 취지에서 하신 발언"이라고 해석을 해줬습니다. 외교부도 17일 같은 설명을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영어나 아랍어로 연설한 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이 고위 관계자나 외교부의 '통역기'를 통해 그 뜻을 이해해야 하는지요?
저는 여기에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대통령의 문제, 둘은 참모의 문제입니다. 우선 대통령의 문제입니다.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연설할 때 연설 안에 위험 요소가 없는지 잘 점검해 신중하게 말을 해야 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 학습해서 신중하게 발언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그 나라의 정책이나 대외 인식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참모의 문제입니다. 참모들은 대통령 발언이 지니는 중대성과 민감성을 항상 의식하며 빈틈없는 연설문을 준비해 줘야 합니다. 대통령이 상습적으로 말실수를 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통령의 실언에 참모들 책임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모들이 잘 준비된 연설문을 마련해두었는데도 대통령이 무시했을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 책임을 질 수 없으니 참모 누군가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합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한 번 쏟아낸 말을 주워 담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수많은 카메라와 녹음기가 24시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심해서 신중하게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오사카 총영사로 있을 때도 일본 사람이나 재일동포를 상대로 연설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저는 발신하고 싶은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발신해서는 안 되는 메시지를 차단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연설을 하기 전에 꼭 연설문에 담겨서는 안 될 금지 단어 목록을 미리 만들어 놓고 점검하곤 했습니다. 재일동포한테 하는 연설이니까 일본을 세게 비판해도 괜찮겠지, 하고 넋을 놨다가는, 어느새 그런 말이 일본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가 역풍을 불러올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대통령의 말실수 방지 대책에 참고가 될지 몰라 제 경험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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