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석탄예산 대신 에너지바우처로

道雨 2023. 2. 14. 09:25

석탄예산 대신 에너지바우처로

 

 

 

가스요금, 전기요금이 오르면서 그에 따른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 잘못인지, 현 윤석열 정부 잘못인지 공방도 벌어졌다. 하지만 이는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가처분 소득이 낮은 저소득층일수록 에너지가격 인상의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분석은 맞다. 그래서 저소득층에 에너지요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반면, 재정건전성도 고려해야 하며, 특히 탄소제로 시대 에너지요금 지원은 부작용이 있다는 의견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에너지 관련 국가 지출을 늘리기 전에, 현재 에너지 예산의 지출 구조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부터 먼저 찾아보자.

 

이 세상 어떤 나라도 에너지 관련 정책을 100% 시장에 맡기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정부가 에너지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도 없다. 적절한 정부 지출을 통해 에너지 시장가격을 조정하고, 에너지 취약계층에 최소한의 공급을 보장해줘야 한다.

 

2023년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에너지 관련 지출액은 총 4.9조원이다. 2022년 5.1조원보다 1500억원(2.9%) 줄었다. 항목별로는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신산업’ 프로그램에서 4천억원이 감소한 대신, 에너지공급체계 구축 프로그램에서 3천억원이 증가했다. 이 정부의 에너지 철학이 엿보인다.

 

이 중 취약계층을 위한 에너지 지출만 보자.

전기·도시가스·등유·연탄 등 구입권인 에너지바우처 예산은 2022년 추경 기준 2306억원(본예산 1389억원)에서 2023년 1910억원으로 감소했다. 그나마 정부안 1824억원이 국회에서 일부 증액된 결과다.

다만 저소득층 에너지 효율 개선 예산은 1천억원에서 1150억원으로 증가했다. 직접적으로 에너지바우처를 주는 것보다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이 더 낫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이 정부의 에너지복지 정책을 설명하는 듯하다.

 

그런데 또 다른 에너지복지 예산이 있다. 바로 석탄노동자와 연탄을 때는 저소득 가정을 위한 석탄 관련 지출이다. 광산 지역 진흥과 석탄수급 안정, 광해광업공단에 무려 3740억원을 지출한다. 2022년 2630억원에서 42% 폭증했다.

왜 전체 에너지바우처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석탄에 쓰고 있을까?

 

연탄을 때는 저소득 가정을 위한 지출은 완전히 잘못된 지출이다. 저소득층이 전기난방이나 가스난방보다 저렴한 연탄난방을 선호하는 이유는 시장에서 형성된 연탄가격이 싸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가 연탄에 많은 보조금을 줘 억지로 가격을 낮췄기 때문이다.

석탄광업자에게 석탄가격을 낮추도록 307억원, 연탄제조업자에게 연탄가격을 낮추도록 228억원의 보조금을 준다. 특히 연탄제조업자에게는 무연탄 자동차 수송비까지 지원해준다.

 

정부가 석탄, 연탄에 국민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출해 억지로 연탄가격을 낮추니, 저소득층들은 불편하고 안전하지 않은 연탄을 땔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듯 억지로 연탄가격을 낮추고, 저소득층은 불편하고 위험한 연탄을 땔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연탄가격을 낮추는 데 사용하는 막대한 예산을 그냥 에너지바우처로 지출하거나 저소득층 보일러 개선 사업에 쓴다면, 지금보다 돈을 덜 들이면서도 더 많은 복지를 제공할 수 있다.

 

세계적인 흐름인 저탄소 정책에도 부합한다. 미세먼지, 탄소배출에 석탄만큼 나쁜 에너지원도 없기 때문이다. 광부 등 석탄노동자에게도 적절한 직업교육은 물론 직접적 소득액 보전을 하기에도 충분한 금액이다.

3740억원이 연탄을 때는 저소득층 가정과 석탄노동자를 위한 지출이라기보다는, 사실상 광해광업공단과 대한석탄공사를 유지하기 위한 돈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정리해보자. 에너지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에너지 취약계층에 자력갱생만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지원해줄 수는 없고, 재정을 얼마나 투입해야 할지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재정은 화수분도 아니며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기후위기 시대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석탄, 연탄에 쓰는 과도한 예산을 에너지복지 지출로 돌리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추가로 에너지 관련 지출을 늘리지 않아도, 탄소배출을 늘리지 않아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가 세금을 통해서 억지로 연탄가격을 낮췄을 때 혜택을 얻는 유일한 집단은, 겨울에 연탄봉사를 하는 사진이 필요한 정치인 말고는 없어 보인다.

 

 

 

이상민 |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