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3년, 독립인가 고립인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이틀 전, 마지막 티브이(TV) 토론회가 열렸다. 나중에 영국 총리가 된 보리스 존슨 당시 보수당 의원이 탈퇴 지지 쪽 연사로 나왔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한참 설명한 존슨은 막판에 이렇게 말했다. “이번주 목요일(국민투표 당일)은 우리나라의 ‘독립기념일’이 될 것입니다.”
그의 호소력 짙은 연설 때문인지, 유럽연합 잔류로 살짝 기울어 있었던 여론이 투표 당일 뒤집혔다. 52대48로 탈퇴 진영의 신승이었다. 이후 약 3년 반 동안 지리한 협상 과정을 거쳐 2020년 1월31일 영국은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반납했다. 토론회 당시 평의원이었던 존슨은 외교장관을 거쳐 총리가 돼 자기 손으로 탈퇴 협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리시 수낵 현 총리는 브렉시트 3주년 기념사에서 3년 전 영국이 “자유를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으며 이후 “자신 있게 독립국가로서 기틀을 다졌다”고 평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코로나19 백신 접종, 70여개 국가와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 독립적인 이민 규제와 농축산업 보호 강화 등을 브렉시트의 성과로 꼽았다. 꽤나 자신만만한 평가다.
하지만 영국 시민 다수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56%가 브렉시트를 ‘잘못된 결정’으로 평가했다. ‘잘한 결정’이라는 답변은 32%에 불과했다. 심지어 국민투표 때 탈퇴에 찬성했던 사람들조차 브렉시트의 효용에 의문을 품고 있다. 이들 중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이는 14%에 그쳤고,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경우는 41%에 달했다. 브렉시트와 후회(regret)를 합쳐 만든 ‘브레그레트’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실제 영국 경제 상황도 좋지 않은 편이다. 주요 선진국 중 영국만 유일하게 팬데믹 직전 경제 규모를 회복하지 못했다. 2019년 4분기 대비 2022년 4분기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0.8%로, 미국(5.1%), 캐나다(3.4%), 이탈리아(1.8%), 프랑스(1.2%), 독일(0.2%)에 못 미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는 영국의 2023년 성장률을 –0.6%로 예측했다. 유럽 주요국은 물론,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러시아조차 플러스 성장이 기대되는데, 영국만 역성장이다.
블룸버그 경제연구소는 영국이 유럽연합에 머물렀으면 국내총생산(GDP)이 지금보다 4% 이상 많았을 것이라 추정했다.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1천억파운드(약 154조원)에 육박한다는 말이다. 불확실성 증대로 영국의 기업 투자 증가율이 주요국보다 저조했던 한편, 유럽연합에서 인력 유입이 제한되면서 임금상승률은 가장 높았다.
교역 부문 성적도 기대 이하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독자적으로 양자,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을 맺었으나, 2022년 하반기 기준 영국의 무역량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브렉시트 이후 복잡해진 통관 절차로 인해 영국 중소·영세 수출입 기업들의 거래비용이 도리어 상승했다.
수낵 총리의 자랑대로 영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접종이 빨랐을 뿐 영국이 코로나19 피해에서 벗어났던 건 아니다. 영국의 인구 대비 누적 코로나19 사망자는 1만명당 32명으로, 독일(20명), 프랑스(24명), 스페인(25명)은 물론 유럽연합 평균(27명)보다도 많다.
여러 지표를 검토한 결과, 영국의 ‘독립’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듯하다. 자유무역으로 자국 제조업이 쇠락하고, 이민자 유입으로 내국인이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논리가 브렉시트 지지의 기저에 깔려 있었다. 경제 통합으로 피해를 본 이들에게 자원을 분배하는 대신, 고통을 양분 삼아 갈등을 증폭시킨 결과가 바로 브렉시트였다. 3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영국은 독립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고립을 자초한 셈이 됐다.
소규모 개방 경제인 우리나라야말로 고립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시장이 개방되고 외국 인력이 유입되면 경쟁력이 약한 국내 산업이나 내국인 저숙련 노동자가 피해를 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피해에 대한 해답이 고립일 리는 만무하다. 이익과 손해를 고르게 분담하되, 더 넓은 세계와 교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영국이 우리나라에 주는 교훈이다.
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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