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력’은 정당한가
권력과 폭력은 다르다
필자는 퇴임 전 수업을 하기 전 학생들의 졸음도 쫓는 겸 판단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5분 정도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토론을 하곤 했다.
“권력과 폭력은 어떻게 다른가?”, “강도가 든 총은 무서운데 경찰이 들고 있는 총은 왜 무섭지 않은가?” 혹은 “우리나라에서 안중근의 ‘의사’라고 하는데 왜놈들은 왜 이토 히로부미를 학살한 ‘살인자’라고 하는가?”. “열심히만 공부하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가?”, “가만히 있어도 세상은 저절로 살기 좋아지는가?”, “자유와 평등은 공존할 수 있는가?”...이런 주제였다.
▲<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우리나라 헌법 제 1조 ②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헌법 본문 130조 안에서 한번 밖에 나오지 않는 낱말. 권력. 권력은 국민들만 가진다는 게 민주주의다.
국민이 가진 힘(권력)을 위정자에게 위임한 것이 권력이다. 이 ‘힘’을 정당하게 쓰면 권력이 되지만, 정당성을 잃으면 폭력이 된다. 권력과 폭력은 그 차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국민이 가진 권력을 위임받아 국민을 위해 사용했는가?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용했는가?
국민이 위임해 준 권력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용한 사람을 우리는 독재자라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처럼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해 헌법을 무려 3차례나 바꾸고, 국민의 입과 귀를 막고 자신의 사상이나 가치관대로 국민의 의식구조까지 바꾸는 폭거를 자행했다.
우리는 나라의 주인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계엄령을 밥먹듯이 선포하고 비상조치를 무려 아홉 번이나 발령하는 등, 자신이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한 사람을 독재자라고 한다.
이에 반해 우루과이의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85) 전 대통령처럼 오직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섬기느라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으로 정치를 한 사람이 행한 힘은 권력이다.
<권력과 폭력은 다르다>
권력과 폭력은 다르다. 권력이란 ‘타인이 내 말에 따르게 만드는 힘’ 혹은 ‘상대방에게 원치 않는 행동을 강제하는 힘’이다. 똑같은 권력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사하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폭력이다.
하지만,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권위가 된다.
권력을 국민을 위해 행사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지도자는 독재자요, 폭군이다.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의식화된 순진한 국민들은, 독재자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하고 ‘순종이 미덕’이라며 살아간다.
<누구에게 돈을 많이 벌게 하겠다는 건가>
윤석열 대통령은 “잘 먹고 잘 사는 게 모든 것”이라며 “외교·안보도 잘 먹고 잘살아야 군인들 월급도 주고 잘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좋은 무기로 무장시킬 수 있다”고 했다. 또 “기업이란 건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며 “기업이 크면 주주도 돈을 벌고 거기 있는 근로자들도 함께 행복해진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왜 OECD 38개국 중 대한민국은 왜 소득 양극화가 왜 거꾸로 일등인가? 우리나라 상위 10% 부자가 전체 자산의 62%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두고 기업이 크면 근로자들도 행복해진다고 할 수 있는가?
<철지난 ‘선성장 후분배론’ 꺼내든 윤석열 대통령>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인공지능시대에 지식산업시대 선성장이론인 선성장후분배론이라는 경제이론을 들고 나와 경재를 살리겠다니... ‘먼저 성장하고 나중에 분배하자’는 ‘선성장후분배론’은 ‘성장도 안 되고 분배도 안 되는 경제이론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은 이런 소리 하지 못한다. 선성장후분배론은 소득분배와 자본축적의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임금을 올리고 분배를 많이 하면 소비가 늘고 저축이 줄어 자본축적에 저해가 된다는 논리다.
1%를 위한 99%의 희생을 강요하는 친자본의 논리다.
KDI 유종일 교수는 “분배와 성장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를 희생해야 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과학적 이론이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정치적 선전”이라고 규정했다.
<“돈만 많으면 행복하다”... 정말 그럴까>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 이라는 경제이론이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가 주장하는 이론이다.
“소득이 증가하면 행복도가 올라간다. 그런데 소득이 증가하는 일정 시점까지는 행복도 역시 올라가지만, 일정 시점을 넘어선 뒤로는 아무리 소득이 늘어도 행복도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것이다.”는 이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책이, 신자유주의 경제학계의 태두인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낸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다.
프리드먼은 노조뿐 아니라 세금, 재정지출, 환경·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 최저임금 등 기업활동의 자유를 저해하는 일체를 극도로 싫어했다.
프리드먼의 이론은 “노조가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을 이끌어내면 ‘가격이 높아지고 사려는 사람이 줄어든다’”, “학부모에게 학교를 ‘선택할 자유’를 주면 학교들이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해 교육의 질이 전반적으로 올라간다”는 식이다.
인공지능시대에 지식산업시대 이론을 꺼내, 자본을 위한 자본에 의한 자본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폭력의 행사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희생 당하라는 게 공정이고 상식인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희생하라는 것이 어떻게 공정이요 정의인가?
그가 즐겨 쓰는 자유민주의의가 그런 것이라면 폐기처분하고, 모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민주주의를 살리는 것이 대통령이 해야 할 첫 번째 책무라는 사실을 윤 대통령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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