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풍선 태풍’에 날아가는 ‘긴장완화와 종전’ 희망

道雨 2023. 2. 16. 11:37

‘풍선 태풍’에 날아가는 ‘긴장완화와 종전’ 희망

 

 

* 지난 4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인근 대서양 상공에서 미사일에 맞은 중국발 기구의 잔해가 추락하고 있다. 그 아래로 작전에 동원된 전투기가 날고 있다. AP 연합뉴스

 

 

 

풍선은 상징과 풍유의 수사어이다.

‘풍선을 띄운다’는 말은 자신의 의향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반응을 떠보려는 표현이다. 넌지시 자신과 상대를 시험하는 알레고리인 풍선이, 지금 도발과 대결, 위기의 직접적 뇌관이 됐다.

 

미국 영공에 중국의 고공 풍선이 출현하고, 미국이 이를 격추시키고 조야가 들끓는 사태는 풍선의 알레고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국가 사이의 경쟁과 대결에서 상대를 염탐하고 찔러보는 것은 암묵적인 관행이고, 그런 관행에 대한 대응 역시 음지 속에서 진행된다.

미국과 중국이 풍선을 놓고서 이렇게 격렬히 대응하는 것은, 그만큼 현재의 국제질서 환경이 휘발성이 높아졌다는 증거이다.

 

풍선이 터지면서 나온 바람이 폭풍이 됐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 취소이다. 격화되는 미-중 대결을 관리하고 조율할 목적이던 블링컨의 방중이 취소되면서, 미-중 관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을 둔 미·중·러 삼각관계도 대결 국면으로 더 치달을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은 이번 블링컨의 방중을 통해, 양국 관계뿐만 아니라 1주년을 맞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격화된 정세를 완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결정적 뒷배인 중국을 구슬리려고 했을 것이다.

지난 연말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채택한 소모전 앞에서, 우크라이나의 전력과 서방의 무기 재고가 바닥나면서 전황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러시아도 블링컨의 방중을 기대했을 것이다. 중국을 통한 미국의 메시지는 믿을 만한 타협과 협상의 지렛대이다. 설사 미국의 메시지가 없다 해도, 미-중이 양자 관계를 관리하자는 합의는 러시아에는 압력이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사실상 군사적으로 감독하는 미국의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지난해 11월9일 뉴욕경제클럽 강연에서 “협상의 기회가 있을 때, 평화를 이룰 수 있을 때, 그것을 잡아야 한다”며 “승리를 말 그대로 군사적 수단으로는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상호 인식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지원의 레드라인이라던 전차 지원을 결정한 지난달 20일, 독일 람슈타인 미군기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국방 연락 그룹’(UDCG) 회의에서도 “군사적 관점에서 나는 올해 안에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으로 다 몰아내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렵다고 여전히 주장한다”며, 우크라이나에서 끝없는 학살보다는 협상된 평화가 좋다고 말했다.

 

군부뿐만 아니라 외교라인 수장인 블링컨도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의 지난달 24일 칼럼에서 종전 구상을 내비쳤다.

블링컨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와 직접 대결을 피하려 하고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보장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에 의한 나토의 집단방위 의무가 아니라 국방력 강화를 통하고 △러시아에 크림반도의 실질적 영유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구상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풍선 논란 뒤인 지난 4일,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최근 러시아를 방문해 양국 관계의 강화를 강조한 사실을 공개했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은 이달 중 러시아를 방문해, 시진핑 주석의 러시아 방문을 준비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풍선이 터지자, 대미 중-러 연대가 공고화되고, 미·중·러 모두 긴장 격화의 덫에 걸려버렸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런 지정학의 덫을 더욱 옥죄는 대선 정쟁에 발목이 잡혔다.

공화당 매파들은 ‘민주당 대통령은 적성국 대처하는 데 유약하다’는 고전적 비난 공세를 가하고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대표는 미국 국민들은 “정부가 뒤늦게 격추할 때까지 풍선이 이 나라의 대부분을 관광하는 것”을 지켜봤다며 “이 위대한 나라가, 자신의 영공을 가로지르는 것을 모르는 처지가 됐냐”고 경멸적으로 말했다.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13일 선거자금 모금 서한에서 “우리의 적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백악관의 유약함을 냄새 맡았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제 풍선 문제에서 중국의 전향적인 조처 없이는 중국과의 관계를 조율할 명분을 찾기 힘들게 됐다. 미-중 대결의 격화는 우크라이나 종전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격화되면, 중-러 대 서방의 대결은 돌이킬 수 없는 차원으로 치달을 것이다.

 

떨어지는 오동잎 하나로 천하의 가을을 알 수 있기도 하고, 한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이 아닐 수 있다.

‘밀당’의 상징물인 풍선이 긴장과 분쟁의 뇌관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