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예방책 논란 ‘번개탄 생산금지’…과거 그라목손은 효과 내
보건복지부가 이달 중순 발표한 자살예방 대책안에 ‘번개탄 생산금지’가 담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살을 막을 근원적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채 자살 수단만 규제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번개탄 등을 이용한 극단적 선택 시도가 빈번하고, 자살 수단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실제 자살감소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번개탄 생산 관리가 타당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21일 정치권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복지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안(2023∼2027년)’에 담긴 내용을 두고, 조롱 섞인 비판이 잇따랐다.
계획안에 자살위험 요인 감소를 위해 “(일산화탄소 중독을 일으키는)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 생산을 금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기면서다.
에스엔에스와 기사 댓글 등에는 “한강 다리도 없애라” “교통사고 막기 위해 차를 없애냐” 등의 비아냥이 잇따랐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번개탄이 없어지면 자살률이 줄어드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번개탄을 사용한 자살은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이 집계한 자살 사망 수단을 보면 ‘가스중독’은 15.1%에 이르는데, 대다수는 번개탄을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스중독 사망자는 2021년 2022명으로, 이 가운데 번개탄을 이용해 숨진 사람은 1763명(87.2%)에 달했다. 2011년 번개탄을 이용한 자살 사망자가 1165명인 것과 견주면 10년 동안 약 600명이나 늘었다.
누리꾼들의 비판과 별개로, 실제 자살수단의 치명성과 접근성을 낮추는 정책은 자살사망자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과거 농촌 지역에서 자살수단으로 이용된 제초제 ‘그라목손’의 생산·판매 제한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2012년 그라목손 등 독성이 높은 농약 생산을 제한하자, 관련 자살사망자 수는 3분의1로 줄었다. 2012년 2103명이던 농약중독 자살사망자는 2015년 959명으로 약 절반이 줄었고, 2021년에는 741명으로 줄었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자살수단의 유독성을 줄이거나 판매를 제한하는 등 수단을 통제하는 정책은 근거에 기반한 자살예방대책”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도 기존 제품보다 인체 유해성이 낮은 친환경 번개탄 등 대체재 개발 연구 등을 진행 중이다. 산림청은 불을 피웠을 때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질산바륨 등 산화형 착화제의 함량 기준을 낮추고, 인체 유해성이 낮은 대체재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논란이 되자 이날 오후 복지부는 “공청회 등을 통해 제기된 의견을 관계부처와 적극 검토해 기본계획을 보완한 뒤, 국무총리 주재 자살예방정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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