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권위주의 경제관리’의 역설…취임식장 ‘자유’는 어디로?
정부의 경제정책이 권위주의의 길로 가고 있다.
국가의 행정력을 손쉽게 동원해 경제를 관리하려는 모습이 최근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는 뜻이다.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금융감독 당국은 시중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소주 회사가 원가 상승을 반영해 가격 인상 움직임을 보이자, 국세청이 원가를 점검하는 실태조사에 나섰다.
시중금리와 통신요금 인하를 압박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6개 은행과 통신 3사 직권조사에 나섰다.
대통령이 ‘건폭’(건설 현장 폭력)으로 규정한 노조에 대해서는 경찰이 총력을 다해 수사에 나섰다.
물가 대응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국세청과 공정위, 그리고 검찰 출신 수장이 이끌고 있는 금융감독원이 나서고 있다.
노사문제 해결을 위해 고용노동부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아니라 경찰과 검찰이 나서고 있다.
문제를 진단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 부처가 아니라, 문제를 조사하고 처벌하는 권력기관이 전면에 나선 셈이다.
물가 상승에 대한 국민 불만이 고조되자, 정부가 권력기관들을 동원해 품목별 물가 관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여러 사례에서 정부의 관리 방식이 비슷하다.
먼저 대통령이 대상 기관이나 집단을 도덕적으로 단죄한다. 독과점 업종이라거나 폭력집단으로 규정하는 식이다. 그 뒤 권력기관이 등장해 조사나 수사에 나서고, 담당 부처는 업계 간담회 형식을 빌려 협조를 요청한다.
대통령의 불호령과 권력기관의 조사 앞에서 물러서지 않을 기업은 없다. 경제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서른다섯번 언급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던 정부가 지금 경제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기업은 움츠리고 시장원리를 옹호하던 기관과 전문가들은 입을 닫았다.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물가 안정의 핵심 수단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며, 재정정책이 보조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 금융감독기관이 시중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해 그 효과를 반감시킨다. 물가 안정을 위해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해야 함에도, 정부는 출범 직후 역사상 최대 추경을 시행하고 그 뒤 온갖 감세정책을 펼쳤다. 가히 우파 포퓰리즘이라 할 만하다.
그 결과 벌써 상당한 규모의 재정적자가 예상된다.
정공법을 제대로 쓰지 않아 문제가 악화하니, 품목별 물가 관리라는 후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것이다.
정부는 금융업과 통신업의 독과점 구조를 지적한다. 물론 독과점 구조는 중요한 경제문제로, 시정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내놓는 조치들의 목표가 정말 독과점 문제 해결에 있다고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얼마 전까지 독과점 문제에 관한 윤석열 정부의 입장은 정부 개입 대신 자율 규제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소비자 보호보다는 기업의 혁신 유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가 문제가 심각해지자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정말 독과점을 해소하고자 한다면 정책 방안을 찾고 필요한 입법 절차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처럼 권력기관이 전광석화처럼 조사에 나서는 것은 누가 봐도 기업 길들이기일 뿐이다.
이런 방식의 물가 관리는 과거에도 있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박정희 정부가 강압적으로 품목별 가격 관리에 나섰고,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이명박 정부도 소위 ‘엠비(MB) 물가 품목’을 지정해 관리했다.
이런 방식은 반짝효과는 있었을지언정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것이 훗날의 평가다.
오일쇼크 때 우리 인플레율은 무려 25%에 이르렀는데, 함께 석유파동을 겪은 일본이나 대만에 비해 두세배 높은 수준이었다. 이명박 정부 역시 물가 안정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형평보다는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정부가 이런 수단에 의지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그런데 더 주목할 점은 박정희 정부와 이명박 정부 모두 정치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억압하거나 후퇴시켰다는 사실이다. 단기적인 인기 영합을 위해 권력기관을 동원하는 데 익숙해지면, 그 범위가 경제에 한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이번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협소한 절차적 합법성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 사용을 절제시키는 데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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