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한국에게 중국과 ‘디커플링’하라며 자국은 않겠다는 미국

道雨 2023. 5. 3. 12:22

한국에게 중국과 ‘디커플링’하라며 자국은 않겠다는 미국

 

 

 

백악관 “디커플링 아닌 디리스크(위험경감)”

"디리스크, 명확한 수학적 공식은 없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연합도 "디커플링 않겠다"

가장 난처한 건 한국 반도체·전기차·배터리

한국기업 불안감 해소 “계속 협의하자”고만

 

미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 분리)을 한국에 요구하면서, 정작 자국은 중국과 디커플링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으며, 중국과의 교역액도 오히려 늘고 있다.

반면에 미국으로 생산거점을 옮기도록 유치한 한국기업들에 대한 차별적인 보조금 지급 등에 따라, 한국기업들은 미국 내 지위가 불안정해지면서 투자 불확실성과 경영부담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런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는 정도의 언질들만 나와, 한국기업들의 불안감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중국과 디커플링 아닌 디리스크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지난 27일, 미국은 경제적으로 중국과 디커플링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날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한 강연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크(de-risk, 위험 경감)와 분산을 바라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가디언>이 이날 전했다.

 

그는 미국의 반도체 규제 등은 국가안보적 관점에서 최첨단 기술 수출로 초점을 좁힌 것이라며, 중국과의 무역을 단절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의 대중국 무역액이 사상최대였던 점을 지적하며 “미국은 중국과 막대한 무역, 투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날 발언은, 최근 중국방문 때 유럽이 미국을 뒤따라 가서는 안 된다고 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예에서도 보듯, 미국 바이든 정부의 자국중심적 대중국 정책에 대해 당혹감과 불만의 소리를 높이고 있는 유럽 등 다른 서방국가들에게, 미국정부가 미중 간의 거래(비즈니스)에 과도하게 개입할 의도가 없다는 걸 보여주며 안심시키려는 의도에서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지난 달 20일(현지시각)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워싱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미·중 경제 관계 주제의 강연을 하면서 “우리는 핵심 이익을 지키는 데 있어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중국 경제와 우리 경제를 디커플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옐런 장관은 또 “우리들 경제의 완전한 분리는 양 국가에 재앙적이 될 것”이라면서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불안정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도 마찬가지

 

유럽 쪽도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 달 초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같은 시기에 중국을 방문한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도, 중국과 디커플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며, 지난달 중순에 중국을 방문한 안나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도 마크롱 대통령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명확한 수학적 공식 없다”. 가장 난처한 건 한국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정책에 대해 당혹감과 불만을 느끼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 설리번 보좌관이 말한 최첨단 기술 관련 분야가 가장 크게 걸려 있는 처지여서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기간 중의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 이 문제에 대한 별다른 언급은 없었다.

 

<아사히신문>은 28일 설리번 보좌관이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등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바이든 정부의 엄격한 규제 조치는, 미국 기술이 군사분야에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취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강조하면서, 필요최소한의 규제를 의미하는 “좁은 마당을 높은 벽으로 에워싸는 것”이라며 이해를 구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설리번은 “디커플링 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리스크를 저감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명확한 수학적 공식은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는 미국정부의 대중국 교역 규제가 명확한 수학적 공식, 즉 명확한 규제기준 없이 미국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곧 대중국 교역 규제가 미국 국익을 우선하는 쪽으로 실행되기 쉽고, 따라서 대응수단이 없거나 목소리가 약한 쪽의 이해는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유럽의 불만을 의식해 중국에 대한 교역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국가안보를 이유로 반도체와 배터리 등 최첨단 기술 분야 제품으로 초점을 좁혀 높은 벽을 쌓게 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나라는 이 분야에 강점을 지니고 있는 한국이다.

 

 

중앙정부가 양국 기술개발 직접 관장

 

한미 정상은 지난 26일(현지시각) 회담에서, 첨단 반도체 등 차세대 기술 확보를 위해 새로운 협의체 ‘한미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는 중요물자 공급망을 동맹·우호국 중심으로 구축해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미국 전략을 구체화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의 기자회견에서 “경제안보 분야에 전략적 파트너십을 더 강화하자는데 합의했다”며, 이를 설치해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양자 등의 첨단 분야에서 공동연구개발과 전문가 교류를 진행하는 이 새 기구를, 경제부처가 아니라 미국 국가안보회의(NSC)와 한국 대통령 국가안보실이 관장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조직을 첨단기술 제품 등 주요 물자 확보를 안보 관점에서 중앙정부가 직접 관장하겠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최첨단 반도체 기술 대기업들을 보유한 한국을 미국 중심의 공급망 만들기에 필수불가결한 나라로 중시하고 있으나, 한국으로서는 이를 미국의 대중국 강경책과 어떻게 조율하고 일치시킬지 어려운 처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양국 국가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의 공동연구개발과 전문가 교류를 강화하는 것은, 한국에겐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방지와 연구개발 강화에 유리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지만,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지닌 첨단기술 개발 및 생산, 판매가 미국정부의 통제 아래 들어가고, 기업 내부 기밀정보들이 미국으로 유출될 우려 또한 커질 수 있다.

 

 

계속 협의해 나가자는 얘기만

 

미국은 이미 자국 내에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에게 중국에서의 생산능력 보강을 제한하거나 기밀정보 제공을 요구하는 등, 일반적이지 않은 조건들을 일방적으로 계속 제시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야말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돼야 할 사안들이었으나, 회담 뒤 발표된 것은 “긴밀히 협의 조정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는 정도의 내용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기업들의 우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많은 한국기업이 미국 때문에 성장에 방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요점을 피해가는 하나마나한 얘기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는 28일, 한미 양국이 반도체과학법(반도체법)과 반도체 수출통제 이행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불확실성과 경영 부담을 최소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관련한 국내 기업의 우려에 대해서도 조속한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다고도 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27일(현지시각)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를 계기로 개최한 ‘제1차 한·미 공급망 산업대화(SCCD)’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양국은 먼저 반도체 이행(NOFO, 가드레일 등)과정에서 기업 투자 불확실성과 경영부담을 최소화 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위해 지속 협의하기로 했다. 이번 대화에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다뤄졌다.

 

이 장관은 전기차, 배터리, 소재, 청정에너지 등 여러 분야에서 대미 투자를 이어가는 한국 기업이 세액공제 혜택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미국 상무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역시 아직은 ‘협의하기로 했다’거나 ‘지원해달라고 당부했다’는 차원에 머물고 있을 뿐 확실한 것이 없다.

 

 

 

 

한승동 에디터sudohaan@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