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도서관 죽이기,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道雨 2023. 5. 12. 08:57

도서관 죽이기,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도서관 죽이기’가 벌어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청장 박강수씨는 지난해 말 ‘작은도서관’ 아홉곳을 폐쇄하고 ‘독서실’로 만들겠다 선언했다. 그는 도서관 예산의 약 3분의 1을 삭감한다고도 했는데,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이 이에 문제를 제기하자 그를 파면했다.

또한 박강수씨는 출판 편집자, 작가, 번역가, 디자이너가 모여 일하는 공공기관 ‘플랫폼피(P)’를 폐쇄하고 운영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이쯤 되니 대체 뭐 하던 사람이기에 이러는지 궁금해졌다. 프로필을 보니 “한국유튜브방송협회 의장”이라고 적혀 있다.

 

마포구를 제외하면 대구시가 제일 ‘화끈’하다. 265곳에 이르는 작은도서관 예산 전액을 날려버렸다.

올해 1월에는 서울시가 작은도서관 지원 예산을 삭감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이후 철회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시민들 스스로 도서관을 위기에 빠트리기도 한다.

최근 동작도서관은 ‘시세차익형 재테크,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등’ 관련 희망도서 구입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공지했다. 시민들 희망도서가 특정 분야에 편중돼 장서 불균형이 극심해졌다는 이유다.

 

돌아보면 우파 정권은 어김없이 책을 공격했다.

이명박 정권 때 ‘국방부 불온서적’ 사태가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가 “작은도서관과 공동육아협동조합 등에 좌파가 있다”며 대책 마련을 논의한 일이, 소위 ‘캐비닛 문건’을 통해 확인된 적도 있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는 검열보다 책과 책이 있는 공간 자체에 대한 강한 적의가 느껴진다.

 

도서관은 생각보다 중요한 의제다. 문화나 교양 차원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이유에서다. 돈을 내지 않으면 앉을 곳조차 찾기 힘든 도시에서, 도서관은 무료로 만남의 공간과 쉼터를 제공한다. 좋은 책을 공짜로 읽고 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영화를 감상하거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식사하고 차 마실 수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선진국들이 도서관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서관은 단지 책을 쌓아두고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시민들끼리 서로를 연결하고 돌보는, 일종의 ‘커뮤니티 허브’이기 때문이다. 정보화 시대이기에 오히려 도서관의 가치는 대체 불가능한 것이 됐다.

 

최근 적지 않은 학자들이 ‘사회적 고립’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디지털로 과도하게 연결돼 있으면서도, 정작 인간관계에선 고독하다.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독이 단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소외, 양극화, 극단주의를 야기하는 사회 문제”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외로움’에 주목해온 정치철학자 김만권은 ‘손 내밀 곳이 줄어드는 이들이 그 이유를 사회적 약자들에게서 찾고 있다’면서 이렇게 진단한다.

“외로움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옆에 있기만 해도 사용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이 줄어든다고 한다.(A.​ 워드 외, ‘두뇌 유출: 스마트폰의 존재만으로 가용 인지 능력 감소’, 2017)

폭발적으로 늘어난 정보량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인지능력은 1만년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줄 요약’을 요구하고, 음모론에 중독되며,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전문가를 공격한다.

또한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지 못해 매번 피싱 메일에 낚인다.

이는 교육받지 못해서라기보다 생각할 시간과 장소가 부족해서다.

우리 뇌의 이런 상시적 위기 상태를 묶어서 나는 ‘인지 빈곤’(cognitive poverty)이라 부른다.

 

혐오세력, 파시스트에게 외로움과 인지 빈곤은 꿈같은 환경이다.

도서관을 없애거나 독서실로 만드는 일의 의미는 책을 치워버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시민을 고립시키고 각자도생에 몰두하게 함으로써, 지배체제에 무관심하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민주주의와 정치 그 자체를 파괴하려는 시도다.

 

그래서 그들은 합창한다.

“고립시켜라! 정신없게 만들어라!”

 

레이 브래드버리의 환상소설 <화씨 451>에는 책을 불태우는 직업인 방화사(fireman)가 등장한다. 브래드버리는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인한 문화의 파괴를 비판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무려 70년 전인 1953년 소설임에도 소름 끼치도록 현재적이다. 지금 한국은 <화씨 451>의 세계와 얼마나 다른가.

 

향후 수십년간, ‘고립’과 ‘인지 빈곤’은 우리를 괴롭힐 난치병이 될 것이다.

단언컨대 도서관은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싸고 강력한 치료제다.

 

 

 

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