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은둔과 침묵, 그 안위의 유혹

道雨 2023. 6. 15. 11:12

은둔과 침묵, 그 안위의 유혹

 

 

 

패륜아로 낙인 찍히며 길 떠난 해방자 예수

 

 

 

1973년 한신대학교에서 맹렬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박정희 정권은 시위 주도 학생들에 대한 제적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신대학교 학장은 정권의 요구에 따를 수 없다는 뜻에서 전격 삭발을 감행했다. 이에 교수들, 학생들, 심지어 일부 교직원들까지 앞다투어 머리카락을 밀어 버린 사태가 벌어졌다.

1979년, 성결교단의 류연창 목사 장남 류동운이 한신대 신입생으로 입학한다. 류연창 목사는 박정희 군사정권에 저항해 옥살이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분이다. 아들 류동운이 한신대 1학년을 채 마치기 전에 박정희는 부하 손에 총 맞아 죽었다.

류동운 신학생!

1980년 5·18,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항거한 광주 민중항쟁이 폭발했다. 경상북도가 고향인 류동운 신학생은 이 소식을 듣자 마자 서울에서 광주로 달려갔다. 함께 시위를 하던 중 계엄사에 체포돼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됐던 그는 곧바로 시민군에 참여한다. 마침내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함락한 후 그는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신학생 류동운은 지금 5·18 묘역에 누워 있다. 그의 마지막 일기 한 구절을 본다.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 이 역사를 위해 한 줌의 재로 변합니다. 이름없는 강물에 띄워 주시오.”

 

1976년 3월,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80명 넘는 가톨릭 주교들이 모여 어떻게 대응할 지 논의한다. 투표 결과 과반수 넘는 주교들이 다음과 같은 태도를 취하기로 뜻을 모았다. ‘침묵으로 상황을 주시한다.’ 두고두고 비웃음을 사게 될 결정이었다. 198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아돌포 페레즈 에스퀴벨 증언이다.

“군사정권에 협조한 주교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80명 넘는 주교 가운데 인권운동에 협조한 주교들은 겨우 서너 명뿐이었어요.”

이 쿠데타 이후 1년 사이에 군부 세력은 2500명이나 살해했다. 뿐만 아니라 그후 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군부 정권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납치되고 행방불명되었다. 비행기에 실려 바다에 던져진 사람이 수천 명에 달했다. 가톨릭교회한테는 이들 납치된 사람들에 무관심했다는 비난과 심지어 군사정권에 협조했다는 성토가 빗발쳤다. 당시 아르헨티나 국민의 90%가 가톨릭 신자였다.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은 5일 오후 7시 인천 미추홀구 주안1동 성당(인천교구)에서 김일회 신부 주례로 '친일매국 검찰독재, 윤석열 퇴진 주권회복을 위한 월요 시국기도회'를 봉헌했다. 2023.6.5. 에큐메니안 임석규 객원기자

 

 

 

 

 

76년 아르헨티나 주교들과 지금 이 땅의 정의구현전국사제단

2000년 9월, 아르헨티나 주교회의는 군사정권 시절 가톨릭교회의 잘못을 고백하는 문헌 〈내 죄 Mea Culpa〉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중 일부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을 해친 자들에게 우리는 너무나 너그러웠습니다. 우리 행실과 게으름 탓에, 우리는 수많은 형제 자매들 곁에 있지 않았고,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이시여, 우리 회개를 받아 주시고, 우리 백성의 상처를 고쳐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오, 아버지시여, 우리는 당신 앞에서 이 슬픈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책임있는 사람들의 침묵을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의 많은 자녀들이 정치적 충돌, 자유 말살, 고문과 감시, 정치적 박해와 사상 강요에 참여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1985년 5·3항쟁을 기억하며, 6월 5일 인천 주안1동 성당에서 열린 월요시국기도회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발표한 선언문은 “사람이 사람에게 이럴 수도 있는가, 하는 개탄이 그칠 날이 없다”는 탄식으로 시작한다.

“국가를 사유물로 여기는 그들과, 너도 나도 고루 잘 사는 대동세상을 바라는 보통 사람들이 지금 일대 격돌을 벌이고 있다.(…) 저들은 나라를 팔아서라도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고 말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마을을 습격한 맹수를 제압하는 위험한 일은 이성을 가진 사람들의 몫이고, 사람들의 이성을 회복시킬 책임은 누구보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기로 서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실망하고 비관하며 관망하는 태도로는 위기를 돌파할 수도, 복음의 원수를 몰아낼 수도 없다. 깨어 기도하며 사방을 살피자. 우리 곁의 가장 가난한 자, 고통 받는 자 가운데 하느님이 계신다.”

 

은둔과 침묵은 안 된다

로마제국이 이스라엘 땅을 오랜 동안 식민지로 지배했을 때, 이스라엘을 구출할 예언자로 주목받으며 세례자 요한이란 인물이 등장했다. 결국 세례자 요한은 전봉준 장군처럼 동족 정치세력에 의해 처형되었다. 세례자 요한에게 배우고 독립한 나자렛 예수는 안중근 의사처럼 식민지 군대에 의해 처형되었다. 세례자 요한을 찾아 오는 동족 유다인들은 이렇게 물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 질문을 나는 민들레 독자들에게 전해드리고 싶다.

예수는 서른 살 무렵에 가출 겸 출가했다. 이미 결혼하여 열 살 넘은 자녀가 있을 만한 나이였다. 은둔과 침묵이라는 인생 최대의 유혹을 과감히 떨치고 세상에 공식 등장했다. 홀어머니와 형제자매를 부양할 책임을 포기하고, 패륜아로 낙인찍히며 떠난 길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억압하는 사람들과 싸우려고 떠나는 자기 희생의 길이었다. 흔들리지 않고 걷는 길이 어디 있으랴.

이제 그런 용감하고 무모했던 예수를 믿고 또 따른다는 사람이 한국에 적지 않다.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은데도 예수를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누구 탓일까.

류동운 신학생이 우리 앞에 있다. 아르헨티나 주교들의 부끄러운 삶도 있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말씀은 숨막히는 한반도에 따스한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

침몰하는 난파선 대한민국에서, 구명정 몇 개를 두고 서로 먼저 살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여야 하는가. 비겁하게 살다가 악마의 협조자로서 무덤에 도착하고 말 것인가.

악마와 싸우다가 악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악마와 싸우지 않다가 악마가 된다. 악마를 구경만 하면 언젠가 스스로 악마가 되고야 만다.

악마가 되기 싫거든, 악마에게 저항하고 악마와 치열하게 싸우라. 악마와 싸우는 사람만 희망을 만들 수 있다.

 

 

 

김근수 칼럼mindle@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