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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의 책임을 기업에 물어라

道雨 2023. 7. 4. 09:38

인플레이션의 책임을 기업에 물어라

 

 

 

얼마 전 경제부총리가 국제 밀 가격이 낮아졌으니 라면 가격을 인하하면 좋겠다고 발언하자, 며칠 뒤 농심이 신라면 가격을 내리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손에 기초한 자유시장을 강조하는 모습과 반대로, 정부가 보이는 손 아니 말로 시장과 기업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후 식품업체들 주가는 하락했고, 정부의 행태는 포퓰리즘에 기초한 노골적인 간섭이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럼에도 물가가 급등하여 시민들의 삶이 힘들어졌고, 그것이 기업의 이윤 추구와 관련이 크다면, 사회가 기업에 대해 압력을 넣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실제로 농심의 올해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늘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라면 가격 인상과 관련이 크다. 올 1분기 영업이익도 지난해에 비해 크게 늘었는데, 이는 주로 미국 시장의 수익이 2배 이상 증가했기 때문이지만, 국내 이익도 약 50% 늘었다.

한국의 라면시장은 세 기업이 과점 지배하고 있으며, 13년 동안 계속 가격이 높아져왔다.

 

최근 인플레이션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해외에서 더 크다. 미국에서는 진보적인 학자들이 기업의 가격 인상이 인플레의 주요한 요인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애머스트 매사추세츠대의 이자벨라 베버 교수는, 최근 인플레가 거시적인 문제라기보다, 시장지배력을 가진 기업들의 가격 설정과 관련된 미시적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는 팬데믹과 전쟁을 배경으로 한 공급망 문제로 원자재나 반도체 등의 가격이 급등하자, 핵심 기업들이 이윤마진을 지키거나 확대하기 위해 함께 가격을 인상했고, 그것이 인플레를 증폭시켰다고 분석했다.

 

결국 최근의 인플레는 판매자 인플레이션 혹은 이윤주도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인데, 언론은 이를 탐욕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여러 연구를 보면 1990년대 이후 산업집중이 심화된 현실이 이러한 문제를 악화시켰다.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기업들은 가격을 올려 비용 상승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최근 인플레이션과 함께 기업들의 마크업(상품 가격을 정하면서 원가에 부가되는 금액)이 높아졌고, 이윤 증가가 물가 상승을 설명하는 비중도 크게 높아졌다.

 

탐욕인플레이션을 비판하는 논의는 점점 확산하고 있다.

지난 1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당시 부의장 레이얼 브레이너드는 여러 부문의 마크업 상승을 지적하며, 물가 상승이 다시 물가 상승을 부르는 악순환을 우려했다.

최근 유비에스(UBS)의 폴 도너번도 기업들이 외부 충격을 핑계로 비용 상승보다 더 높게 가격을 올려 이윤마진을 높였다고 주장한다.

 

한편 국제통화기금의 최근 연구를 보면, 2022년 1분기에서 2023년 1분기까지 유럽의 인플레이션에도 수입가격 상승이 40%, 이윤 증가가 45%를 차지했다.

이 기관은 인플레가 하락하려면 기업들이 이윤 몫 하락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불황 직후 회복기에 이윤이 크게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논쟁이 필요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에 기업의 책임을 묻는 주장은 전통적 관점과는 크게 다르다. 주류 경제학계와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과도한 총수요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임금-물가 악순환을 우려해 노동시장을 식히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왔다.

그러나 임금 상승이 최근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는 않았으며, 현재는 임금-물가 악순환의 근거도 희박하다. 여러 선진국에서 팬데믹 이전 추세와 비교할 때, 현재 이윤은 더 높아졌지만 임금은 하락했다.

 

특히 이윤주도 인플레이션을 주장하는 이들은, 공급망 충격과 이윤 상승으로 인한 최근 인플레이션에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고 경기침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부를 것이라고 비판한다.

대신 2차대전 시기 시행한 전략적 가격통제와 같은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나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들의 저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여전히 이에 회의적이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 통제를 도입했고, 영국도 빵과 우유 같은 필수품 가격을 통제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해외의 진보파가 보기에는 정부의 말 한마디에 라면 가격이 하락하는 한국의 현실이 부러울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경우 기업들의 마크업 변화 등 최근 인플레이션에 기업 이윤 증가가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 상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식으로 인플레의 부담을 노동자에게만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기업에도 따져 묻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