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대기업과 시민단체, 누굴 더 믿나?

道雨 2023. 7. 3. 08:52

대기업과 시민단체, 누굴 더 믿나?

 

 

 

“‘시민단체’ 하면 사람들은 권력, 정치권, 시민과 동떨어진 그런 걸 떠올리는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시민운동 한다고 하면 더불어민주당 쪽이라 생각해요.”

“주민들은 시민단체가 관이랑 끈이 있는 사람들, 돈 끌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 보죠.”

“사람들한테 신뢰를 얻으려면 시민단체라고 말하면 안 돼요.”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이 지난해 몇달 동안 연구 목적으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수십명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반복해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한겨레21> ‘신진욱×이세영의 정치크로스’의 모든 내용이 다 알차지만, 특히 왕성한 성찰로 가득한 이 글이 가장 좋았다.

 

신진욱은 “그런 시선에 비친 ‘시민단체’는 정치세력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갖거나, 정부지원금으로 연명하거나, 공공사업을 명목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시민이 일군 사회적 자산을 개인 자산으로 삼아 정치권·공공기관에 자리를 얻어 가는 사람들로 그려지는 것 같다”고 했다.

 

냉소주의로 단련된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지 모르겠지만, 사실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다. 이 글에 소개된 한국행정연구원의 2021년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는 그런 충격을 수치로 입증해준다.

시민단체보다 신뢰도가 낮은 기관은 국회와 노조밖에 없었으며, 시민단체를 신뢰한다는 응답자 비율(53.4%)이 시민단체의 비판·감시 대상인 금융기관(66.2%), 대기업(56.7%), 정부(56.0%)보다 낮았다고 하니, 이런 시민단체가 왜 필요한 건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고려대 명예교수 최장집은 “국가권력과 시민운동이 특혜와 지원을 대가로 정치적 지지를 교환하는 관계가 됐다”고 했다. 물론 그런 권력과의 유착에 따라붙는 건 바로 돈이다.

시민단체를 포함한 민간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2016년 3조5600억원에서 2022년 5조4500억원으로 2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고보조금은 20조원을 넘었을 정도로 폭증했건만, 관리·감독은 소홀해 온갖 비리가 난무했다.

 

지난 6월4일 대통령실이 발표한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된 국고보조금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자.

최근 3년간 지급된 1만2천여개 사업 6조8천억원이 감사 대상이었는데, 총 1865건 314억원의 부정 사용이 적발됐다고 한다. 이를 빙산의 일각으로 본 윤석열 정권은 내년도 비영리 민간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올해보다 30% 줄이고, 부정·비리가 적발된 민간단체의 보조금을 전액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윤 정권의 거친 언어와 일 처리 방식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문제의 본질에 집중해보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김정희원도 최근 <한겨레> 칼럼에서 “이제 정부 비판적 사업은 설령 그 비판이 정당하거나 필요한 것일지라도 보조금이 끊길까, 혹은 신고당할까 두려워 애초에 추진되지 못할 수 있다… 반면 정부 정책기조에 발맞춘 사업은 우선해서 보조금을 지원받게 될 것이다”라고 우려하면서도, 칼럼 제목 그대로 “진보는 보조금으로 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시민단체의 생존이 ‘당근과 채찍’에 결판나지 않으려면, 풀뿌리로부터 자원이 모여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보조금에 기대지 않고 사회운동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은 오직 평범한 사람들의 참여뿐이다. 소액이더라도 다수의 풀뿌리 후원이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는 전망이 있을 때, 사회운동은 변절하지 않고 뚝심 있게 지속될 수 있으며, 그 활동기반을 두려움 없이 단단하게 다질 수 있다.”

 

물론 풀뿌리 후원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기부금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단체들의 재원을 갑자기 대폭 줄이겠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럼에도 시민단체가 정작 해야 할 일이 기부금 문화의 정착을 위한 노력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해보는 건 어떨까?

정부의 보조금은 정파적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시민단체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정파적 투쟁의 선봉에 설 수 있는 가능성도 우려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 이미 그런 현실이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대거 정·관계에 진출하는 관행도 정말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이는 그 어떤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중립지대의 소멸’이라는 점에서 국가적 비극이다.

이미 ‘두개로 쪼개진 나라’의 분열을 심화시켜온 사회를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가서 얻을 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대기업보다 낮은 신뢰도를 가진 시민단체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을 놓고, 차분하되 왕성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