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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명→0.72명, 합계출산율 추락사

道雨 2024. 3. 5. 09:53

4.53명→0.72명, 합계출산율 추락사

 

 

 

 

 

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인구 증가는 경제성장을 억제하는 위협요인이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직후 출생아 수가 폭증했다. 1955~1963년생을 ‘베이비 부머’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아기들이 태어났다.

 

통계청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몇 명을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지를 보여주는 합계출산율 지표를 1970년(4.53명)부터 작성해왔는데,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1960년엔 출산율이 6명으로 매우 높았다. 당시 개도국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출산율이었다.

 

그 무렵, ‘3·3·35 캠페인’(3살 터울로 3명만, 35살 이전에 낳자)과 같은 가족계획사업이 출산율 하락의 일등공신이었다.

가족계획사업은 1950년대만해도 미국인 선교사를 비롯한 민간이 중심이었다. 출산 중에 숨지는 여성과 영아 사망을 줄이려는 모자보건 목적이 컸다.

 

이후 19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가족계획사업이 본격 추진되면서 정부 주도로 바뀌었다. 인구 증가를 억제하지 않으면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행정력을 동원해 피임약제·기법을 보급하고 국민계몽활동을 벌이는데 주력했다.

한겨레 자료

 

 

 

1970년대 들어 출산율은 4명대 아래(1974년·3.77명)로 떨어질 만큼 성과가 있었지만, 출생아 수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1971 년 출생아 수가 무려 102만4773 명인데, 이는 출산율이 6명이었던 1960년대 초반과 맞먹는 수준이다. 가임기(15~49살) 여성 인구가 증가한 영향이었다. 베이비 부머들의 출산기가 본격화하면서 한동안 출생아는 줄지 않았다.

강력한 남아 선호 사상도 거들었다. 1970년대(둘만 낳아 잘 기르자)와 1980년대(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에도 출산 억제 정책이 계속됐다. 1983년 ‘인구 폭발 방지 범국민 결의’ 캠페인에는 “2050년에 가서야 인구성장 정지가 예상되므로, 인구증가 억제가 선행되지 않는 한 경제사회발전은 자연 지연될 것입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의 가족계획사업은 출산율이 1.57명으로 떨어진 1996년이 되어서야 종료했다. 1983년(2.06명)에 현재 인구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인 2.1명 밑으로 떨어졌고, 1984년(1.74명) 이후 10년간 1.7 명 안팎의 낮은 출산율이 고착화되면서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지나친 인구 증가 억제가 거꾸로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반세기 가까이 이어져온 출산 억제 정책이 전환점을 맞은 것이다.

 

그 뒤로 정부는 출산율 하락을 방어하느라, 2005년부터 저출생 대책을 세우며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인구 지표는 갈수록 악화했다.

인구 전문가들은 2015년을 인구 지표의 또다른 변곡점으로 본다. 소폭이나마 등락을 거듭하던 출산율이 2016년부터는 내리 곤두박질쳤고, 2018년(0.98명) 이후로는 한번도 1명대를 회복하지 못했다. 출생아 수도 이 무렵부터 하락폭이 커져 2017년부터 40만명선이 붕괴됐다. 1990년대 이후 결혼 감소가 이어져온 데다, 2012년 이후 급격한 기혼 여성의 출산율 감소가 겹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합계출산율(0.72명)은 다시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이제 한국의 출산율은 전 세계의 관심거리가 됐다. 최신 지표가 나올 때마다 외신 보도가 쏟아질 정도다. 0명대 출산율은 전쟁이나 체제 붕괴가 있을 때나 가능한 출산율인 탓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출산율은 1.58명(2021년)이며, 1명을 밑도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우리는 첫째아 출산 연령도 33.0살(2023년)인데, 오이시디 평균은 29.7살(2021년)로 차이가 크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미네기시 히로시 편집위원은 일본과 한국의 저출생 현상을 비교하면서, “ 일본 젊은 세대는 ‘아이를 낳고 싶지만 낳을 수 없다’ 는 사람이 많은 반면, 한국은 여성을 중심으로 ‘결혼하고 싶지 않다,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고 분석했다.

실제로 여성들 사이에선 경쟁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성평등이 부재한 우리나라가 아이를 낳을 만한 사회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

자녀 양육 환경을 지원하는 대책만으론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이유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