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보수도 버거워하는 ‘윤 대통령 유지비용’

道雨 2024. 5. 28. 08:50

보수도 버거워하는 ‘윤 대통령 유지비용’

 

* 지난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출입기자들 대상 만찬. 대통령실 제공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지난 24일 출입기자 만찬에서, 앞치마를 두른 윤석열 대통령은 행복해 보였다. 현장메모를 보면, 기자 200여명이 나눠 앉은 20개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한 말의 대부분은, “종종 합시다” “뭐 좀 먹었어요?”였다.

 

미국 대통령들의 위트 있는 연설과 초청 게스트의 날카로운 풍자로 매해 화제가 되는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행사 같은 전통이 우리에게도 생긴다면,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용도 시기도 고약하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에 대한 국회 재의결, 그리고 바로 다음날 시민사회와 야당들이 총집결하는 대규모 집회가 예고된 터에, 현안 질문 하나 못 하는 김치찌개 만찬이라니.

갑자기 기자 연수 확대를 언급한 것도 황당했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추락했다는 최근 잇단 발표는 대통령에게만 딴 나라 이야기인 듯하다.

 

 

지난 4월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의 행보는, 보통 사람의 상식과 염치로는 이해 불가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김건희 여사는 검찰 수뇌부 인사 며칠 만에 보란 듯 아무 말 없이 공개 행보를 재개했다.

공정과 상식은커녕 오로지 ‘대통령직 유지와 부부의 생존이 국정방향’이란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정치권에 ‘빚’이 없는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보수로서도 통탄할 일일 것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최순실씨와 연락을 주로 맡았던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기용은, 보수 매체 논설위원이 ‘안드로메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기괴한 일이다.

당시 검찰이 압수한 그의 휴대전화 속에서 35시간40분 분량, 236개 녹음파일이 쏟아지며, 국정농단 실태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최순실씨 문제에 입 한번 벙긋 못 한 그가 설령 똑똑한들 무슨 소용인가. 윤 대통령이 높이 평가했다는 능력은 이런 ‘충성심’인가.

 

과거 국정원 댓글 수사 외압 논란 관계자로 윤 대통령과 악연이 깊은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을 민정수석에 앉힌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의 기용은 보수 지지층 강화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아니면 말고’ 식 박영선 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설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 전 함성득-임혁백 교수 사이 물밑협상에서 흘러나온 말들까지 보면, 윤 대통령은 더더욱 정통 보수와 거리가 멀다.

 

 

대통령 거부권 합리화를 위해 총대를 멘 정부 기관의 신뢰 훼손은 어찌할 건가.

채 상병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한 날, 법무부가 보도자료에서 밝힌 내용은, 바로 언론들의 팩트체크에 의해 궤변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작성 주체는 법무실 법무심의관이다. 검사 후배에게 이런 자료를 만들도록 하는 게 검찰을 그토록 사랑한다는 대통령이란 게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정책 결정과 집행의 난맥상은 심각하다.

해외 직구 금지 번복 이후 각 부처가 정책 발표를 보류하며 눈치만 보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불쑥 21대 국회 막판에 연금개혁 합의 카드를 꺼낸 건 정치적 공세 성격이 있지만, 그걸 핑계로 개혁의 첫 단추를 끼울 기회를 걷어찬 건 어불성설이다.

‘국민공감’ 이야기를 하는데, 이미 오랜 시간 전문가들의 논쟁 끝에 모수개혁 안도 나와있고, 시민숙의 과정도 거쳤다.

물론 연금개혁은 인기있는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도 논란 끝에 결국 현행유지로 성과없이 끝냈다.

당분간 선거가 없는 지금도 어려운데, 22대에서 구조개혁까지 일괄타결하자는 말의 진정성을 몇 명이나 곧이곧대로 받아들일까.

보수 논객인 언론인 정규재는, 여당이 연금 모수개혁 기회를 팽개친 건 채 상병 특검안 가결 차단을 위한 것이라고 거세게 비판하며 “윤석열 대통령 유지비용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 현장 지휘관들의 철수 건의가 사단장에 의해 거절됐다는 여단장의 언급. 다큐 ‘고 채 상병 죽음의 공동정범’ 갈무리.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을 앞두고 대통령 격노설 보도가 잇따르자, 일부 여당 의원들이 ‘격노가 뭐가 문제냐’며 방어에 나섰다.

반만 맞다.

지금 쟁점은 그런 격노가 위법적 지시나 외압으로 이어지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상황을 파악하지 않은 채 격노부터 하는 상사는 이견을 가로막고 조직을 망가뜨린다는 게 만고의 진리다.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26일 한겨레티브이(TV)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고 채 상병 죽음의 공동정범’을 보길 권한다. 새로 공개된 녹음파일 등엔, 임성근 사단장의 격노가 어떻게 현장 상황을 바꿨는지 정황이 담겨 있다. 부하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책임질 것을 피하지 않는 포7 대대장의 사건 당일 녹음파일도 들어보길 바란다.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고 진정한 군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진영을 따질 일인가.

 

총선 민심은 여당에도 대통령실에 할 말은 하는 당이 되라는 것이었다. 당장은 28일 국민의힘 의원들 투표가 보수의 미래를 가늠하게 할 것이다.

여당이 똘똘 뭉쳐 부결시키는 게, 외려 22대 국회에서 채 상병·김건희 쌍특검의 동력만 높일 뿐이란 걸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채 상병 사망 사건은 애초 박정훈 대령이 이종섭 장관에게 결재받은 대로 경찰에 넘겨 수사하고 혐의 여부를 판단하면 될 일이었다.

특검도 마찬가지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지 말라. 다음은 가래도 소용없다.

 

 

 

김영희 | 편집인

편집인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