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당일 공영방송 이사 물갈이, 윤 정권 이성 잃었나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법인카드 유용 의혹과 노조 탄압, 극우적 인식 등으로 공직을 맡기에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은 이진숙 전 대전문화방송(MBC) 사장을 기어이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자신과 함께 새로 임명된 김태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과 함께 단둘이서 곧바로 방통위 전체회의를 열어,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와 한국방송(KBS)의 새 이사진 선임을 의결했다.
야당이 위법 소지가 있는 ‘2인 체제’에서 의결을 강행하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거듭 경고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방송 장악을 위해서라면 어떤 무리수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반민주적 행태다.
이 위원장 임명부터 공영방송 이사 ‘물갈이’에 이르는 과정은 전광석화와 같았다. 국회에서 부적격 논란 끝에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법정 시한인 29일까지 채택되지 않자, 윤 대통령은 단 하루 말미를 주고는 이날 오전 임명을 강행했다.
지난 26일 탄핵안 표결 직전 자진 사퇴한 이상인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후임으로는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임명했다. 야당의 잇단 탄핵안 발의와 탄핵을 피하기 위한 ‘꼼수 사퇴’로 무너진 ‘2인 체제’를 다시 복원한 것이다.
이 위원장과 김 상임위원은 윤 대통령이 임명안을 재가하자마자, 임명장 수여도 생략한 채 곧바로 방통위로 출근했다. 취임식을 한 지 불과 6시간 만인 오후 5시에는, 대통령 몫 위원 2명만으로 이뤄진 전체회의를 열어 공영방송 이사들을 선임했다.
윤석열 정권이 이처럼 단 하루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속도전을 펴는 이유는 자명하다. 눈엣가시 같은 문화방송을 하루빨리 한국방송과 같은 ‘땡윤 방송’으로 만들겠다는 조바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화방송 사장 선임권을 지닌 방문진 이사회를 친여권 성향의 이사들로 채웠으니, 이제 온갖 트집을 잡아 현 사장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박민 한국방송 사장 같은 ‘친윤 낙하산’을 내리꽂으면 방송 장악 막장 드라마가 완성된다.
이 막장 드라마를 위해 방통위는 ‘2인 체제 의결-탄핵안 발의-자진 사퇴’라는 악순환에 빠져, 위원장 2명과 직무대행 1명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파행을 겪었다.
공영방송을 ‘대통령의 방송’으로 만들기 위해, 장관급 공직을 한낱 소모품으로 전락시킨 셈이다.
방송 장악에 혈안이 돼 이성을 잃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 2024. 8. 1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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