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1000일’ 대한민국은 감당할 수 있나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이제 33개월 남았다. 날짜로는 1천일 어간이다.
‘3년은 너무 길다’고 한 게 틀리지 않는다. 총선 뒤 야금야금 넉달이 흘렀는데, 아직 반환점도 안 돌았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는 말도 있다. 윤 대통령의 지난 120일을 보면, 이 또한 틀림이 없다.
지난 총선 민심은 윤 대통령의 무능과 전횡을 심판했다. 그러면서도 이른바 ‘절대 의석’(200석)을 범야권에 내주진 않았다. 윤 대통령에겐 대오각성과 환골탈태를 전제로 국정 운영의 시간을 더 준 셈이다.
실망스럽게도 윤 대통령은 이런 방향으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국민은 윤 정권의 국정 전반을 호되게 심판했는데, 윤 대통령은 국정 기조를 바꿀 기미조차 없다. 정치와 경제, 외교·안보 등 국정의 세 기둥 모두에서, 오히려 ‘수구 꼴통’의 색채를 더욱 짙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오기와 불통의 국정 행태를 바꾼 것도 아니다.
1년9개월 만에 연 기자회견에선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채 상병 관련 격노설에 대해 동문서답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답변을 회피했다.
민심을 청취하겠다고 민정수석실을 신설하더니, 제일 먼저 한 건 김건희 여사 소환 조사 필요성을 주장하던 검찰 지휘 라인을 싹 걷어낸 일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변인을 지낸 후임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사 핸드폰마저 반납한 채 출장 조사에 들어가는 검찰 치욕의 날을 연출했다.
“예외도, 성역도 없게 조사하라”는 현 검찰총장의 지시는 대놓고 무시했다.
김 여사 법률대리인은 “검사 휴대전화에 폭발물이 설치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납하는 게 맞았다”고 했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등 인사 행태에선 말기적 증상이 더 뚜렷해졌다.
이 위원장은 대전문화방송(MBC) 사장 시절 사표를 낸 당일, 서울 강남구 단골 빵집에서 법인카드로 44만원을 결제하고, 2시간30분 뒤엔 대전 관사 인근 빵집에서 53만원을 또 결제했다.
“회사 환경미화원들에게 줬다”고 해명했지만, 실제 전달 여부는 불확실하다. 무엇보다 대전 직원 줄 빵을 왜 서울 자택 인근 빵집에서 사나. 일부에선 퇴직 뒤 회삿돈으로 두고두고 먹으려고 선결제해둔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런 게 한둘이 아니다.
이 정도 의혹에도 해명이 불감당이면, 과거 보수 정권들은 대개 임명을 철회했다.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지금은 더 악다구니로 밀어붙인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과 민영삼 코바코(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임명도 마찬가지다. 둘 다 유튜브에서 극단적 막말을 퍼부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수층에서도 ‘윤 대통령은 극우 유튜브 좀 그만 보라’는 말이 나오지만, 마이동풍이다.
총선 참패 뒤 “민심” “국민” 운운한 건 역시나 또 빈말이었다.
고집불통 국정을 하루하루 지켜보는 것도 괴롭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다 정말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니냐는 불길한 우려가 커진다는 사실이다.
하반기 세계 경제는 본격적 침체로 가는 기색이 역력하다. 가뜩이나 저조한 국내 주가는 직격탄을 맞고 요동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힘겨운데, 5차 중동전쟁 발발 가능성도 크다.
지난해 이미 최다 폐업 신기록을 세운 자영업자를 시작으로, 국민 대다수의 삶이 휘청댈 수 있는 위기다. 이럴 때 국민이 기댈 건 정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자 감세’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빼면 보여준 게 없는 윤 대통령이, 폭풍우를 헤쳐나갈 능력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보수층조차 그렇게 믿는 비율은 극히 낮을 것이다.
국가 존망의 근간인 외교·안보 분야의 격동 가능성은, ‘천일의 윤’에 대한 불안을 더욱 증폭시킨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되면 동맹 외교는 파국을 맞을 수 있다. 카멀라 해리스가 되면 미·일 편중과 종속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어느 때보다 돌고래의 유연한 몸놀림이 요구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조선 후기 ‘숭명사대’ 도그마를 방불케 하는 원리주의 ‘가치 외교’에 포박돼 있다.
지금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에 빠진 보수는, ‘윤석열 보위’만을 고집스레 외친다. 보수의 진짜 가치를 뒤로한 채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마저 모른 체한다.
이제라도 뭐가 우선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무능한 대통령인가, 나라의 미래인가.
과연 남은 ‘윤석열의 천일’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손원제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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