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탈중국·신자유주의로 경제 망친 자들

道雨 2024. 8. 19. 17:27

[유시민 칼럼]

탈중국·신자유주의로 경제 망친 자들

 

세수부족으로 우체국 보험 적립금에까지 손 벌린 윤 정부

2023년도 총수입 44조 줄어 재정적자 87조 국가채무 113조

무역수지, 소비, 투자, 정부지출 모두 ‘하향 나선형 악순환’

선장이 문 잠그고 술 취한 채 잠만 자는 한국 경제호

대통령실 참모, 관료, 전문가 누구라도 토론이라도 하자

 

 

 

이게 웬일인가.

「동아일보」가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의 8월 16일 기자간담회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보도하다니!

 

진성준 의장은 국회의 2023년도 결산안 심사를 앞두고, 56조 원의 세수 결손 문제를 거론하면서, 정부가 한국은행뿐만 아니라 민간 자금도 빌려 썼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세수 결손 규모 56조 원이었다는 것은 정부가 넉 달 전 발표했으니 새로운(new) 정보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우체국보험 적립금 2500억 원을 연리 4.04퍼센트에 빌렸다는 것은 새로운 정보다.

 

 

국가가 돈이 없다는 뉴스가 왜 「조선일보」 눈에는 띄지 않았을까?

 

그 사실을 뉴스(news)로 인정한 언론사는 많지 않았다. MBC와 「전자신문」같은 중도성향 언론사들이 제목에 ‘우체국보험 적립금’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동아일보」 「뉴스1」 「머니투데이」 등 몇몇 보수신문이 그렇게 한 것은 평소와 다른 행동이었다. 어떤 신문은 기사 본문에만 그 사실을 넣어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포함한 대다수 신문과 방송은 ‘입꾹닫’ 방침을 견지하고 있다. 뉴스 가치가 없는 사실이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보도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고 하지는 않겠다. 관점에 따라서는 뉴스 가치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민주당은 우체국보험 적립금을 빌려 세수 결손을 땜질한 것이 국가재정법 위반일 수 있다고 했지만, 다툼의 소지가 있는 주장이다. 형식 논리로 법률 위반이 된다고 해도,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은 없다. 국가는 조세징수권이 있어서 파산하지 않는다. 우체국보험이 이자를 받지 못하거나 원금을 떼일 위험은 없다. 연 4.04퍼센트 금리도 적당한 수준이다. 국민에게 알려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뉴스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중에 현금이 없어서, 한국은행뿐 아니라 민간 금융기관에서까지 돈을 꾸었다는 것은 큰 문제다. 정부가 나라살림을 제대로 꾸리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당장 이런 의문이 떠오르지 않는가. 정부는 왜 돈이 없나?

이유는 자명하다. 세금을 계획한 만큼 걷지 못해서다. 이것을 ‘세수 결손’이라고 한다. 정부는 해마다 국회가 의결한 예산의 세입 액수만큼 세금을 걷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에 세금이 그만큼 걷히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다.

 

세수 결손이 나면, 정부는 금융기관의 돈을 빌려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초단기 또는 단기 대응책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은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러면 그만큼 국가채무가 늘어난다.

정부가 자금이 부족해 계획한 대로 예산을 집행하지 않으면, 국민들 가운데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부가 우체국보험 적립금을 빌려 썼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알릴 가치가 있는 뉴스가 된다.

국민의 삶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야 이 사실의 뉴스 가치를 부정할 수 있다.

 

* 3월 들어 10일까지 반도체 수출이 41%나 감소하고, 대중국 수출도 35%가 감소한 영향으로, 연간 기준 무역적자가 230억 달러 수준을 기록했다. 사진은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서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2023.3.1. 연합뉴스

 

 

 

온통 마이너스 기록한 낙제 수준의 2023년도 경제성적표

 

국회의 결산안 심사는 언제나 중요하지만, 2023년도 결산안 심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나라살림 운영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첫 회계년이기 때문이다.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통치 않은 정도가 아니다. 낙제 수준이라고 하는 게 맞다.

 

지난 4월 11일 국무회의가 의결한 <2023년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정부의 총수입은 세입예산보다 52조 원 적은 574조 원이었다. 총수입이 전년보다 무려 44조 원 줄었다.

총지출도 예산 639조 원보다 28조 원 적은 611조 원에 그쳤다.

지방재정교부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비롯해 지방정부에 주어야 할 돈을 법이 정한 대로 지급하지 않아,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청 살림까지 엉망으로 만들었다.

 

정부가 편성하고 국회가 수정 의결한 2023년도 예산에 따르면, 사회보장성기금을 포함한 통합재정수지는 13조 원 정도만 적자를 내야 했지만, 실제 적자는 37조 원이었다. 사회보장성기금수지 흑자 50조원을 뺀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87조 원이나 되었다. 이것이 언론에서 말하는 ‘재정적자’다.

여기에 다른 요인도 일부 작용해, 2023년 국가채무는 113조 원 늘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언제나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운영했다고 자랑한다. 알면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몰라서 틀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는 경제통계에 전적으로 무지한 듯하다. 2023년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의 3.9퍼센트를 넘겼는데도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뭐가 뭔지 전혀 모른다는 분명한 증거다.

 

세수 결손은 심각한 문제다.

정부가 예산보다 28조 원이나 적게 지출했는데도 87조 원의 재정적자가 난 것은, 국세 수입이 줄어든 탓이었다.

 

국세 수입은 왜 줄었는가?

 

첫째 이유는 부자 감세다. 윤석열 정부와 국힘당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추고 감면 제도를 확대했으며, 종부세 실효세율을 폐지에 가까울 정도로 인하했다. 그러나 이것은 세입 감소의 원인이지 엄격한 의미의 세수 결손 이유는 아니다. 세율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 효과는 2023년도 예산 세입에 이미 반영했다. 세수 결손은 조세 수입이 예산안 편성 당시 예측했던 것보다 더 많이 줄어서 생긴 현상이다.

 

그렇다면 세입 예측은 왜 틀렸는가?

2023년도 경제성장률이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한 2022년 여름에 예측했던 것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 기업의 순수익이 감소해, 법인세 납부액이 줄어든다.

고용이 악화하고 임금인상률이 하락하면, 근로소득세 납부액도 증가세가 멈추거나 줄어든다.

불황이 깊어져 장사가 되지 않으면, 자영업자의 종합소득세 납부액도 줄어든다.

민간 소비가 침체하면 소매 판매가 줄어 부가가치세 세입도 감소한다.

한마디로 세수 결손은 2022년 2분기부터 나타난 불황의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조세 수입을 늘리려고 세율을 올리면 경기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세수 결손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해소해야 한다.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 참여연대, 양대노총, 민달팽이유니온 등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재벌부자감세 저지와 민생·복지 예산 확충 위한 긴급행동'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재벌·부자 감세 중단과 민생·복지 예산 확충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10.19. 연합뉴스

 

 

 

무역수지, 소매판매, 민간투자, 정부지출의 ‘하향 나선형 악순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생각해 보려면, 머리가 아프더라도 데이터를 봐야 한다. 한국경제가 직면한 불황의 양상과 심각성을 직시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데이터만 더 이야기하겠다.

 

2023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1.4퍼센트로, 세계 평균의 절반 수준을 기록했다.

세계경제가 호황이면 수출이 늘어야 정상인데, 한국은 거꾸로 갔다. 2022년 4월부터 수출이 부진해져, 연간 472억 달러 무역적자를 냈다. 2023년 무역수지도 100억 달러 적자였다. 올해 수출이 작년보다 호조라는 언론 보도가 줄을 이었지만, 상반기 수출액은 3348억 달러로, 2022년 상반기보다 157억 달러 적었다. 언론이 떠드는 ‘수출 호조’ 보도는 착시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2022년과 2023년 상황이 너무 나빴기 때문에 지금 괜찮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2022년 2분기 이후의 수출 감소와 무역수지 적자 발생 과정을 주도한 것은, 중국 수출 부진과 대중 무역적자였다. 중국 수출은 2022년 4월부터 급감해 5월부터 적자를 냈고, 지금까지 그런 상황이 이어져 왔다.

러시아 수출 감소도 수출 부진에 한 몫을 했다.

 

내수 상황도 수출 못지않게 심각했다.

2022년 2분기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감소세를 기록했던 소매 판매액이, 올해 2분기까지 9분기 연속 전년 대비 하락했다. 올해 2분기 소매판매액은 140.4조 원으로, 2년 전 2분기보다 6조 원 적었다.

 

최근의 정부 통계에 따르면, 거의 모든 소득계층의 실질소득과 실질가처분소득이 2년 연속 하락했다. 최저임금을 포함한 임금인상률이 물가인상률을 밑돌았고, 불경기로 인해 자영업자의 소득이 줄어든 탓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주가 하락으로 인해 실질자산 가치도 모든 계층에서 하락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내려 150여 개의 대기업에 집중 혜택을 주었지만, 그것이 투자를 촉진했다는 증거는 없다. 종부세 인하로 고가주택과 다주택 보유자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었지만, 소비 진작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판국에 정부의 재정지출까지 줄였다. 중앙정부의 2023년 총지출은 611조 원으로, 2022년 추경 포함 총지출보다 70조 원이나 적었다.

 

이것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본 ‘하향 나선형 악순환’의 전형이다.

사회의 총수요는 순수출(수출-수입), 민간 소비, 기업 투자, 정부 지출 네 가지로 구성된다. 국민소득의 크기를 결정하는 총수요의 네 요소가 모두 하락세를 보이면서 서로 악영향을 주었다.

모든 경제지표는 이 악순환이 2022년 2분기에 시작해, 2024년 8월 현재까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제학자는 무얼 하느냐고 질책하지 마시라. 경제학은 원시적인 수준의 학문이다. 경제학자들은 불황을 불황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지하는 경우에도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다. 드물게 원인을 파악한 경우에도 약효가 바로 나는 처방을 찾는 것은 아니다.

 

 

한국 경제는 선장이 문 잠그고 술 취한 채 잠만 자는 함선 꼴

 

하지만 경제학자가 효과 있는 정책을 내놓는 경우가 가끔은 있다.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는 없지만, 경제학과 경제학자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그렇지만 오늘 한국 상황에서는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가 없다.

의사의 처방은 환자가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효과를 낼 수 있다. 국정 운영 최고책임자가 귀를 닫고 눈을 감는 경우에는, 경제학자가 괜찮은 처방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보기에,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경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한국 경제는 선장이 문을 걸어 잠근 채 술을 마시고 잠만 자는 함선과 비슷하다. 정한 목표와 항로 없이, 조류에 실려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떠내려간다.

 

나는 젊은 시절 경제학을 배운 ‘경제학도’일 뿐이다. 한국 경제 불황의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릴 능력이 없다. 기껏해야 가설(假說) 수준의 견해를 가졌을 따름이다. 그럴듯하다고 믿지만, 논리와 데이터로 정밀하게 입증할 능력이 없으니, 가설이라고 하는 게 맞다.

 

윤석열의 시대착오적 이념외교가 불러들인 대중 수출 급감이라는 ‘외부 충격’이, 신자유주의 긴축 정책과 결합해 한국경제를 하향 나선형 악순환에 가두었다는 가설이다. 정통 케인즈주의 거시이론과 ‘신고전파종합’ 경제학자들의 가속도원리 등으로 이 가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무역수지, 소매판매, 민간투자, 정부지출 등, 모든 경제지표가 2022년 2분기를 기점으로 하향 추세를 보였다는 사실은, 이 가설에 약간의 설득력을 부여한다.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다.

중국 수출의 급감이라는 외부 충격이, 부자 감세, 긴축재정, 임금인상 억제 등 중산층과 서민의 가처분소득을 줄이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과 결합해, 내수를 위축시킴으로써 한국 경제를 장기 불황에 빠뜨렸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우울하지만 없다.

대중 수출 급감이라는 외부 충격은 우연히 온 것이 아니다. 운석열 대통령이 자초했다. 그는 한미일 군사동맹 또는 안보협력으로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추종하면서, 당선인 시절부터 공공연하게 탈중국 또는 반중 노선을 내세웠다.

 

 

경제학자 아닌 나도 이론과 헛소리를 구별할 정도는 된다만

 

중국은 공산당과 정부가 명령하고 규제하는 ‘통제형 시장경제’ 체제다. 정부가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한국 상품의 수입을 억누를 수 있다.

윤석열은 실리와 국익을 도외시하고 가치와 이념을 추종한 자신의 외교정책이 외부충격을 불러들였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외교노선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긴축정책을 그만두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바람직한 외부 충격’이 찾아와 ‘상향 나선형 선순환’을 만들어주는 행운이 찾아들지 않는 한, 한국 경제는 앞으로도 긴 시간 불황의 어두운 골짜기를 헤맬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다. 경제학 공부를 그만둔 지 십 년이 넘었다. 경제학 연구의 최근 동향을 모른다.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데이터를 면밀하게 살피지도 않는다. 경제학과 무관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 말이 되는 경제이론과 헛소리를 구별할 정도의 능력은 아직 지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들과 경제부처 고위 관료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서 하는 말은 대부분 헛소리다.

경제학자와 경제전문가는 다 어디에 갔는가?

왜 헛소리를 헛소리라 말하는 이가 손꼽을 정도로 적은가?

 

누가 내 가설이 틀렸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최소한 말이 되는 수준에서라도 윤석열 정부가 한국 경제를 회생의 길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논리와 데이터로 주장해 주면 고맙겠다.

합의는 하지 못해도 토론은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유시민 작가mindle@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