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식 권위주의 통치, 위기 악화시킨다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대(MIT) 교수 등 경제학자 3명은, 정치·경제 제도와 경제성장의 연관성을 규명한 공로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방대하게 연구한 결과,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반대로 독재로 부와 권력을 소수가 점유하거나 국가와 사회 간 힘의 균형이 무너진 나라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들은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을 주요 논거로 삼아 주목을 끌었는데,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윤석열 정부를 들여다본다면,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 학자들을 대중적으로 알린 첫 저서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이다. 요점은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를 채택한 나라는 더 많은 국민이 경제활동에 참여해 재능을 발휘함으로써 혁신을 일으켜 부유해지는 반면, 소수 기득권 세력이 권력과 부를 독차지하는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를 채택한 나라는 대다수 국민이 일할 인센티브가 사라져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포용적 정치제도는 국가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제한하고 사회 전반에 고루 권력을 배분하는 체제를, 포용적 경제 제도는 사유재산권·법치·공정경쟁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인생 책’으로 추천하기도 한 이 저작은, 사실 극빈국·개발도상국에 적용되는 신국부론이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가 직면한 과제들은, 두번째 책 ‘좁은 회랑’에서 논의된다.
요지는 국가가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통해 제 역할을 해야 하지만, 독재로 변질되지 않도록 사회가 견제·감시해야 경제도 지속적 성장을 이룬다는 것이다.
국가 권력을 사회가 견제하는 것을, 구약성서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에 족쇄를 채우는 일로 비유했다. 한국적 현실에서 국가(리바이어던)는 ‘제왕적’ 대통령, 사회는 입법부·사법부·언론·노조·사회단체·시민 등으로 이해된다. 이 학자들은 현대 국가들이 불평등 악화와 일자리 감소, 경제력 집중 등의 문제가 심화하고 있으나, 정치적 분열과 비타협적 태도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포퓰리스트들이 세를 얻고 이들이 집권까지 해 독재화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 사례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마린 르펜), 튀르키예(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헝가리(오르반 빅토르), 필리핀(로드리고 두테르테) 등을 거론한다.
과연 윤석열 정권의 한국이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 사회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기본원칙마저 유린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자의적 통치는 아내를 제외한 그 누구도 견제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여당은 물론이고, 검찰·감사원·국민권익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 등 중립적·독립적이어야 할 기관들은 사실상 정권 보위부대로 기능하고 있다. 야당은 정치 파트너로 인정조차 하지 않아, 조정과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마저 내팽개친 지 오래다.
한국의 리바이어던은 족쇄를 걷어차버린 것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대 교수는 “강한 (민주주의) 제도를 구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걸 넘어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이런 권위주의적·비민주적 통치 방식은 경제에도 해롭다. 관료들은 행여 대통령 눈 밖에 날까 무서워, 잘못된 지시에도 ‘아니요’라고 말하지 못한다.
발표 직전까지도 성공할 거라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인공지능이 화두가 된 시대에 연구개발 예산을 싹둑 깎아버리고, 제대로 된 협의도 없이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추진해 과학인재 양성에도 차질을 빚게 했다.
정부 재정은 세수결손 사태로 적자 규모가 커지자, 외국환평형기금 등을 끌어다 돌려막기를 했다.
이런 편법은 20~30년간 발전시켜온 경제 시스템을 흔드는 것이다.
주식 공매도의 전격 금지도 마찬가지다.
이전 정부 때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정책 왜곡이 아무 거리낌 없이 벌어지는데도 관료들은 맞장구만 치고 있다. 이런 행태는 평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외교안보 정책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윤 대통령의 준동맹에 가까운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행보는 북한의 대러 밀착의 한 요인이 됐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달리 생기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리바이어던에 어떻게 족쇄를 다시 채울 것인지, 선택의 순간에 다가가고 있다. 아내의 기소를 막아보겠다며, 국정 혼란을 방치하는 윤 대통령의 행태에 분노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여당 대표의 고언도 수용하지 않고, 야당과 언론의 비판에는 아예 귀를 닫고 있으니, 결국 시민들이 다시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인가.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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