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오피스텔이 전세? 사기일 확률 높습니다"
[인터뷰]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 "전세보증금 은행에 돌려주긴 싫다? 임차인 우습게 보는 것"
"한국사회에서 주택은 월세소득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의 수단이 아니라,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투기'의 수단이다. 우린 지금까지 주택매매 대출에 대해선 많이 경계해왔다. 대출을 늘려줬다가 자칫 집값을 오르게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자금을 위한 대출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실제 집주인들이 세입자로부터 전세보증금을 건네 받으면, 그 돈을 어디에 쓰나? 다른 집 구매하는 자금으로 활용한다. 결국 세입자에게 전세자금을 대출해주는 정책이 겉보기엔 서민들을 위한 것 같아도, 실상은 집주인들이 다른 집 살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2022년부터 기승을 부린 '전세사기'는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집값보다 전세보증금이 더 높은 '깡통전세', '역전세'가 전국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을까? 왜 아무 잘못 없는 세입자들은 계약기간이 끝나고도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8명이나 죽어야 했을까?
전세사기 사태에 앞선 2010년대 중후반부터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무분별하게 전세자금 대출과 보증을 늘려준 게 큰 원인이었을 수 있다는 사후 평가가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국도시연구소 등 시민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이 구성한 '전세개혁연구회'는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분석을 내놨다.
전세개혁연구회 소속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2010년대 들어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정책형 전세자금 대출이 출시됐는데, 2015년에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로 통합돼 대출 기준이 완화되고 금액도 올라가면서 이후 전세대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했다. "2015년 전까지만 해도 '대출 받아서 전세 산다'는 개념이 보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전세대출과 보증이 급격히 늘자 전세수요가 확대돼 전세가가 상승했고, 이는 주택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라며 "가뜩이나 주택을 '투기' 수단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정부가 전세대출이라는 새로운 경로로 주택투기를 부추긴 꼴"이라고 했다. 임 교수는 "집값이 계속 오르면 상관 없겠지만, 2019년 주택 가격이 하락하자, 기존 전세보증금이 주택 시세보다 높아지는 깡통전세, 역전세가 나타났다"고 했다.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전세개혁연구회는 전셋값이 주택가격의 일정 비율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전세가율 상한선'을 정하고, 임대주택에도 매매주택의 LTV(주택담보대출비율)처럼 대출비율의 상한선을 두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전세사기를 막기 위한 보다 파격적인 안도 나왔다. 앞으로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받으면 대출이자는 기존처럼 세입자가 내되, 대출원금은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재로선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받아도 금융기관이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에게 바로 대출금을 보내주는데, 나중에 계약이 끝나 은행에 원금을 돌려줘야 하는 건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다. 그런데 만일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약속대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 세입자도 금융기관에 대출금을 갚을 수 없게 돼 세입자의 신용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보증금을 갚지 않은 건 집주인 잘못인데, 그 책임은 세입자에게 떠넘겨지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전세대출 원금 상환 의무를 집주인에게 지우자는 것이다. 계약 만료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는 대상이 세입자건 금융기관이건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이 방식이 싫다는 건, 임대인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것밖에 안 된다"고 했다. 가능한 얘기일까?
지난 15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사무실에서 임재만 교수를 만났다.
"2015년부터 급증한 '전세대출'… 은행에 돌려주긴 싫다? 임차인 우습게 보는 것"
- 8일 전세제도 개선안 발표 중 전세대출 원금 상환과 이자 납부의 의무를 분리하자고 주장했다. '말이 되냐'는 반응도 있다.
"애초에 전세대출이라는 게 어떤 성격을 갖는지 생각해보자. 전세대출은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받는 대출이다. 금융기관에서는 임차인이 대출금을 다른 곳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차원에서 임차인이 아닌 임대인에게 곧바로 대출금을 보낸다. 임차인은 대출을 받음으로써 임대한 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는 편익을 얻기 때문에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낼 의무가 생기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계약이 끝나 전세대출 원금을 갚을 땐 어떤가? 만약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임차인이 금융기관에 전세대출 원금을 갚을 수 없게 되면, 그게 임차인 잘못인가?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지금은 오로지 임차인만 금융기관에 대한 원금 상환의 책임을 지도록 돼있다. 임차인은 아무 죄 없이 임대인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이다. 법률적·형식적 대출의 구조와 경제적 실질이 어긋난다.
전세대출은 원금 상환의 원천이 임대인에게 있는 만큼, 임대인이 곧바로 금융기관에 원금을 갚게 하자는 것이다. 실제 이런 방안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냈던 서승환 교수가 1998년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라는 연구논문에서 먼저 제시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공약으로 내세워 전세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분리한 전세대출 상품까지 출시됐지만, 시장에서 유의미하게 자리잡지는 못했다. 단순히 상품을 만드는 정도에 그칠 게 아니라, 제도화 해보자는 것이다."
- 임대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전세보증금은 당연히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할 돈 아닌가? 계약기간이 끝나 그 돈을 임차인에게 주나, 금융기관에게 주나, 무슨 차이가 있나? 그런데 그 돈을 갚아야 하는 책임을 임차인에 대해 지는 건 괜찮고, 은행 같은 금융기관에 대해 지는 건 싫다면, 그게 무슨 뜻이겠나. 임차인을 우습게 본다는 것이다. 보증금은 임차인의 돈이지 자기 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니 임대인들이 걸핏하면 '다음 세입자가 구해져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고 아무 거리낌도 없이 말하는 게 아닌가.
전세대출 원금을 임대인이 은행에 돌려주도록 하면, 금융기관의 과도한 전세자금 대출을 절제시키는 효과도 있다. 현재 금융기관으로서도 어차피 최종적으로는 임차인만이 전세대출금을 갚게 돼있기 때문에, 임대인이나 임대주택에 대한 검토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1억짜리 집인데 전세대출이 1억까지 나오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부실하게 대출이 나가도 나중에 전세사기의 책임을 지는 건 오로지 임차인 뿐이다. 이건 금융의 원리에도 안 맞는다."
"'월세 수익'용 상품인 원룸·오피스텔이 전세? 기본적으로 사기"
- 전문가들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는 방안인가.
"현재의 전세 시장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전세 선호를 더 높이는 방안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 전세는 줄여가야 한다는 말인가.
"개인 의견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전세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의 특이한 제도다. 2018년 방한했던 UN 주거권 특별보고관(레일라니 파르하)도 한국의 전세제도를 보고는 깜짝 놀라, 전세가 종국적으로는 서민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때 국내에 주거권 운동가들도 크게 의아해했었다. 그만큼 전세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국내에 없었던 거고, 전세가 월세보다 싸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던 거다. 그러나 UN 특별보고관은 '일시불로 높은 보증금을 지불하는 전세의 특성으로 인해 집주인들은 빠르게 다주택자가 될 수 있고, 집값이 상승한다'고 간파하면서, 결국 전세제도 폐지를 권고했다. 외국에선 보증금이라고 해 봤자 보통 2~3개월치 월세가 전부다."
-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전세가 월세보다 저렴한 건 사실 아닌가.
"맞다. 당장, 개별적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전체적으로 봐도 그럴까? 임차인들은 전세보증금만 맡겨두면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전세를 선호하지만, 임대인들은 왜 전세를 놓는 걸까? 다달이 꽂히는 월세 수익을 포기하고 2년 후에 돌려줘야 할 목돈을 받는 이유가 뭘까? 무이자로 큰 돈을 조달해 다른 집을 사기 위해서다. 기본적으로 임대인이 전세를 놓는 목적 자체가 시세차익인 것이다.
그런데 2015년부터 정부가 정책적으로 전세자금 대출을 확대했다. 실제 2015년에 20조 원 규모였던 국내 전체 전세대출 잔액이 2022년 170조 원으로 폭등했다. 목돈이 없어 전세로 살지 못하고 월세로 사는 서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이었겠지만, 이는 전세 수요를 확대시켜 전셋값을 상승시켰고, 다시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했다. 그 사이 임대인들은 전세보증금을 레버리지로 삼아 다른 주택을 사서 이익을 본 반면, 임차인들은 주택가격이 오른 여파로 집을 구매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거나, 같은 수준의 전세를 유지하려 해도 더 많은 보증금을 구해야 했다. 월세로 하향하는 경우도 생긴다.
정부로서는 이는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또다시 전세대출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서민들을 위한 선의의 정치인 것 같지만, 다시 전셋값·집값 상승을 야기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원룸·오피스텔까지 전세를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 년 전만 해도 원룸·오피스텔 전세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원룸·오피스텔은 가격이 잘 오르지 않기 때문에, 월세 수입을 얻으려는 투자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원룸·오피스텔까지 전세를 두기 시작했을까? 임대인들이 원룸·오피스텔 전세보증금마저 다른 집에 투기하기 위한 목돈으로 이용하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러다 집값 떨어지면? 전세보증금 못 돌려주는 것이다. 원룸·오피스텔인데 전세로 놓는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사기라고 봐야 한다. 심지어 근래에는 다중주택까지 전세로 놓고 전세사기를 하는 사례까지 있더라."
- 해외에는 보다 신뢰할 만한 기업형·공공 임대주택이 많지만 국내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처럼 기업형 임대주택이나 공공 임대주택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도 전세 때문이다. 기업이나 공공이 거액의 돈을 들여 임대주택을 짓고 나면 월세를 받아서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우리는 소비자들이 전세를 선호하기 때문에 기업이나 공공이 울며 겨자 먹기로 전세를 놓을 수밖에 없다. 전세는 보증금을 받아봤자 다시 돌려줘야 해서 현금흐름이 전혀 생기지 않고, 따라서 기업이나 공공은 비싼 투자를 하고도 10년간 돈 한 푼 안 생긴다. 10년쯤 지나 시세 차익이 생겼을 때 팔고 나서야 수익이 실현되는 구조인 것이다. 기업이나 공공 입장에서 10년씩이나 돈이 묶이는 투자를 활발히 할 수 있겠나? 전세는 오로지 주택투기 시장에만 도움이 되는 제도다."
"임대주택 등록 의무화해 실태 관리해야"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 제도는 수명을 다했다'고 발언한 걸 보고 크게 놀랐던 적이 있다. '여기까지 왔나' 싶기도 했지만, 장관은 금세 말을 주워담았다. 2022년 기준 전체 전세보증금 규모가 1058조 원인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한꺼번에 전세를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집이라면 전세로 사나 월세로 사나 주거비가 똑같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소득 공제나 세액 공제 등의 혜택을 부여하면서 점진적으로 월세를 늘려가야 한다.
정치권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전세사기 사태 후 2년이 지났지만 피해구제책만 나왔을 뿐, 예방책은 전무하다.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인 이유는, 정부가 전세대출을 늘리고 보증까지 해주면서, 사실상 현금흐름이 없는 임대사업자들을 대규모로 양산해 투기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수백 채, 수천 채를 모두 전세로 돌리던 사례들도 보지 않았나. 일단 모든 임대주택을 등록 의무화해 정부가 현황 관리부터라도 시작하자. 전세사기로 시민들을 그렇게 잃고도, 정부가 아직 기본적인 실태 관리도 못 한다는 건 정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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