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후진적 금융세제는 어쩌겠다는 건가

道雨 2024. 11. 14. 09:32

후진적 금융세제는 어쩌겠다는 건가

 

금투세 폐지가 초래할 문제들

 

 

내년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마침내 폐지를 선언했다. 줄곧 폐지를 외쳤던 정부·여당은 화색이다.

도입한 세제를 4년씩이나 유예하다 시행도 안 하고 날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금투세 입법 과정이 어땠는가?

지난 20·21대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여야가 합의했던 사안이다. 2019년 추경호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같은 당 의원 10명과 함께 손수 금투세 법안까지 발의했었다.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본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친 금투세를 시행도 하기 전에 폐기해버리는 건, 국회가 존재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다.

금투세를 주도하거나 법안 통과에 찬성했던 국회의원 중 지금 22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인물들이 상당수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법률 개정이 장난인가?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는 쪽이 내세우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큰손들 떠나게 해 주가 폭락을 초래한다는 것, 그리고 사모펀드 세력의 청부 입법이다.

이런 선동 말고 금투세를 왜 도입하게 되었는지 정작 중요한 이 문제에 관심을 두는 이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 소득세법은 애초에 ‘소득 원천설’이라는 개념에 터 잡아 과세 대상을 정하고 있었다. 모든 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몇 가지 소득 항목을 추려내어 제한적으로 과세하자는 생각이 소득 원천설이다. 법령에 열거하지 않은 소득은 담세력(조세 부담 능력)이 있더라도 과세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은 필연적으로 ‘공평’과 ‘중립성’ 측면에서 문제를 낳는다.

‘똑같이 돈 벌었는데, 나는 세금 내고 저 사람은 왜 안 내지?’라는 물음이 전자에 해당한다. 금융상품 ㄱ과 ㄴ의 세전 수익률이 각각 10%와 8%일 때, ㄱ에 대해서는 30% 세율로 과세하고 ㄴ에 대해서는 비과세하면 오히려 세전 수익률이 낮은 ㄴ을 선택하는 경제적 의사 결정의 왜곡을 낳는다. 이는 후자의 예다.

 

 

소득 원천설의 한계는 과세 대상을 점진적으로 넓히는 입법적 노력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조금씩 범위를 늘리다 보면 큰 틀에서 아귀가 안 맞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과세 체계의 정합성 제고를 위한 주기적인 법 정비도 따라붙어야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상과 현실은 괴리되기 마련이다.

 

금투세 도입 전까지 금융투자소득의 과세 대상을 점진적으로 넓혀오긴 했지만, 여전히 과세하지 않는 소득도 꽤 된다. 가령 채무증권 양도소득, 코스피200 선물·옵션 등 일부를 제외한 파생상품 양도소득, 대부분의 파생결합증권 양도소득은 비과세한다.

이렇듯 빈 구멍이 많은 건, 신종 금융상품이 개발되면 세법이 그 뒤를 쫓으며 과세라는 ‘어망’에 담을지를 고민하는 술래잡기 양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주주를 제외한 주식 양도소득은 비과세하는 것처럼 정책적인 이유도 한몫했다.

 

 

과세 체계 정합성 제고도 말이 그렇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일단 어망이 하나가 아니라, ‘자본소득’(이자·배당소득)이라는 어망도 있고 ‘자본이득’(양도소득)이라는 이름의 것도 있다. 그래서 어느 어망에 넣을지를 정해야 한다. 자본이득이면 손실공제가 제한적으로 가능하나, 자본소득으로 가면 아예 불가능하다. 세율도 다르다. 자본소득은 금융소득종합과세 적용 여부에 따라 분리과세와 종합과세로 갈린다. 종합과세 세율은 최소 6%에서 최대 45%다. 자본이득세율 체계는 이와 완전히 다르고 또 복잡하다.

 

이처럼 어느 어망에 담는가에 따라 세금 계산에 많은 차이가 난다. 전통적인 소득과 달리 금융소득은 두부 자르듯 그 실체를 가려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어망 구분 기준이 무엇이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정합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가 금투세 도입 직전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와 비슷한 다른 나라 가운데 이런 식으로 금융세제를 운용하는 나라는 없다. 오죽했으면 금투세 도입을 발표한 당시 기획재정부 보도자료 제목이 ‘금융투자 활성화 및 과세 합리화를 위한 금융세제 선진화’였겠는가?

 

어망이 더 쓸 수 없을 정도로 해지고 낡아 공들여 새 어망을 기껏 준비했더니, 한 두어개 말도 안 되는 꼬투리 잡아 사용하지도 않은 새것을 갖다버리겠다고 한다.

세제의 흑역사로 기록될 만한 최악의 선택이란 것을 관련자들은 똑똑히 기억하길 바란다.

 

 

 

 

김현동 | 배재대 교수(조세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