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비토, 윤석열
거부권 또는 비토는 의결된 사항의 집행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권리로, 고대 로마 공화정에 기원을 두고 있다.
기원전 6세기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이 된 로마에선 귀족과 평민 간 갈등이 커졌다. 갈등은 평민들이 귀족의 전횡에 항의하며, 징집 등을 거부하고 로마 근교 몬테사크로 언덕으로 몰려가 집단 농성을 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국가 존망의 위기를 느낀 귀족은 협상에 나섰다. 그래서 타협한 방안이 민회에서 호민관을 선출해 평민의 권익을 대변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호민관에겐 법안 제안과 원로원 소집 등의 권한이 부여됐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권한은 광범한 거부권이었다고 한다. 집정관 등 고위 인사의 결정이나 원로원 의결 사항이 평민의 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 집행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이었다.
기원전 2세기 그라쿠스 형제는 이런 호민관의 권한을 배경으로 소수 귀족들이 겸병한 방대한 토지를 가난한 평민에게 나눠주는 토지개혁에 나섰다가, 격렬한 정치적 갈등 끝에 살해됐다.
공화정 몰락 이후 호민관의 거부권은 로마 황제의 권한으로 귀속됐고, 이후 유럽에선 왕의 법률 재가권 형태로 명맥이 이어졌다. 왕의 재가 행위는 절차를 거쳐 마련된 법안이 법률로 효력을 갖기 위한 마지막 문턱 구실을 했다.
현대의 대통령제에선 대통령이 의회의 입법권을 견제하는 구실을 한다. 그러나 삼권분립 원칙에서 예외를 인정한 막강한 권한이어서, 오남용을 막기 위해 견제 장치를 따로 두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거부권이 견제받는 일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의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견제 장치 발동 요건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재임 2년 반 동안 거부권을 무려 25번이나 행사했다.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만도 각각 세 차례씩 의회로 되돌려 보냈다. 자신이나 배우자가 연루 의혹을 받는 만큼 이해충돌 회피의 원칙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특검 찬성 여론이 60%를 훌쩍 넘어서지만 막무가내다.
본디 호민관의 거부권은 평민을 위해 쓰라고 허용된 것이다. 그래서 평민의 권익에 반한 거부권 행사는 원리적으로 부정된다. 실제 그라쿠스와 같은 시기 호민관이었던 마르쿠스 옥타비우스는 토지개혁에 반대하며 거부권을 행사했다가, 민회의 결의로 호민관에서 쫓겨나고 거부권은 무효화됐다.
거부권을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를 지키는 데 남용한다면, 더 말해 무엇하랴.
박병수 국제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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