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사탕”이라던 명태균 사건으로 대선 개입하는 검찰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 또는 ‘윤석열-김건희 부부 공천 개입 사건’에 관한 검찰 수사를 시간순으로 나열하면, 세 챕터의 목차를 뽑을 수 있다.
1장 ‘캐비닛―암장의 시간’(2023년 12월~2024년 9월)과 2장 ‘도마뱀―축소의 시간’(~2025년 2월), 3장 ‘필살기―정치의 시간’(~현재).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넘겨받은 사건을 아홉달이나 묵혔다가(1장), 언론 보도가 시작된 뒤 명태균·김영선을 구속기소하는 선에서 꼬리를 자르려 했으나(2장), 계엄 이후 조기 대선이 열릴 가능성이 커지자 서울중앙지검으로 사건을 가져와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을 집중적으로 털고 있다. 최근 책을 내고 대선 행보를 시작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길을 터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여기저기서 나온다(3장).
각 장의 제목이 상징하듯, 이 사건 하나만으로 검찰의 병폐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사건의 본질인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은 묻어버리고(암장), 명태균과 김영선의 가장 가벼운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만 기소하는 선에서 끝내려다가(축소 수사), 아예 대선판에 선수로 뛰어들어 특정한 방향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정치 개입).
내란 수괴를 낳은 조직으로서 반성을 하기는커녕,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밀어 올린 바로 그 수법으로 조직이 처한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있다. 파렴치하다는 말로는 미처 포괄할 수 없는 사특함이 이 사태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
지금 검찰은 범죄를 암장하고, 축소하고, 표적을 정해 정치에 개입하는 모든 행위가 잘못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썩어 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고, 정무적 판단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 데 대해 어떤 죄의식이나 도덕적 자성도 없다.
검찰 조직 전체가 ‘윤석열화’한 지 이미 오래다.
윤석열에게 줄 서서 검사장이 됐다는 정유미 창원지검장의 “솜사탕 같은 사건”이라는 말은, ‘윤석열화’의 단적인 사례다.
질의응답 내용을 일체 보도하지 않는 조건으로 했다는 ‘희한한’ 기자간담회에서, 정 지검장은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가 설탕을 부풀려 만든 솜사탕처럼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거의 모든 증거가 공개돼 이미 사실로 확인된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뿐만 아니라, 여당의 주요 대선 주자들이 연루된 여론조사 및 당내 경선 순위 조작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강원도지사와 경남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 공천과 창원국가산업단지 선정, 옛 대우조선해양 노동쟁의를 비롯한 주요 국정 사안에 대한 비선실세의 개입 등, 밝혀야 할 범죄 의혹이 수두룩한데, 1년 넘게 사실상 수사를 뭉개다시피 해놓고, 한다는 말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니.
국회와 선관위에 군대까지 보내놓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윤석열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뜻밖에 열린 대선판이 검찰의 생각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암장하고 축소하고 싶었던 ‘솜사탕’이 검찰의 권력을 지켜줄 ‘여의봉’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스스로 민망했던지 창원에서 서울로 손을 바꾸고,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한동훈 경쟁자를 제거하는 수사에 나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수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증거가 다 나와 있는데도 모른 척하던 수사를, 대선 당내 경선을 앞두고 급작스레 몰아치는 검찰의 정략을 비판하는 것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진실을 밝혀 정의를 세우는 게 아니라, 때에 따라 표변하고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검찰은 사회적 흉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비판해도 검찰은 (적어도 겉으로는) 별로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이슈를 팩트로 덮고, 뉴스로 뉴스를 덮을 수 있는 능력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정해놓은 방향으로 쏟아지는 팩트와 뉴스 속에서, 언론은 당위를 위해 싸우기보단 현실과 타협하기 마련이다.
뉴스를 좇는 언론의 딜레마와 팩트를 만들어내는 수사권을 이용해 이 나라의 실질적인 ‘딥스테이트’로 군림하는 검찰의 통치 메커니즘이 대략 이러하다.
검찰의 민주주의 농단은 제도적 상수다.
김성훈 대통령실 경호처 차장 영장 청구를 세번이나 거부할 수 있는 자신감은 다 근거가 있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검찰 개혁에 대해 “제도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절반만 옳은 말이다. 제도가 완벽해 보여도 사악하거나 무능한 사람이 지휘하면 조직을 망칠 수 있지만, 애초에 제도가 잘못 설계돼 있다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와도 남용되거나 오용될 수밖에 없다.
검찰은 후자에 해당한다.
무소불위의 검찰을 방치했다가 나라가 망할 뻔한 경험은 이번 내란 사태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재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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