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협하는 ‘따옴표 저널리즘’
한국 언론의 고질병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따옴표 저널리즘’이다. 누군가가 한 말을 큰따옴표 안에 넣어 그대로 전달하기만 하는 보도 관행이다.
물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의 공적 발언은 독자들에게 중요한 정보다. 기사에 충실하게 담아야 한다.
문제는 근거가 희박하거나 허위·선동에 가까운 발언마저도, 아무런 검증이나 판단 없이 기사에 옮겨 적는 일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만성질환은 건강이 위중할 때 더 큰 부작용을 낳는 법이다.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은 12·3 내란사태가 그렇다. 언론단체와 미디어학자들은 이번 내란사태 보도를, 따옴표 저널리즘의 폐해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로 꼽는다.
윤석열 대통령 등 내란 주모자들의 거짓말과 궤변에, 큰따옴표를 씌워 공론장에 퍼 나른 일부 보수 언론의 보도 행태를 두고는 ‘내란 세력의 확성기’ 노릇을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해 12월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윤 대통령은 체포의 ‘체’ 자도 꺼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한테서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직접 들었다는 군과 경찰의 지휘관들 증언이 잇따르고 있음에도,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일방적인 주장을 뱉어낸 것이다. 더욱이 석 변호사는 당시 윤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공식 선임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언론은 그의 말을 단순히 전달하는 데 급급했다. 제목에 그의 말을 큰따옴표로 인용한 기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아 비판적으로 보도한 곳은 한겨레와 문화방송(MBC) 등 소수였다.
당장 “사실상 내란 선동의 길을 터주는 몰지각” “체제의 위기 상황에서 그 존재만으로도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받아쓰기 보도”(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성명)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숱한 비판에도, 내란 세력의 일방적인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적는 보도 행태는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 급기야 “내란죄 수사가 실질적 내란”(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인단 기자회견)이라는 언어도단이 주요 매체들의 헤드라인에 등장했다.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내란 동조’ 발언이 공론장에서 하나의 ‘정당한 입장’으로 대접받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은 언론에 의한 공론장 교란이 “(비상계엄 선포 당일 국회 보좌진 등의 저항을 보고) 마치 저희를 이용해 폭동을 일으키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김현태 특전사 707특수임무단장)는 적반하장식 주장의 자양분이 됐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김용현 전 장관의 변호인단이 비판적인 매체들의 취재를 불허한 채 실시한 두 차례의 기자회견은, 언론이 사실상 내란 세력의 스피커로 전락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현업 단체들이 “어떤 언론도 내란범의 입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기자회견 취재 거부를 권고했지만, 김 전 장관 쪽의 내란 옹호 궤변은 기자회견에 참석한 다수의 언론에 의해, 유튜브 방송 또는 온라인 속보로 실시간 생중계됐다. 변호인단 주장에 대한 검증이나 비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국의 미디어학자 휘트니 필립스는, 2016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극우 담론이 어떻게 사회적 영향력을 키웠는지 분석한 책 ‘미디어는 어떻게 허위정보에 속았는가’에서, ‘주류 미디어의 증폭 효과’에 주목했다.
기성 언론이 음모론자부터 나치주의자까지 비주류 극우 세력의 메시지를 무분별하게 전달한 결과, 그들이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필립스는 미국 언론인들이 보도에 ‘잘못된 등가성’을 적용함으로써, 허위와 여론 조작을 노린 이야기가 사실 및 공익적 가치가 있는 이야기와 동등한 수준의 주목을 받게 했다고 지적했다.
‘등가’가 될 수 없는 주장을 동등하게 보도함으로써 ‘극단주의의 정상화’라는 나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필립스가 ‘증폭의 산소’라고 꼬집은 미국 주류 언론의 보도 행태는, 2025년 한국 언론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터넷 매체는 물론, 자칭 ‘주류 언론’마저, 망상에 휩싸인 권력자가 민주주의를 유린한 국가 위기 상황에서, 내란 세력이 내뱉는 온갖 헛소리를 부지런히 증폭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헛소리에 따옴표를 씌워 제목으로 도배하는 관행은, 선진국 언론에선 찾아보기 힘든 한국 언론의 뿌리 깊은 병폐다.
채영길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난달 초 ‘내란 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10원칙’을 제안했는데, 그 첫번째가 모든 주장에 같은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기계적 중립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수호가 저널리즘의 본질임을 상기하자고도 했다.
극우 세력의 헛소리에 주저 없이 마이크를 내줘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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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불신 주범 '내란 받아쓰기'보도 1등도 YTN
탄핵변론 기간 중 관련기사 31%가 '따옴표'
받아쓰기 기사 36%는 '윤측 주장 받아쓰기'
YTN 이어 뉴스1·뉴시스·SBS·이데일리·연합
뉴시스는 85%가 '윤측 주장'만 받아써 보도
민언련 49개 주류 언론 모니터링 결과 발표
우리 주류 언론이 전 세계 신뢰도 꼴찌를 차지하고, 전 국민 개혁대상 1호로 지탄받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받아쓰기’ 보도는 최근 가장 자주, 가장 많이 비판받는 언론의 고질병이다.
정치인, 고위관료, 유명인(셀럽)들은 정치적인 목적이나 자기 이해관계 때문에, 거짓말이나 과장·축소, 사실 왜곡 등의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검찰 같은 수사 기관의 발표는 일방적 주장인 경우가 허다하다.
기자들이 이런 거짓말과 일방적 주장을 검증 없이, 따옴표에 넣어 그대로 받아쓰기 하는 보도가 매일 쏟아지고 있다. 포털을 열어보면 따옴표로 받아쓰기 한 주류 언론 기사가 끝없이 이어진다.
받아쓰기 보도의 폐해가 심각한 것은, 기자들도 스스로도 잘 알고 국민들도 안다. 정치인과 셀럽들의 ‘아무말 대잔치’는 마치 사실이고 진실인 것처럼 현실을 호도하고, 또 이것이 무슨 대단한 사회적 의제(아젠다)인 것처럼 보도돼 여론을 왜곡·조작한다. 선거 결과나 정부의 정책을 뒤흔들기도 하고, 개인의 인권과 명예를 짓밟아 누군가를 비극으로 내몰기도 한다.
주류 언론들의 검찰 받아쓰기 고질병은 최악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야당) 정치인들이, 검찰이 만들고 흘려준 정보를 악의적으로 받아쓰기 보도한 언론에 의해 희생됐다. 지금도 야당 대표를 노린 주류 언론들의 검찰 받아쓰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말 배우 이선균은 경찰 정보를 받아쓴 수백 건의 기사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다.
선거 때마다 상대 정당과 후보를 향해 던지는 비방·흑색선전을 받아쓴 기사가, 표심을 흔들고 정치혐오를 불러왔다. 진중권 류의 만담가들이 SNS로 떠드는 ‘아무말 대잔치’ 보도는 한심할 뿐이다.
윤석열 일당이 벌인 12.3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사건 속에서도, 주류 언론의 한심하고 못된 ‘따옴표 받아쓰기’ 버릇은 계속됐다. 헌법질서가 파괴되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도 멈추지 않았다.
‘나라가 망하면 그 이유의 8할이 언론 때문’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언론시민단체인 민주언론실천연합 모니터 팀이, 윤석열 내란수괴 탄핵심판 기간 중 주류 언론들의 받아쓰기 고질병이 얼마나 심했는지 조사했다.
49개 주류 언론사를 대상으로 탄핵심판 1차 변론 기일인 1월 14일부터 최종 변론기일 다음날인 2월 26일까지 44일간, ‘헌법재판소+헌재+윤석열+변론+탄핵심판’으로 검색해 중복 데이터와 관련 없는 내용을 제외한 후, 기사 8,187건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전체 기사의 31.5%인 2,581건이 ‘따옴표 받아쓰기 기사’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탄핵 심판 관련 기사 10건 중 3건 정도는 검증없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쓴 기사라는 것이다.
‘따옴표 받아쓰기’ 기사 2,581건 중에서는 YTN 기사가 253건으로 ‘압도적’인 1위였다. 다음으로 민영통신사인 뉴스1(210건)과 뉴시스(175건)으로 뒤를 이었다. SBS(169건), 이데일리(151건), 연합뉴스(132건), MBC(126건), 노컷뉴스(108건), 대구지역 극우 신문인 매일뉴스(91건), 연합뉴스TV(90건) 등의 순이었다.
민언련은 “상위 10개 언론사에 보도전문채널 YTN과 연합뉴스TV, 뉴스통신사 뉴스1‧뉴시스‧연합뉴스가 이름을 올린 것이 눈에 띈다”면서, 이를 “보도전문채널과 뉴스통신사는 실시간 속보 기능이 강한 매체로, 빠르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는 매체로, 발언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보다 거의 실시간으로 탄핵 심판을 중계하듯 전달한 보도방식의 결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시간 속보 매체’라고 해서 아무말이나 그대로 ‘따옴표 받아쓰기’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실시간 속보’를 핑계로 일방적 주장을 검증 없이 보도한 것으로, 고질적이고 무책임한 받아쓰기를 '경쟁적으로 빨리' 보도한 것일 뿐이며, 저널리즘 원칙을 무시한 보도에 해당된다.
‘따옴표 받아쓰기’ 기사 중 내란수괴 윤석열의 입장을 반영하는 기사는 얼마나 될까?
전체 2,581건 가운데 35.8%가 ‘윤측 받아쓰기’로 나타났다고 민언련은 분석했다. 민언련은 “각 주체들의 발언이나 입장이 각기 나타난 따옴표 기사도 있지만, 뒤섞인 형태로 나타난 따옴표 기사도 상당수”라면서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윤측’ 받아쓰기가 전체 따옴표 기사의 35.8%나 차지한 것은, 상당수 언론이 윤석열과 그 일당의 주장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무차별로 전달했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탄핵심판 따옴표 기사 중 ‘윤측’ 받아쓰기 보도 건수 1등은 뉴시스(150건)로, 이 매체의 전체 따옴표 기사 175건의 대부분(85.7%)을 차지했다. 이어 뉴스1(118건), 연합뉴스(77건), 중앙일보(61건), 이데일리(45건), 매일신문(42건), 한국일보(39건), YTN(35건), SBS와 데일리안(31건), 연합뉴스TV(30건)순으로 나타났다.

탄핵심판 도중 ‘윤측’(윤석열 내란수괴와 변호인단)은 재판정 안팎에서 ‘이번 비상계엄이 내란이 아니다’ ‘비상계엄을 한 원인은 민주당 횡포와 폭주였다’ ‘비상계엄은 정당한 통치행위였다’는 등, 온갖 궤변과 변명,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윤석열 비상계엄으로 헌법질서가 파괴되었고, 경제는 흔들리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순위가 추락했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주장이었다. 또 이런 주장을 통해 극우세력과 지지자들을 선동하려는 목적이었다.
여러 주류 언론들은 윤석열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기해 보도함으로써, 사실상 반(反)국가적·반(反)민주주의적 보도를 해온 것이다.
‘따옴표 받아쓰기’ 고질병은, 내란 상황에서 헌법질서를 바로잡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라를 위기로 몰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내란의 완전한 진압과 민주주의 위기 극복은, 윤석열 파면과 내란범들의 처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언론의 수준만큼 발전한다’는 말을 뒤집어보자. 언론이 이 모양이면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언제까지 ‘언론 자유’를 이유로, ‘자율 정화’를 핑계로, 이렇게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리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내팽개치는 위험한 주류 언론들을 방치할 것인가?
언론 스스로 먼저 답해야한다.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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