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쿠데타의 위험에서 벗어난 나라
“군사 쿠데타의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것 자체가 한국 민주화의 위대한 성취입니다. 여러분들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학생들에게 매 학기 빠지지 않고 하는 얘기다.
실제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쿠데타는 정말 골치 아픈 문제다.
지금도 적지 않은 국가들이 민주화, 쿠데타, 친위 쿠데타의 무한루프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024년 12월3일 직전까지의 대한민국은, 그 어려운 과제를 해낸 세계의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였다.
군사 쿠데타의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정말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가능했다.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18년의 집권 끝에 자신의 부하에게 살해당하고 나서야 권좌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곧이어 박정희의 군 후배 전두환이 군사 반란으로 집권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부독재를 끝낼 절호의 기회를 얻었으나, 차기 대통령 당선자는 전두환과 함께 군사 반란을 일으켰던 노태우였다.
1992년이 되어서야 문민 대통령 김영삼이 당선되었으나, 3당 합당을 통해 군부 세력과 손을 잡은 결과였다.
1998년 김대중은 박정희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던 김종필과의 디제이피(DJP) 연합을 통해 집권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와 이인제의 대선 출마가 없었다면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2013년에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발판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군사 쿠데타가 실제로 재발할 뻔했던 절체절명의 위기도 여러번 있었다.
노태우는 여소야대와 저조한 지지율로 정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친위 쿠데타를 계획했다. 하지만 그의 최종적인 선택지는 나름대로는 ‘정치적’인 방법인 3당 합당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윤석열 정부 못지않게 지지율이 떨어지고 대규모 대중 시위가 일어났지만, 그가 군사력을 동원해 위기를 돌파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박근혜 정권 말기에는 박근혜-최순실(최서원) 게이트로 지지율이 5%대로 떨어졌고, 백만 시민이 촛불시위를 벌였다. 국군기무사령부가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했지만, 감히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쿠데타 유경험자에게도, 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의 딸에게도 대한민국에서 군사력 동원은 현실화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비상계엄 선포는 야당 폭거에 맞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윤석열 쪽의 항변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은 계엄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21세기에 무슨 계엄이냐.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은 “쿠데타는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고, 대한민국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발끈했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계엄 내린다고 어느 국민, 어느 군인이 따르겠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국민을 안심시켜 놓고 뒤통수를 치기 위한 거짓말이었을까?
2024년 12월 그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명령을 받은 군인들이 소극적으로나마 항명을 했고, 시민들은 무장 군인이 투입된 국회로 달려가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응원봉 시위대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회는 계엄을 해제했고,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현직 대통령과 쿠데타에 관여한 군인들과 경찰 수뇌부가 구속기소되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미리 설정해 놓은 헌정 제도의 프로그램은 차질 없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예상대로였다. 대통령의 무모한 계엄 선포 ‘명령’ 그 자체를 막을 수 없었을 뿐이다.
3월의 대학 강의실은 늘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올해는 민주화의 위대한 성취를 말할 수 없었다. “쿠데타 위험이 사라진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신나게 얘기할 수 없었다. 대신 12·3 계엄 사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고, 강의실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엄중했다.
내년 봄에는 12·3 계엄이 민주화 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우여곡절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또 한번 생각지 못했던 위기가 찾아왔지만, 우리가 얼마나 지혜롭게 극복해냈는지, 그 주역들과 함께 나누게 될 대화가 벌써 기대된다.
더디 가는 것이 힘들고 답답했던 적은 있어도, 결국 후퇴하진 않았던 것이 우리 민주화의 여정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군사력을 동원한 권력자는 어떤 처분을 받게 되는지, 헌법재판소가 다시 한번 역사의 기록에 남겨야 한다.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고대하던 소식이 들리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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