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왕자와 제비처럼!
* 오스카 와일드가 1888년에 쓴 동화 ‘행복한 왕자’에 들어간 월터 크레인의 삽화. 위키미디어 코먼스
내일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섬찟하고 황당했던 계엄 선포가 갑작스레 만들어낸 투표일이다.
한국 정치의 까마득한 밑바닥 시궁창에서 각양각색의 응원봉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밤하늘에 이르기까지, 청룡열차를 타듯 곤두박질과 치고 오르기를 반복해 토할 듯 어지러웠던 지리함에 일단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다.
투표를 할 것인가?
투표를 한다면 누구에게 할 것인가?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들에게 흥미로운 연구 하나를 소개한다.
1973년 이래 40년간 유럽연합 국민 대상 설문조사를 분석한 조지 워드의 연구에 따르면, 국민의 행복감이 높을수록 현재 집권하고 있는 여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높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갤럽, 유엔 지속가능발전네트워크가 발표한 2025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147개국 중 58위로 작년(52위)보다 6계단이나 하락했다.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도 22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인 22위다.
이 보고서에서 여러차례 한국이 호명되는 부분은 첫째, 오랫동안 부동의 세계 1위인 자살률이다. 2023년 현재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4.8명으로 201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둘째, 1인 가구와 혼밥(혼자 밥 먹는 사람)의 증가다.
앞의 연구 결과대로라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이 질 확률이 커진 셈이다.
이 연구 결과가 더 흥미로운 것은, 전통적으로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진 국내총생산 증가율(R²=6.6%), 실업률(4.4%), 물가상승률(3.1%)보다 행복감(8.8%)의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난 것이다.
국민이 경제보다 행복을 더 중요시 여긴다는 것은, 또 다른 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대부분의 대통령 후보들은 ‘문제는 경제야!’를 외치며,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주범이 바로 경제다.
살상무기를 많이 팔아야, 환경을 더욱 오염시켜야,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켜야, 노동자에게 더 낮은 임금을 주고,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새벽까지 일하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 ‘나쁜’ 방식을 강요함으로써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현재 경제의 작동 원리다.
무엇보다 그 경제 논리가 만들어낸 인류 종말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때, 우리는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우리 정치의 목표를 ‘나쁜’ 경제성장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행복’으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성장을 위해 참으라고 외치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무엇이 국민을 행복하게 할까?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 답을 알고 있다. 안정적인 소득도 중요하다. 하지만 아프고, 장애가 생기고, 나이가 들고, 직업을 잃더라도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 든든한 사회안전망이 있어야 한다.
경쟁, 탐욕, 약육강식의 ‘나쁜’ 경제 논리가 아니라, 연대와 연민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중심 작동 원리가 되어야 한다.
정말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
변화는 정치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정치 철학가 로베르토 웅거는 “정치학이란 운명을 거스르는 이론”이라 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늘 희망을 품은 정치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목욕재계 후 투표소에 가야 하는 이유다.
동화 ‘행복한 왕자’는 불행이 스며들 틈이 없었던 왕궁에 살던 왕자 이야기다. 하지만 궁전 안의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다.
왕자의 동상에서 내려다본 허름한 집 안에서 바늘에 찔려 벌겋게 부은 손가락으로 밤새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인, 열이 나는데 약도 못 먹고 울며 보채는 어린아이, 불씨 없는 벽난로 옆에서 주린 배를 움켜쥔 채 글을 쓰다 잠든 작가의 모습을 보게 된 왕자는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온몸을 둘렀던 순금, 칼자루의 루비, 두 눈에 박힌 에메랄드를 떼어 그들에게 주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는 것을 포기한 제비가 그것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보석을 떼어내 볼품없어진 왕자의 동상과 그의 곁에서 얼어 죽은 제비는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꽁꽁 언 제비는 얼마 전 추운 남태령에서 눈을 맞으며 밤을 새우던 이들과 닮았다.) 하지만 나는 왕자와 제비가 행복했다 믿는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장기 집권 여당이 되고 싶은가?
그러면 몸에 두른 순금, 칼자루의 루비, 눈에 박힌 에메랄드를 빼라.
무엇보다 ‘나쁜’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지 말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라!
행복한 국민이 되고 싶은가?
부자 되게 해주겠다는 후보에게 속지 말고, ‘모든 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후보에 투표하라!
행복한 왕자와 제비처럼!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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