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함안, 의령 답사기 (김현숙)

道雨 2007. 6. 1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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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은 개인으로부터 비롯된다.

                  : 함안?의령 답사

                                               - 김 현 숙 -


  '처음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보통 영업집이 개업을 했을 때 가까운 이들이 선물로 주는 액자에 담긴 성경 귀절로 작게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크게, 원하는 만큼 이룰 것이라는 좋은 말의 선물이다.

  오늘 남편과 같이 한 답사에 대한 느낌이 위의 말과 닮았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꼼꼼한 준비없이 나섰는데 돌아올 때 느낌은 그득하다.

순간의 준비는 미약했을지라도 답사에 대한 기대, 길게 바라보며 계획한 준비는 순간의 미흡함조차도 감싸안을 만큼 큰 힘을 가진 것 같다. 즉 평소에 준비된 바탕 지식이 새로운 유적지에서도 그다지 생소하지 않게 접근이 가능하였다는 것일 것이다.


함안의 무기연당, 대사리 석불과 무진정, 함성 중학교내에 있는 5층 석탑?옛 동헌터와 돌 유적들, 군북의 채미정, 어계고택, 서산서원, 방어산 마애불, 의령의 정암나루터, 보천사터의 탑과 부도, 덕곡서원.


  오늘 답사지에서 답사지로 이어지는 동안 가슴에 흘러넘치던 생각의 줄기들, 그리고 남편과의 대화.......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질 느낌과 생각들......

그렇게 기록될 내용을 정리하며 돌아왔다.


  함안을 대표하는 보물 대사리 석불과 방어산 마애불.


마애불을 보기 위해서 거의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등산을 하면서 자연경관을 즐기고, 운동을 하면서 유물을 보고... 그리고 소중한 풍경 한 자락을 보았다.

나이는 60대 정도이신 아주머니 세 분이 ‘약사여래불’을 노래처럼 읊으며 마애불에게 절을 올리고 있었다. 눈이 아직 남아서 햇살에 녹은 길은 미끄럽고 가파른데 간절히 기원하는 무엇을 가지고 여기까지 와서 그 마음을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약사여래불. 

그렇게 소망을 담아  두 손과 머리를 합하여 모두는 것이다.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이의 순정으로 인하여 부처님은 새롭게 보인다. 선량하고 무작정의 믿음을 던지는 대상. 그 대상을 위해 어떤 땐 역사 속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지만 내가 보는 이분들의 무한한 신뢰를 담은 기도만으로도 깨달은 자인 부처의 힘을 보는 듯하다.


  한 사람의 깨달음이 한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발휘함을 부처에게서 보았다면 바른 것에 대한 꿋꿋한 지킴, 지조만으로도 '백세청풍'을 이루리라는 칭송을 받은 인물이 있다.

어계 조려.

역사 속에는 그만그만한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조려 그분의 유적을 찾아보고 그분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교과서를 통해서 아는 것 이상의 힘을 가지게 한다.

어계 고택은 세조가 조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사실이 부당함을 항거하였던 여섯 사람(생육신)중 한 분인 조려의 생가이다. 호가 어계여서 어계고택이란 이름을 얻었고 채미정이라는 정자, 서산서원도 조려로부터 비롯되었다. 또 그 동네에는 함안 조씨 시조 비각이며 기념물이 여러 개 있었다.

  생각해보면 후손이 출세해서 윗 조상까지 빛나게 되는 경우가 있고 조상이 훌륭하여 후손이 그 영광을 더불어 누리는 경우도 있다. 조려는 후손으로서도 조상된 자로서도 가문에 영광을 안겨준 인물 같다. 그래서 조려 그의 행적은 가문을 넘어서는 민족 공통의 자산으로서 백 세대토록 이어지라는 현대에도 통하는 교육과 도덕의 모범으로써 유물과 유적을 보존하고 기념하는 것 같다. 


  오늘 답사에서는 또 다른 느낌 하나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조려를 비롯한 생육신을 서원의 제사공간에 배향한 서산서원.

함안의 무기마을에 주담 주재성의 생가와 연당 옆 쪽에 기양서원 자리가 있다.

1971년에 충의사와 영정각이 들어섰지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있기까지 주재성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고 한다.

의령 보천사터를 가는 중에 덕곡서원이 있는데 퇴계 이황을 배향한 전형적인 제향공간 위주의 서원이다. 서원 철폐령에 의해 헐렸다가 현대에 들어서 다시 세워졌다.

위에 든 세 서원은 서원의 발달사에서 교육기능과 제향기능 중에서 교육기능은 약화되고 제사기능만 강화되는 서원말기의 사이에 세워지고 존재했던 서원들에 속한다. 서원이 교육기능이 약화되면서 서원이 가문의 훌륭한 인물을 배향하는 사적 공간으로 남발되고 공적인 존재 이유인 교육기능은 약화되면서  서원은 또한 탈세의 온상이 되는 등 서원은 역기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대원군의 정치 개혁의 의지이자 조세개혁의 형태로 500여개를 헤아리던 서원 중에서 47곳의 서원만이 남고 나머지 서원은 모두 세금을 내는 대상이 된다.


  보천사터의 탑과 부도.

의령을 대표하는 보물로서 오늘 답사여행에서 가장 예쁘고 단정한 유물을 본 느낌으로 눈이 반가웠다. 그런데 옛 유물의 유명세를 빌려 폐사지 부근에 새로 개업하는 절 건물은 대체로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옛 보천사 자리에는 용국사라는 절이 거대한 공사를 하고 있다. 부도와 탑이 있는 곳을 입구로 하고 들어가는 입구는 여래불을 죽 늘어 세워 놓았다.

함안 마애불이 있는 방어산 중턱에 있는 마애사도 그렇고.

그곳에서는 부처님의 고운 뜻이 보이지 않고 거액의 자본을 투자하여 새로 시작하는 영업 사찰처럼 느껴진다. 마애사 벽화는 부처님의 탄생과 깨달음 그리고 열반의 과정을 나눠 그렸는데, 부처를 임신하는 어머니 마야 부인은 윗 몸의 부분부분이 노출되어 있고 여자의 모습으로 부처를 유혹하는 마귀들은 거의 포르노 잡지의 몸매 수준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어떤 가치관이 있었기에 이런 벽화를 가능하게 했을 텐테 그것이 궁금하다.


조선과 고려, 삼국시대의 유물을 고루 돌아본 유물 나들이.

그것들이 자리 잡고 있는 땅 함안과 의령은 아라가야를 한때는 품었던 곳.

그리고 그 자리에 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역사유적을 통해서 나를 찾아가고, 나를 만들어 가고, 나를 존재하게 한 근원의 땅 조국을?민족을 사랑할 힘을 그곳에서 보았고 오늘 같은 날들이 모이고 합쳐지면서 힘있고 아름다워질 내일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