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남해 답사여행 (답사기) (김현숙)

道雨 2007. 6. 1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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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답사 여행

                                                        - 김 현 숙 -

  


  흘러가는 물은 항상 새롭다.

반대로 고인물은 썩는다고 했고 ―

항상 변화하는 자연의 세계처럼, 나무가 크는 순간은 포착할 수 없지만 나무가 자라고 있음은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내면이 이렇게 성장하는 것을 확인한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는가!


  민학회 2월 답사는 남해로 남해대교가 세워져 이제는 섬의 속성이 차츰 엷어져 가는 '남해도의 민문화 보기'라는 주제였다.


  조선 전?후기를 가르는 가르마 역할을 했던 임진왜란과 충무공 이순신의 흔적을 찾아보았던 남해 충렬사,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 장량상 동정마애비......


  고려 때 팔만대장경을 만드는데 남해에서도 조판했을 것이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분사도감이라는 기록과 일연스님이 젊은 날(44 - 45세) 최이의 장인이자 고려의 실력자인 남해사람 정안의 초빙을 받아 정림사에 머물면서 팔만대장경 조판 작업 마지막 두 해를 관리하고 마무리했을 것이라는 기록의 현장인 남해분사 대장도감터.


  원시어업의 형태인 삼동면 죽방렴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인데 현재 가장 비싼 값을 받는 멸치를 생산하는데 멸치를 잡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적게 받아 몸이 덜 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적인 것이 가장 경쟁력 있는 한 요소임을 드물지만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에서 캐는 조개 종류는 고가 식품이어서 조개 캐는 바닷가 사람들은 부자가 많다. 여기에는 희소성이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했고.

고소득을 올리는 그곳 사람들의 행운이 좋아보였다.


  바닷가에 있는 절.

  남해 용문사는 바다 건너 반대편 산 쪽에 유명한 남해 보리암이 있다.

용문사 대웅전 천장에는 용?거북?물고기?게 그림이 부조 또는 환조로 가득하다. 바다 속 세계를 형상화하느라고 그러했겠지. 해남 미황사 대웅전 바깥 기둥 받침 돌에 새겨진 꽃게를 답사 안내 책에서 그렇게 찬탄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전남 불회사에도 천장에 용문사처럼 장식을 했는데 그 때도 생소한 것을 익히는 기분으로 그렇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절의 주불을 모신 건물에 들어가면 천장을 올려다보며 학습을 심화시키나보다. 


  가천마을 미륵바위.

 숫 바위는 남성의 성기형상을 하고 있는 자연석에다 조금 인공을 가한 것처럼 보이는데 옆에는 바위 한 가운데가 갈라져 속살이 노출된 모습의 큰 바위 한 덩이가 있고 그 옆에는 배가 불룩한 바위가 있다.

여성의 성기와 남성의 성기가 만나는 그곳에서 사람이 만들어진다.

귀한 노동력이었던 사람.

귀한 신분이든 천한 신분이든 사람은 고대사회에서 중요한 자원이었다.

지배자에게 노비는 재산이었고 재산을 키워가는 수단의 하나이었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또한 노비 자체의 출산은 새로운 노동력을 생산하는데 결국 이것은 부를 생산하는 훌륭한 제도였으리라.

그리고 자수성가하는 집에서도 가족의 노동력은 귀중한 자원이었다.

억센 농사일이나 전쟁에서 필요한 남자는 더 선호하였을 것이고.

고대를 지나 중세에 접어들면 새로운 생각의 변화 때문에 남자는 선호되기도 한다.

남자 중심의 문화는 여자의 권리를 뺏어다 남자에게 주었다.

재산권 분배에서도 남자에게 유리하고, 출세하는 데도 남자 위주로 짜여진 판이었으니 딸보다 아들 낳기를 소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바위의 영원에 가까운 생명력에 미륵부처님의 이름을 같이 붙이고, 또한 형상은 사람의 성기이니 풍요와 다산 그리고 삶에 대한 기원을 생산의 형식으로 받고 싶어했겠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통해 인간 이순신의 고뇌하는 내면을 읽었다면 이순신이 고뇌를 뚫고 적과 대치했던 현장인 노량 앞 바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같이했던 현장인  이곳에서는 '정말 잘 살았다'는 한 훌륭한 인간의 모범을 보고 가는 것 같다.

'죽을 작정을 하고 싸우면 살 것이고 살려고 들면 죽을 것이다'는 명언은 자신의 죽음가운데서도 증명하였다. 죽을 작정을 하고 싸우니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죽어서는 영원히 대한민국의 가슴에 살아남을 이름을 남겼고 자손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조상으로 유산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일연스님의 전기문인 '일연'  읽기.

그래서 이번 남해답사는 문화유산 답사이면서 문학기행의 형식을 겸했다. 역사 속에는 문화가 있고 문학이 있으며 또한 삶이 담겨 있다.

삶의 형식?양식 속에 담긴 사람의 생활 그리고 감정 ― .

그 근처까지 다가가는 답사여행이 될 수 있다면 이제는 여행은 무늬를 벗어나서 진정한 그림을 그려갈 것이다.

  한 조각 한 조각 나의 생활로, 나의 의미로 형상을 향해 갈 것이다.

어떤 모양이 될지는 지금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그 무엇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