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재

금은아미타여래좌상에 얽힌 숨은 이야기

道雨 2008. 1. 5. 16:12

 

 

 

진짜는 진짭니다, 금은여래좌상


    금은아미타여래좌상(金銀阿彌陀如來坐像, 높이 15cm)


    이 불상은 불상과 대좌, 그리고 광배가 따로 주조되어 하나로 결합되었다.

  여래상은 순금이고, 대좌와 광배는 은에다 금을 입혔다.

  통일 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추정되는데, 연화 대좌 위에 석가여래가 중품상생인(中品上生印)을 짓고 앉아 있다.

  뒤에는 불이 타오르는 형상의 광배가 붙어 있고, 대좌는 평면 6각형의 3층 기단과 앙련(仰蓮)의 대로 이루어져 극히 아름답다.

  특히 대좌에 금을 입힌 방법이 때려 누르는 수법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현대의 세금 기술로도 불가능한 고도의 기술이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은판이 째지거나 한 쪽으로 쏠려 두께가 일정치 못하기 때문이다.

  또 투각으로 표출된 광배의 화염문은 신라의 세공 기술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이 불상을 관리하면서 순은의 광배꽂이가 부식된 채 떨어져 나가 대좌에 헐렁하게 꽂혀 있음을 확인하였다. 세밀하고도 화려한 조각에 비추어 보아 광배꽂이가 처음부터 헐렁했다고 생각키는 어려우며, 순은이 부식되려면 오랜 세월이 걸리니 전문가의 조사와 감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불상은 1967년 법정에서 가짜로 판결 받아 세상에서 잊혀졌다.


    아주 귀하고 오래된 것이다


     1966년 어느 봄날이다. 마당에는 목련이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데, 누군가 회현동에 사는 김동현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문밖에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첫 눈에 선량한 사람보다는 도굴꾼이나 중간상 같아 보였다. “경주에 사는 김준철이라 합니다. 좋은 물건이 있어 길을 물어 찾아 왔습니다.” 방안에 들어온 그는 눈치를 살피며 보자기를 끌렀다. 그 순간, 안에는 비단 헝겊으로 감싼 불상이 누워 있었다.

   순금으로 만든 불상과 은으로 만든 좌대와 광배가 너무나 귀하고, 조각 수법도 대번 신라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불상을 잡은 김동현의 손이 가지런히 떨렸다. “대단한 물건입니다. 굉장합니다.” 그 말에 김준철은 어깨가 으쓱 올라가며 얼굴이 밝아졌다. 물건을 제대로 보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소문대로 대단합니다. 이 불상은 경주에 있는 석탑에서 발굴된 것입니다.”. “직접 발굴했습니까?”

    김동현이 쏘듯이 물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가 끄덕거렸다. 겁이 덜컥 났다. 도굴품으로 아직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다. 가지고 싶었지만 위험한 물건이라 망설여졌고, 마침 돈이 없었다. 불상을 들고 찬찬히 바라보던 김동현의 입에서는 연실 감탄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팔기는 좀 어려울 것입니다. 너무 온전하니까 의심이…?”“빨리 처분해야 할텐데….” 김준철은 불안한 기색을 띠며 시선을 떨구었다. 김동현은 가깝게 지내던 정권장에게 전화을 걸었다. 그도 불상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정권장이 입을 열었다. “250만 원 내겠소.” “….” 대단한 거금으로 기와 집 5채 값이었다. 그러나 김준철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실망의 빛이 가득했다. “이 물건은 저 혼자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는 못 팔겠습니다.” 그는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위에 놓여 있던 불상을 다시 보자기에 주섬주섬 쌌다.

    그로부터 며칠 후, 김동현의 집에 전화 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여보시오, 나 이병각이요. 빨리 우리 집으로 와 줘야겠어.” 명령조의 전화를 받고 김동현은 급히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안면이 있던 종로 고옥당(古屋堂)의 주인 김정웅(金正雄)이 눈으로 인사를 해 왔다.

  앗! 김동현은 가슴이 철렁하고 놀랐다. 며칠 전, 김준철이 자기 집으로 가지고 왔던 금은아미타여래좌상이 상위에 놓여 있던 것이다. “아니! 이 불상이 어떻게 여기에?” 말을 하면서 김동현은 옆에 있는 김정웅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마치 개선 장군처럼 환한 기색을 띠며 차갑게 외면했다.

  “이 불상은 어떤 물건인가?” 자신이 없는 말투로 이병각이 물었다. 그러자 김동현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사장님, 좋은 거여요. 재간 있으면 사세요.” “어떻게 알지? 훌쩍 보고.” “이 물건 우리 집에 왔던 거여요. 돈이 없어서 정권장을 보여 주었더니 그가 250만 원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못 팔겠다 하며 그냥 가져갔어요.” “자네가 좋다니까 사지. 그래 얼마 받겠소?” 금속 유물에 대한 김동현의 감정을 믿었던 이병각은 결심을 굳히고는 김정웅을 쏘아보며 물었다. “생각해서 주십시오.” “그러면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250만 원 주지.” 그 날의 거래는 매우 시원스레 끝났다. 김동현도 기뻤다. 왜냐하면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 일단 가깝게 아는 사람에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거짓 증언으로 불상을 죽이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하루는 형사들이 들이닥쳐 김동현을 연행해 갔다. “ 경찰서까지 가 주여야겠어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짚차를 타고 가면서 형사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듣고서는 이해가 되었다.

  사건의 전모는 이러했다. 경주의 남산에 남산사(南山寺)라는 황폐화된 절이 있는데, 그 앞마당에는 3층 석탑이 두 개나 서 있다. 일확천금을 노리던 도굴꾼들이 현재 보물 제124호인 ‘남산 사지의 3층석탑’을 자키로 들여 올려 이 불상을 도굴했다는 소문이다. 그 일당은 이미 여러 번의 도굴을 했고, 고미술품을 대구에 사는 모 수집가에게 팔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도 처음 보는 금은여래좌상이 나오자, 생각을 바꾸어 서울로 팔러 온 것이다. 그 중 한 명인 김준철이 김동현을 찾아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자, 또 다른 일당이 불상을 가지고 올라와 종로의 고옥당을 들렸다. 주인은 김정웅이었다.

   “이거 좋은 겁니다. 국보 감입니다.” “그런데 요즘 만든 것 아닙니까?” 노련한 장사꾼이 일침을 가했다. “택도 없는 소리 마시오. 500만 원입니다. 한 푼도 에누리없습니다.” 순간 김정웅의 입가에 조소 어린 비웃음이 돌며 차갑게 쏘아 붙였다. “여보시오, 떳떳하지도 못한 물건이 어떻게 제 구실을 한단 말이요? 누구 신세 망칠 일 있어요?” 도굴품임을 확인한 김정웅은 대뜸 반발 비슷하게 나왔다. 그 자는 아차 싶어 오금이 절였다. “그럼, 어떻하면…?” “50만 원을 주겠어. 이것도 대단히 큰 돈이야. 만약 다른데 가면 10만 원도 어림없을 거야.”  

  그 자는 돈을 받고서는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쳤다. 그런데 정작 50만 원을 받아 경주에 왔을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뭐야! 50만 원을 받아 왔다고?” “그래. 그것도 많이 받은 거야.”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김준철은 250만 원 준다는 것도 안 팔고 왔는데 고작 50만 원 받아 오고 큰소리가.” 한 놈이 그 자의 멱살을 잡고,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싸움이 커지자 경찰이 들이닥쳐 일당은 모두 감옥에 갇혔다. 사건의 담당한 형사는 곧 이 싸움이 단순한 감정 싸움이 아니라 도굴과 연관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경주 경찰서 특수 형사대. 형사 한 명이 책상을 주먹으로 꽝 치며 소리를 질렀다. 변명이 통하지 않는 군사 혁명정부의 경찰이다.

   “불상입니다.” “뭐라고? 불상? 지금 오데 있노?” " ….” “오데 있냐고? 이 새끼야!” 형사의 주먹이 가차없이 가슴팍을 파고들었고, 비명 소리가 난자했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사건 전말이 모두 밝혀졌다. 그들은 문화재보호법위반이란 죄목으로 바뀌어 구속 수감되었다. 

  이 사건은 신문에 대서 특필되었다. 당시 기사는 도굴의 심각성을 알리고, 불상 하나를 거금 250만 원에 주고 산 사람까지도 싸잡아 매도하였다. 특히 어려운 국내 사정에 비추어 보아 너무나 엄청난 돈이었다. 급기야는 검찰까지 개입하여 사건과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구속시켰다.

  사건은 곧 서울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고, 이병각이 소장하던 금은여래좌상은 장물로 압수되어 국립중앙박물관 지하수장고에 보관되었다. 특히 250만 원을 받은 김정웅은 50만 원은 본전으로 젖히고 이 일과 관계된 주석도를 비롯한 여러 명과 200만 원을 나누어 썼다. 이병각과 김정웅도 장물 취득 혐의로 구속되었다.

    당시 재개의 거물이던 이병각은 즉시 오병학 변호사를 선임하였다. 사건의 맥을 잡은 오병학은 그 즉시 김동현을 찾아가 위증을 부탁했다. 김동현이 그 불상을 가짜라고만 진술하면 모든 사람들이 풀려난다는 요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짜일 경우 문화재가 아닌 공예품이기 때문이다.

   “김 선생님, 해결의 열쇠는 김 선생님에게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오 변호사는 집요하게 위증을 설득했다. 김동현은 먼저 양심을 속이고 또 위증을 하면 그 불상은 영원히 가짜가 되어 더 이상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 염려되었다. 그러나 가깝게 지내던 이병각의 감옥 생활도 보기가 어려웠다. 갈림길에 선 김동현의 인간적인 고뇌는 너무나 지독했다.

   “김 선생님, 그 불상의 진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진짜죠. 내가 여러 모로 살펴보았는데, 틀림없는 진짭니다. 진짜는 진짜지요.“ “예, 진짜는 진짜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말로 가짜라고 해도 진짜는 진짜죠. 그러니까 가짜라고 말씀해 달라는 것입니다.” 김동현은 오병학의 기막힌 머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드디어 재판이 열렸다. 도굴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오랏줄에 묶이어 법정 맨 앞좌석에 앉았다. 그 사이 사이에는 교도관이 끼어 앉았다. 그 날의 재판은 세인의 관심이 컸던 탓으로 각종 신문과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들도 뒤쪽에 진을 치고 있었다.

   재판이 진행되고, 드디어 김동현이 증인으로 채택되었다. 문상익 검사의 날카로운 심리가 계속되고, 오병학 변호사의 변론도 불을 튀겼다.

  “증인은 이 불상을 이병각 집에서도 보았고, 좋으니까 사라고 했지요?” “예.” “그 말은 진짜 신라의 불상으로 인정한 것이 닙니까?” 문상익 검사의 심리가 있고, 오병학 변호사의 변론이 시작되었다. 김동현은 마음이 지쳐 있었다. “증인, 증인은 이 불상이 신라 시대의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오병학이 김동현을 쳐다보며 눈을 찡긋했다. 김동현도 그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광배의 화염문 조각이 너무 화려하고 세밀합니다.” “그 말씀은 신라 시대의 작품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풀 조각이 우리 나라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증인,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 불상이 우리 나라 신라의 불상이 아닙니까?” “이 불상은 송(宋)나라나 원(元)나라에서 고려의 큰절에 봉납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증인 신문이 끝났다. 김동현의 말 한마디가 파문을 일으키며 이 불상은 완전히 가짜로 판결 났다. 하지만 이병각은 장물 취득 혐의가 적용되어 금고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래저래 재판을 받느라고 5개월간은 실제로 복역했다. 가짜로 판별되자 신문마다 떠들썩거렸다. 당시 한국 일보에는 ‘10만 원 짜리 가짜’라는 제목으로 대서 특필했다.

〈이씨가 호리꾼에게 250만 원에 샀다가 경찰에 압수됐던 신라 때 순금 불상은 국보급이긴 커녕 금값 10만 원 짜리 밖에 안되는 모조품에다 40년 전 일본인들이 만든 것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높이 15센치 광배가 있는 이 불상은 작년 9월 석가탑 파손 사건으로 도굴범들이 크게 클로즈엎 되었을 무렵 ‘이병각’씨가 이들로부터 사들인 것이 밝혀져 경찰이 압수했던 문화재 2백여 점 중의 하나다.

   이씨의 도굴 문화재를 감정한 김모, 이모, 진모, 윤모, 최모씨 등 5명은 감정 결과 그의 소장품 중 사리장치와 탑지(塔誌) 등은 국보 내지 보물급 문화재이나 이씨가 국보인 줄 알고 가장 비싼 값으로 사들인 이 순금불상은 가짜라는 판결을 내렸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이씨는 이것을 단골 거래 상인 고옥당 주인 김씨로부터 2백 50만 원에 샀고, 주인 김씨는 이것을 호리꾼 주모에게서 50만 원에 사들였다는 것 …(중략)…

  이런 점들로 보아 가짜임이 확실해졌지만 이것의 출처에 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한 전문가는 40여 년전 일본서 만든 모조품이라고 주장했다. 그 당시 오사까(大阪)에서는 신라불을 모방, ‘오사까’불을 만드는 것이 크게 유행되어 이것이 일본은 물론 우리 나라 중국에까지 흘러들어 왔다. 아마 그 때 만든 불상이 이번에 ‘경주에서 출토했다’는 그럴듯한 고증과 함께 버젓이 진짜 행세를 한 것 같다는 것이다.

   이 말썽 많은 불상은 아직 명확한 해결을 짓지 못한 채 국립 박물관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한국의 위조품이다


    불상이 가짜로 판명 나자, 이병각은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다.

  이병각은 안희준 변호사를 통해 국립중앙박불관에 보관된 불상을 찾아왔다. 가짜로 판결되어 일개 공예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때 일본의 불상 권위자 마찌하라가 초대되어 불상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다. “대단히 훌륭합니다. 이처럼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동행했던 박물관 관계자가 마찌하라를 보며 되물었다.

  “혹시, 일본 불상은 아닙니까?” 마찌하라는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한국의 위조품입니다.” ‘한국의 위조품’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만 가짜라고 하는 진짜라는 뜻이다. 역시 대가만이 뱉을 수 있는 명언이다. 불상을 찾아온 이병각은 안 변호사에게 사례비로 300만원을 주었다.

   “나는 이 불상을 앞으로 팔지 않을 것이네. 물론 알아주는 사람도 없겠지만.” 주름진 이병각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번졌다. 그 후 이 불상은 이병각 사후에 외동딸에게 넘겨졌다.

    1983년 어느 날이다. 주석도는 이병각의 딸집을 찾아갔다. “왜요? 아버님이 유품으로 물려 준 불상인데.” “세상에 그 물건을 알아보는 사람은 오직 김동현 밖에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죽는다면 알아볼 사람이 없습니다. 그 불상은 사실 가짜가 아니고 진짜 신라 불상입니다. 아버님도 ‘아주 귀하고 오래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동현이 살았을 때 그 분에게 넘겨야 합니다. 그만이 좋다고 했으니 그가 진짜 주인입니다”.

   “그래요. 하면 그 분이 산다고 합니까?” “아직 운은 떼지 않았지만 그 분은 이 불상을 잊지 못합니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도 이 불상 얘기를 했습니다. 살려야 한다고요.”

  주석도는 이병각이 감옥에서 풀려 나온 사간의 전말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사실 그대로였다.

   “어머, 정말이세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럼 이 불상을 넘겨야겠네요.”김동현은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주석도가 중간에 서서 1,500만 원에 가격을 놓았다. 김동현은 주석도에게 따로 3백만 원을 주었다. 대단히 후한 사례였다.

  불상을 가지고 집으로 오면서 김동현은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슬펐다. 오랫동안 가지고 싶었던 불상이라 더 없이 좋았지만, 불상을 아끼고 소장하다 죽은 이병각을 생각할 때 인생이 너무 허망해 보였다. 자기도 이제 70고개를 넘어선 사람으로 언제 세상을 떠날 지 모르는 판이다. 세상과 투쟁해 다시 살리고도 싶었지만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고, 누가 늙은이의 말을 알아주겠는가 싶었다.

    그로부터 또 몇 달이 흘러갔다. 어떤 미국인을 한양 대학교에 있는 교수가 데려와 신라의 금동여래입상과 고구려무량수삼존불의 미국 내 출품을 부탁했다. 김동현은 기회라고 여기고 금은여래좌상을 함께 출품하고자 했다. 그 방법을 통하면 물건을 쉽게 되살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부인이 반대하고 나섰다.

   “여보, 만약 그 물건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지면 판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물론 출품만 했다하면 자신은 있지요. 그것이 마음에 걸려요.” 그리하여 이 불상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기회마져 애석하게 잃어 버렸다.

  그 후 이 불상은 고구려반가사유상(국보 제118호)을 호암미술관에 양도할 때, ‘박물관을 가지고 있으니 꼭 살려주세요.’라는 간절한 부탁과 함께 김동현은 댓가없이 이건희에게 기증했다. 그러나 내막을 모르는 연구원은 ‘순금의 좌불상은 최근의 작품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하며, 지금도 가짜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1997년 4월 30일, ‘호암미술관 소장 금속유물특별전’ 개막식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김동현은 부인 윤명숙 여사와 함께 특별전의 주빈으로 참석했다.

  그런데 진열장 속에 들어 있는 금은아미타여래좌상의 명패에 ‘18세기~19세기의 작품’으로 쓰여 있었다. 너무나 실망한 김동현은 그 후 출품작 감상은 제켜 놓고 만나는 사람마다 금은아미타여래좌상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KBS기자 인터뷰, 학예 연구관, 그리고 필자에게까지 휑하니 들어간 눈으로 애원을 하였다.

   “금불상을 제일 먼저 본 사람이 바로 납니다.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는데 …대단한 물건입니다. 내가 위증을 하여 가짜가 되었는데 어드렇게 진짜가 진짜지 가짜가 됩니까?”

  그 다음날, ‘시대 불명’이라 쓰인 명패가 다시 금은여래좌상 앞에 놓였다. 하지만 그 뿐으로 어떤 이슈도 없이 넘어가 버렸다. 병석에 누운 김동현은 이제 90세를 넘겼다. 그가 살아 있을 때에 어느 용기 있는 학자가 나와 이 불상을 제대로 평가해 주길 기대해 볼뿐이다.

       - 이 글은 고제희의 '우리 문화재 속 숨은 이야기'에서 뽑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