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쉰들러'보다 300년이나 앞선 '민회빈 리스트'

道雨 2008. 8. 29. 13:20

 

 

 

'쉰들러'보다 300년이나 앞선 '민회빈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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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정근 기자]



▲ 남탑거리 조선인 포로가 매매되었던 심양 남탑 거리에는 아직도 조선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 이정근
청나라의 방침은 확고부동했다. 명나라와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 청나라는 군량미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흉년이 들었다. 여분이 없으니 '직접 농사를 지어 먹고 살으라'는 것이었다. 되돌아 온 재신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소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청나라에서 식량공급을 중단하면 큰 걱정이다. 그렇다고 곤궁한 본국에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다. 식솔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서라면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이것이 빌미가 되어 귀국 날짜가 한없이 멀어질까봐 그것이 염려스럽다. 이 일을 어찌할꼬?'

"저하! 무슨 심려라도 계십니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소현 옆자리에서 강빈이 소곤거렸다.
"저들이 농사를 지어 먹으라 하니 지을 수도 없고 아니 지을 수도 없어서 걱정이오."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저들 아문에서 주는 식량과 반찬을 받아먹으려니 몹시 언짢았는데 직접 농사를 지어 먹으라 하면 잘 된 일이지요."

강빈의 입에서 뜻밖의 긍정적인 답이 튀어나왔다. 귀국 날자가 멀어질까봐 얼음 창고 짓는 것도 반대하던 강빈이었는데 의외였다.

화살 하나에 세 마리의 꿩을 잡을 수 있습니다
"본국 사정으로 보아 농군을 들여올 입장도 되지 못하는데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단 말이오?"

"남탑 시장에서 노예들이 매매된다 들었습니다. 거기에서 조선인 포로를 사들여 농사를 지으면 동포들도 좋고 소출도 좋을 것입니다."

기막힌 발상이었다. 노예시장에서 매매되어 혹사당하고 있는 포로들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노역에 종사하고 있었다. 폭력과 성폭력은 일상화되었다. 학대에 시달리는 그들은 기회를 엿보다 틈이 보이면 도망쳤다. 그들의 탈주는 조선 조정에 악재로 작용했다. 이러한 노예들을 사들여 농사를 짓게 하면 포로들도 좋고, 세자관도 좋고, 조정도 편안해져 일석삼조라는 것이다.

강빈 주도하에 본국에서 씨앗과 농사전문가를 들여왔다. 남자 포로 한 명에 30냥씩 11명을 사들이고 여자 포로 1명을 25냥에 인수하여 농사를 지었다. 둔소 책임자도 정했다. 노가새 둔감에 전 첨지 이정남, 사을고에 전 수문장 김성일, 왕부촌에 전 참봉 백여욱에게 책임을 지워 농사를 지은 결과 25섬 13말의 씨앗을 뿌려 932섬 4말 2되를 거두어 들였다. 3728% 높은 수확이었으나 세자관의 식량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인간이 매매되는 노예시장, 그곳은 짐승시장이었다
청나라에서 6백일갈이 논과 4백일갈이 밭을 더 내놓았다. 강빈이 진두지휘에 나섰다. 농사용 소를 사들이고 보덕 조계원과 역관 이형장을 대동하고 노예시장에 나갔다. 인간을 사고파는 포로시장은 참혹했다. 시장에 나와 있는 포로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산발한 몰골에 매맞은 흔적이 역력했고 상처에서 피고름이 흘렀다. 이들의 모습을 목격한 강빈은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시골장터에 나와 있는 닭처럼 발목이 묶여 팔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노예들의 모습은 이 세상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구중궁궐과 관중에서만 살았던 세자빈에게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그들은 분명 사람이었지만 팔리기 위해서 끌려 나왔고 팔려가고 있었다. 몽골족과 한족이 대종을 이루는 노예시장에서 흰옷을 입고 있는 조선인 포로들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조선인이오?"
씻지 못한 얼굴에 흰자위만 휑한 사내 앞에 발길을 멈춘 강빈이 물었다. 뜻밖의 조선말에 반가움도 잠시, 모든 것을 체념한 노예는 산발한 머리를 끄덕였다.



▲ 남탑 표지석 중국정부에서 심양에 세운 표지석
ⓒ 이정근
"어디에서 왔소?"
"피안도 선천에서 왔수다."
"고향에 부모님은 계시오?"
"아반은 돌아가셨고 70 넘은 어마이가 계시는데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릅네다."
상처투성이 손등으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보덕! 이 자를 사시오."
동행한 조계원은 이해할 수 없었다. 농사를 지으려면 건장한 사람을 사들여야 하는데 강빈이 찍은 사람은 비루 먹은 망아지처럼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에서 왔소?"
저고리를 입은 포로 앞에 강빈이 발길을 멈췄다. 흰색치마가 잿빛으로 변한 차림이었으나 기품으로 보아 여염집 아낙 같지는 않았다.

"강도에서 왔습니다."
"강도라면 강화도 아니오?"
강화도가 함락되던 날, 강보에 싸인 석철이를 내관에게 넘겨주던 일이 강빈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네, 강화도입지요."
"지아비는 무엇 하는 사람이오?"
강화도가 적의 수중에 떨어질 때, '오랑캐에 끌려가느니 차라리 자결하겠다'며 윤선거의 아내 이씨는 목을 맸고, 홍명일의 아내 이씨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밖에 이정귀의 아내 권씨, 여이징의 아내 한씨 등 수많은 부녀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헤일 수 없이 많은

아녀자들이 끌려왔다. 혹시 사대부집 아낙이 아닐까 해서 물었던 것이다.
"이곳에 끌려와 만신창이가 된 몸, 지아비를 밝혀 무엇 하겠습니까?"
여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이들은 몇이나 되오?"
"사내아이 하나에 젖먹이 계집아이를 두고 왔습니다."
"고향에 돌아가야지요?"
"…."
강빈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여인이 팔뚝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였다. 그것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자의 서러운 오열이었다.

"보덕! 이 아낙의 값을 지불하시오."
그동안 세자관에서 포로를 속환한 일이 있었으나 대부분 권력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비록 농사짓기 위한 매입이었으나 순수한 백성들 속환은 강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걸음을 옮기던 강빈이 건장한 사내 앞에 멈췄다.

조선 관리들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는 조선인 포로
"조선 사람이오?"
"그렇소. 근데 노예를 사러 나왔으면 일 잘할 사람을 고르면 되지 출신은 왜 묻소?"
사뭇 시비조다. 동행한 보덕과 통역을 째려보던 사내가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사려고 그러하오."
"나를 끌고 나온 노예장사꾼이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해 하는 말인데 노예를 사고 싶거들랑 나를 사지 마시오. 난 팔리기만 하면 도망갈 사람이오. 고국에 돌아가 또 다시 잡혀오는 한이 있어도 난 도망갈 사람이란 말이오."

사내의 눈망울에 눈물이 글썽였다. 이제야 관복을 입은 보덕과 통역에게 증오의 눈길을 보내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조선에서 끌려온 포로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탈주하여 고국에 돌아갔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 하는 그 길은 목숨을 건 험난한 길이었다. 하지만 청나라에서 큰 기침 한번하면 조선에서는 탈주 포로를 붙잡아 강제 송환했다. 이렇게 해서 다시 끌려온 포로들은 조선 관리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증오감을 표출했다.

민회빈 리스트?
필요한 숫자만큼 포로를 사들이지 못한 강빈은 이튿날도 노예시장에 나갔다. 조선인 포로들에게 다가간 강빈은 "나이든 부모님이 계시냐?"를 물어 있다면 사들였다. 특히 여자들에게 "아이가 있느냐?"를 물어 아이를 조선에 두고 왔다면 무조건 사들였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동안 '도망치는 노예'로 낙인 찍혀 상품가치가 하락했던 조선인 포로 값이 폭등했다. 심양은 물론 요양과 통원보, 봉황성에서도 조선인 포로를 끌고 왔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지배한다 했던가. 갑자기 조선인 포로들이 넘쳐났다. 강빈은 조선인이 확인되면 사들였다. 동행한 조계원은 의아했다. 험한 농사일을 하려면 힘센 사람을 사들여야 하는데 강빈이 골라낸 사람들은 대부분 허약했다. 하지만 강빈의 생각은 달랐다. 동기를 부여하면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믿었다.

평복을 했지만 강빈을 알아본 포로들이 "빈궁마마! 저를 사주세요"라고 애걸했다. 강빈의 마음은 미어졌다. 모두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세자관의 예산은 한정되어 있었다. 사주지 못한 강빈의 마음은 쓰라렸다. 그렇지만 강빈은 '쉰들러'보다 300년이나 앞서 '민회빈 리스트'를 몸소 작성하며 실행한 여인이었다.



▲ 벼 들판에서 익어가는 벼
ⓒ 이정근
남자 145명과 여자 45명을 사들여 본격 농사에 들어갔다. 강빈의 믿음은 적중했다. 노예에서 풀려난 포로들은 열심히 일했다. 학대도 없었고 폭력도 없었으니 농사일이 즐거웠다. 그들의 잠재능력을 끌어낸 것은 희망이라는 단어였다. 그들에겐 열심히 일하면 '고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그들의 능력을 배가시켰고 결과로 나타났다.

가을이 되어 쌀 5024섬 2말과 목화 620근 그리고 다량의 채소를 수확했다. 세자관 식량을 충당하고도 남는 양이었다. 의외의 결과에 강빈도 놀랐다. 세자관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청나라 조정에서 "한인들보다 배 이상 소출한 비법이 무엇이냐?"고 물었으나 "하늘이 도왔을 뿐"이라고 겸손을 잃지 않았다.

자신감을 얻은 강빈은 포로 출신 이우촌과 서남에게 사을고와 왕부촌을 맡겨 인센티브를 주었다. 신바람이 난 포로들은 새벽별을 보며 일했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었고 고국에 돌아갈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둔소에 쉼터를 마련한 강빈은 세자를 모시고 들판에 나와 무거운 머리를 식히도록 했다. 모처럼의 전원생활이었다.

흉년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던 청나라는 왕 휘하 군사들의 식량을 일정 부분 자급자족하라 명했다. 부대에서 데리고 있는 포로를 처분하여 식량을 조달하라는 것이다. 용골대가 식량구입 의사를 밝혀왔다. 강빈은 세자관이 먹을 양식을 제외한 나머지 식량을 주저 없이 매각했다. 여분을 많이 쌓아놓으면 다음 농사에 소출이 적어진다는 생각이었다. 고국은 군량미 독촉에 시달리는데 세자관은 식량을 판매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담배 대박'에 이어 '청국 특수' 터지다
남초 밀매자를 사형에 처하던 청나라가 세자관에 '피울 풀' 반입을 허용했다. 담배 피우는 조선 사람들을 위한 특별조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밀수입된 남초에 중독된 청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을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특히 전장에 나가있는 병사들이 담배를 공공연히 피웠고 담배가 떨어지면 사기가 떨어졌다.

이 소식을 접한 조선은 '남초 대박'에 술렁거렸다. 남초장사가 큰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심양에 있는 재신과 질자를 면회한다는 명분으로 남초를 말과 노새에 싣고 들어와 세자관에 짐을 부렸다. 세자관 앞마당이 남초장터가 된 것이다. 마침내 도르곤이 '피울 풀' 100짐을 주문했다. 전과를 올린 병사들에게 하사할 선물이라는데 황제도 어찌할 수 없었다. 이로부터 세자관은 단순 질관이 아니라 무역대표부 역할을 했다.

남초 봇물을 막지 못한 청나라가 드디어 남초금수조치를 전면 해제했다. 합법적인 담배장사가 시작된 것이다. 조선에 '청나라 특수'가 터졌다. 강빈은 남초뿐만아니라 종이, 인삼, 곶감, 배, 수달피, 백세목면(百細木棉), 생강, 약재 등 청나라에 귀한 물건을 들여와 많은 차익을 남기고 팔았다.

쌓이는 자금은 세자관 운영비와 청나라 실력자들 관리용으로 썼다. 한 나라의 세자빈에서 농사꾼과 장사꾼으로 변신한 강빈은 귀국할 때 4700여 섬이 넘는 쌀을 세자관에 남겨두고 포로들과 함께 돌아왔다. 민회빈 강씨. 그녀는 시대를 앞서 살았던 여성 경영인이었으며 조선 최초의 여성 CEO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