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재

[스크랩] 조선 개국공신 `沈德符의 삼존불` 발견

道雨 2008. 9. 9. 18:30

 

조선 개국공신 '沈德符의 삼존불' 발견

 

麗末鮮初 불상 중 제작연대 분명한 첫 작품으로 추정

 

 

조선 개국공신인 심덕부의 의뢰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 삼존불이 발견됐다.

오른쪽 사진은 불상 내부에서 나온 비단으로, 심덕부의 이름이 적혀있다

 

 

부처는 갸름한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얇은 손바닥에서 섬세한 다섯 손가락이 이음매 없이 매끄럽게 뻗어 나와 중생을 다독거린다. 길쭉한 몸통에 부드러운 옷자락이 부드럽게 휘감긴 것도 볼 만하다.

조선 개국공신이자 세종대왕의 처조부인 허강(虛江) 심덕부(沈德符·1328~1401)의 의뢰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 삼존불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삼존불이 진품일 경우 한국 불교미술사 연구에 새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나온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불상 가운데 제작연대를 특정할 수 있는 작품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삼존불의 구성

이번 '심덕부 삼존불'은 청동 감실에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세지보살상(勢至菩薩像) 등 12~15cm 높이의 금동불 세 점이 들어 있는 형태다. 올 초 한 개인 소장가가 일본 고미술상에서 구입해 국내에 들여왔다.

이후 국내 연구팀이 불상 밑바닥을 개봉하고 불상 내부에 공양물이 들어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청성백(靑城伯) 심덕부가 발원해서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적힌 황색 비단이 관음보살상과 아미타불상 내부에서 각각 한 장씩 출토됐다. 이 비단은 길이 23㎝, 폭 1.5㎝ 이며, 두루마리 형태로 말린 채 불상 내부에 들어 있었다. '청성백'은 심덕부가 조선 건국 이듬해인 1393년에 태조에게 받은 칭호다.

미술사적 가치

강우방 전(前)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진품으로 추정되며, 보물급 문화재 지정이 논의되어도 과하지 않은 수준이고,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유물"이라고 말했다.

첫째, 지금까지 나온 여말선초의 불상은 제작연대를 확정할 수 있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 이번 '심덕부 삼존불'이 진품이라면 비단에 적힌 발원자의 직함(청성백)을 근거로 심덕부가 '청성백'에 오른 1393년에서 그가 사망한 140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제작연대를 좁힐 수 있다. 앞으로 한국 불교미술사를 연구할 때 이 유물을 지표로 삼아 전후(前後)의 유물을 배열해 제작연대를 따질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이번 삼존불은 얼굴과 몸이 길고 유연하며 어깨가 좁고 목이 잘록하다. 한국 불상이 대체로 어깨가 넓고 두툼하며 머리통이 둥글고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이다. 강 전 관장은 "전통과 전범이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왕조 교체기'였기 때문에 이런 식의 미학적 일탈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또 "직경 1~2㎜ 안팎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더 이상 손댈 필요 없이 한 번에 주조해낸 점, 순도 높은 금으로 고르게 금동을 입힌 점 등으로 미루어 당대 최고의 장인이 정성을 쏟아 제작한 역작으로 보인다"고 했다.

학계의 반응

학계는 대체적으로 이번 삼존불에 대해 "진품으로 추정된다"고 반기고 있다. 문화재 보존 전문가인 최명윤 명지대 교수는 개인 소장가의 의뢰를 받아 삼존불을 개봉한 당사자이다. 그는 "불상 개봉 당시 불상 밑바닥을 덮은 판에 먼지와 녹이 고르고 두껍게 쌓여 있었고, 용접 부위에도 과거에 개봉한 흔적이 없었다"고 했다.

서지학자인 남권희 경북대 교수는 "비단의 재질과 필체로 미루어 여말선초의 유물이 확실해 보인다"며 "불상에 넣는 공양물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후대에 위조했다고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불교미술 전문가인 송은석 삼성미술관 리움 선임연구원은 "고려의 전통 양식을 계승한 동시에 전범에서 어긋난 개성적인 표현도 엿보인다"며 "현재 남아 있는 조선 초의 불상은 10여점뿐이기 때문에 (진품으로 확정될 경우) 상당히 희귀한 유물이며, 조선시대 불상 중 최고(最古)의 작품이 된다"고 했다.

반대 의견

그러나 반론도 있다. 불교미술 전문가인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불상의 양식, 비단의 재질과 필체 등이 일반적인 조선 불상과 차이가 있다"며 "누군가가 훨씬 훗날에 심덕부의 이름을 빌려서 제작한 근대 작품으로 보인다"고 했다.

심덕부는 누구인가

허강(虛江) 심덕부(沈德符·1328~ 1401)는 고려 말의 문신으로 이성계·정도전·정몽주 등과 함께 고려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운 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참여했다. 그 공로로 조선 개국(1392년) 이듬해인 1393년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다. 조선 창건 후 경복궁과 종묘 건축을 총괄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 초기의 왕들과 혼인으로 깊게 얽힌 '외척'이기도 했다. 심덕부의 여섯째 아들 종(淙)은 태조의 사위였다. 다섯째 아들 온(溫·1375~1418)은 세종의 장인이자 소헌왕후(昭憲王后·1395~1446)의 부친이었다. 심덕부는 1399년 좌정승에 올랐다가 이듬해 고령으로 벼슬을 버리고 물러났다. 이번에 나온 삼존불 유물은 심덕부가 말년에 장인(匠人)을 시켜 제작한 다음 개경(개성) 근처 사찰에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일보/김수혜 기자 2008.9.8>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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