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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영화계 울린 '워낭소리'...10만 돌파의 의미

道雨 2009. 2. 4. 16:08

 

 

 

기축년 영화계 울린 '워낭소리'...10만 돌파의 의미

 



워낭소리(사진=인디스토리)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서울 홍대 앞 복합문화상영관 시네마 상상마당의 홍보를 맡고 있는 하정민 씨는 최근 부쩍 늘어난 문의전화에 영화의 인기를 실감하곤 한다.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은 대부분 중년 여성들.

5만 관객만 넘어도 '대박'이라는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그것도 중년 관객의 극장 나들이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2009년 기축년 새해 극장가에 이변을 연출하며 활기를 불어넣은 작품은 다름아닌 영화 '워낭소리'(감독 이충렬, 제작 스튜디오 느림보)였다. '워낭소리'는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할아버지와 할아버지 곁에서 30여년 간 고락을 함께한 소의 사계절을 담은 영화다.

지난 1월15일 시네마 상상마당을 비롯한 전국 7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지난 3일 개봉 20일 만에 10만 관객 돌파라는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신기록을 달성해냈다. 이는 역대 한국 다큐멘터리 독립 영화 사상 최고 흥행기록. 또한 현재도 관객들의 꾸준한 입소문을 타고 개봉관을 늘려가고 있는 추세다. '워낭소리'는 시네마 상상마당 개관 이래 첫 주말상영 매진이라도 소소한 기록도 남겼다.

2000년대 들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를 4편이나 배출한 한국영화계에서 기껏 '10만 관객' 돌파를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워낭소리'의 10만 관객 돌파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나한테는 사람보다 소가 낫다'는 영화 속 할아버지의 말처럼 '워낭소리'는 비록 제작비 8천만원 규모의 다큐멘터리지만 작품이 전하는 감동과 웃음은 어느 블록버스터급 영화보다 분명 나았다. 바로 여기에 '워낭소리' 10만 돌파의 의미가 있다.

◇진정성이 있는 작품은 통한다


'워낭소리'를 연출한 이충렬 감독은 유년시절 농사를 짓던 아버지와 소의 모습을 '워낭소리'의 초안으로 삼았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경북 봉화에 안착, 그곳에서 한 평생 소와 함께 농사를 지어온 최원균, 이삼순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를 보고 자신이 구상했던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임을 직감했다.

이 감독은 2006년 한 해 동안 꼬박 최 할아버지 부부와 소의 사계절을 담았다. 농약을 치지 않고 소에 의지해 평생 농사를 짓는 최원균 할아버지와 이삼순 할머니의 모습에는 꾸밈이나 거짓이 없었다. 또한 주인 곁에서 30년을 넘게 살며 함께 늙어온 소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워낭소리'의 프로듀서를 맡은 스튜디오 느림보의 고영재 PD는 '워낭소리'의 가편집본을 본 뒤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화면 가득 최할아버지 부부와 소, 그리고 이를 카메라에 담은 이충렬 감독의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워낭소리'에 담긴 진정성이라면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호소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고 PD는 후반작업 부분에 자신의 사재를 털어 '워낭소리'를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영화로 탈바꿈 시켰다.

'워낭소리'의 흥행을 놓고 영화계 내부에서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반드시 갖추어야할 '진정성'이라는 요소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영화 '박하사탕'과 '미녀는 괴로워' 등 160여편의 영화에서 카피를 담당한 카피라이터 윤수정 씨는 '워낭소리'의 카피라이터이기 전, 이미 영화에 매료되어 홍보요원을 자처했을 정도다. 윤 씨는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워낭소리'만큼 진정성을 가진 영화를 만난 적은 드물었다"며 "'결국 진정성을 가진 작품은 관객들이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수정씨 뿐만 아니다. 영화배우 방은진권해효 역시 '워낭소리'의 홍보에 발 벗고 나섰다. '말아톤'과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만들었던 정윤철 감독은 황보라, 유아인 등 젊은 배우들과 함께 '워낭소리'의 시사회를 찾았다. 이들은 '워낭소리'가 가진 영화의 진정성에 감동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유지나 동국대학교 영화과 교수는 '워낭소리'의 흥행에 대해 "그간 한국 영화계는 위기론을 거론하면서도 정작 영화 자체의 진정성에 대한 고민은 소홀하지 않았었나 싶다"며 "'국내 영화인들이 '워낭소리'의 상업적 성공을 보며 우리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워낭소리' 중 한 장면


◇'워낭소리' 흥행, 한국 독립영화 가능성 입증


'워낭소리'의 흥행은 한국의 독립영화도 아일랜드 독립영화 '원스'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줬다.

2007년 9월 개봉한 '원스'는 영화관계자들에게 일종의 충격이었다. '원스'는 약 1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였다. 그러나 '원스'는 미국에서 개봉해 1천만 달러가 넘는 수입을 거둬들였으며 국내에서도 3개월 가량의 상영기간동안 22만 관객을 동원, 15억원 가량의 수입을 챙겼다. 역대 국내에서 개봉된 독립영화 최고흥행기록이었다.

사실 '원스'의 흥행을 보는 국내 영화 제작 관계자들의 속내는 아렸다. 독립영화가 흥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반면 한국의 저예산 독립영화 중에서는 '원스' 만큼의 파급력을 지닌 작품이 나오지 않아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만든 '워낭소리'가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워낭소리'의 순제작비는 약 8000만원에서 1억원 내외로 알려지고 있다. '워낭소리'를 배급하고 있는 인디스토리에 따르면 마케팅 비용을 포함해 총 1억8000만원 안팎의 총제작비가 들었다고 한다. '원스'와 비슷한 규모로 만들어진 셈이다.

현재 '워낭소리'의 흥행속도는 '원스'보다 두 배 정도 빠르다. '원스'가 개봉 7주차에 10만 관객을 돌파한 뒤 최종 22만 관객으로 막을 내렸던 것에 비해 '워낭소리'는 3주 만에 10만 관객을 넘어섰으며 개봉 4주차에 20만 관객을 기대하고 있다.

인디스토리 측은 개봉 3주차에 접어들면서 스크린이 전국 40여개로 확대되는 만큼 2월 중순경에는 '원스'의 최종 스코어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디스토리의 조계영 마케팅 팀장은 "'원스' 이후 또 다시 그 같은 독립영화 흥행작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싶었다"며 "'워낭소리'가 '원스'의 기록을 넘어서 한국 저예산 영화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