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우당 이회영, 애국의 길을 묻다

道雨 2009. 3. 2. 11:56

 

* 아래의 글은 다음 토론방 아고라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우당 이회영, 애국의 길을 묻다

 

 

 

3.1절을 맞이하여 SBS에서 방송된 '우당 이회영, 애국의 길을 묻다.'에서 선생의 발자취를 방영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본받아야 할, 이 시대의 진정한 독립운동가이자 어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우당 이회영 선생 일가에서, 한줄기 대한민국의 魂을 읽는다.

 

해방 당시, 임정 초대 부통령을 지내신 이시영 선생만 광복의 하늘을 보았던 슬픈 어느 6형제의 이야기는, 국가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현 시대에서, 얼마나 그 그 고귀한 핏값과 희생으로 조국을 위해서 몸 바쳤는지를 새삼 확인하는 뜻있는 날이 아닌가 싶다.

 

명문가의 기득권을 지키기 보다는, 국권회복을 위해서 여의도 땅보다 더 넓은 토지를 처분하고, 독립운동이 그저 말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확신하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그외 20여개의 학교 건립과 독립운동의 사상적 중심이 된 민족의 큰 어른, 우당 이회영 선생...

 

그분의 발자취와 그분의 6형제, 그분의 가족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감격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사회 지도층의 부도덕성, 비상식, 국민 무시 등을 직시하면 더더욱 우당 이회영 선생의 가족분들에게 두고두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의 념을 표하고 싶지 않을 수 없음이다.

 

어찌, 독립 운동가 가족은 3대가 가난에 찌들고, 친일반민족 부역자들은 떵떵거리고 사는지 실감이 나는 세상이다. 부와 명예만이 아닌 피와 살,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숨까지 국가와 민족에게 바친 이 고귀한 희생을, 우리는 그저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기에는 민족과 역사 앞에 진저리치도록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현정권과 뉴라이트 라는 단체에서 헌법을 부정, 임정의 법통을 부정, 독립운동가를 테러리스트라 명명하는, 이 천인공노할 초유의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케 하는 현정권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따져 보지 않을 수 없는 시대이다.

 

그 많은 재산( 현재의 가치로 따지면 약600억)이 독립운동자금으로 다 들어가서 하루에 한끼 먹기도 힘들었다는 우당 이회영 일가의 역사와 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통곡의 울림을 승화 시키기에는 너무나 벅차다.

 

고종황제를 모셔가기 위해서 민영달 선생의 자금 5만원과 이회영 선생의 계획이, 일본제국주의 음모와 고종황제 독살로 물거품이 된 역사적인 현실은 가슴을 치는 비련이었으리라! 

또한, 친일 부역자들, 이완용, 이기용 당직, 어의 한상혁의 계획이었었다니, 참담하고 허허로운 지경이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내, 다시말해서 현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할머님인 이은숙 어른의 일기로 민족을 비추고 현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 고난의 독립운동을 몸소 기록, 실천한 진정한 민족의 어머니처럼, 따사롭고 모정의 큰 속앓이를 직접 겪는 듯 하여 가슴 한켠이 텅 빈 듯 하다. 개인의 감정이 이러할진 데, 우당 이회영 선생 일가의 아픔과 슬픔을 예단 하는 것은 예의에 비례하는 것이리라!

 

1932년 안중근 의사가 목숨을 내 놓았던 뤼순감옥, 그 감옥에서 일제의 고문으로 차디찬 시신이 되는 순간까지 망국의 한을 곱씹었을 우당 이회영 선생의 나라 사랑에 감히 말한마디 하기 힘들다. 그 수많은 사연과 나라 사랑을 일개 필부가 다 표현 하기에는 너무나 벅차다.

 

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민족의 어른 우당 이회영 선생과 그 일가분의 희생에 감읍하며, 우당 이회영 선생이 50대의 나이에 열린 마음으로 사상적 진보와 이 시대의 귀감이 될 그의 사상을 엿보면서 가름하고자 함이다.

 

" 자유와 평등의 사회 원리와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하여 독립이 될 한민족의 내부 구조도 반드시 이 원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권력의 집중을 피하고 분권적인 지방자치의 연합으로 중앙정치의 기구를 구성하며,

경제건설에 있어서는 재산의 사회성에 비추어 일체의 재산은 사회적 자유평등의 원리에 모순이 없도록 민주적인 관리 운영의 합리화를 꾀하여야 한다. 그리고, 교육은 물론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1925년 11월 중국 천진에서     우당 이회영...

 

 

 

우당 이회영 선생, 그리고 가족, 일가분들,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우당 이회영 선생의 마지막 말씀이라고 합니다.

 

"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목적이 있네. 그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을 것이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이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당신이 알고 있는 애국의 길은 무엇인가?

 

 

 

 

 

***     SBS 두 가문의 영광 

 

처음 아고라에 글을 올립니다.

사실 글재주도 없고 생각도 짧아 눈팅만 하는데

어제 SBS에서 본 '드라마'의 가문의 영광과 '다큐멘터리'속의 가문의 영광을

보며 많은 것을 느껴 한자 적어봅니다.

 

사실 SBS를 잘 보지 않기에 드라마 '가문의 영광'은 어떤것인지

잘 모르고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 저는 사실 멋진 기와집에서 한복을 입고 점잖게 계시는

할아버지역은 제가 가지고 있는 뼈대있는 '가문'의 상징이요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제목의 가문의 영광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가 끝나고 SBS 스페셜에서 보여준 '우당 이회영 애국의 길을 묻다'

속에 존재하는 '가문의 영광'의 모습은 기와집도 비단옷도 아닌

자신의 모든것을 던지며 독립을 지키려 했던 배고픈 사람이였습니다.

 

당시 재산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00억대의 재산을 가지고 있던 우당 이회영 선생이

나라가 망하자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가서 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은

너무나 충격적이면서 마음속에 뜨거운 피가 도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우리 나라에서는 가능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이 단어가

존재했었고 그래서 더욱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용기가 생겼습니다.

요즘 TV에서 많이 보여주는 공익광고의 애국심은 디비디바비디부 처럼

끊임없이 보여주는데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데 역시 고귀함은 홍보가 아닌

진실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당 선생의 형제분들이 한분을 빼고는 굶주림과 일제의 만행으로

돌아가신 것을 보면서 눈물이 흐르더군요.

수많은 독립의사분들의 삶처럼 안타깝기에 더 아렸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기와집, 비단한복, 수많은 장독대들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해온 저로써는 이제 마음속에 지펴진 일제시대의 한 가문의 진정한 영광을

보면서 험난한 지금 많은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가져봅니다.

 

돌아가신지도 몇십년이 흐른 분이지만

가슴속에 기억되어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 살아계신 우당 이회영 선생은

아직까지도 그분의 모든것을 나누어주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고귀한 재물은 세습되어도 오래 가지 않지만

고귀한 정신은 구전되어 많은이의 마음속에 남는다.

 

우리 학생들도 우리의 역사속에서도 이런 분들이 계셨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