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과 놀다 <28>
‘철없는’ 세자에 세자빈은 간통까지
기사입력 2002-01-10 오전 10:32:55
태조는 막내 아들을 세자로 세우는 ‘모험’을 했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나오겠지만, 스스로 모험이라 느끼지 못했던 이 선택은 결국 자신의 왕위마저 빼앗기는 불행을 초래하고 맙니다. 그 불행의 씨앗, 어린 세자에 대해 승자의 기록인 실록이 한마디 험담을 하지 않을 수 없겠죠.
먼저 어린 세자 얘기.
세자는 여름을 좀더 시원하게 보내고 싶었던지, 대청을 짓고 싶어합니다. 딸린 관원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내 거처가 낮고 좁으니 어찌 더위를 견딜 수 있겠느냐?”
도평의사사에서 이 말을 듣고 선공감에 지시해 작은 대청을 짓게 했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이를 알고 도승지 이직에게 일렀습니다.
“요사이 공사가 조금 많았는데, 모두 어쩔 수 없는 것들이었지 내가 어찌 즐겨서 한 일이었겠는가? 세자는 대청이 없어도 괜찮다.”
그래서 이 공사는 세자의 ‘철없음’만 드러낸 채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임금은 또 공신 자제들을 세자와 함께 공부하게 하던 것도, 그들이 강독(講讀)은 일삼지 않고 도리어 세자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폐해만 생겼다며 앞으로는 함께 공부하지 말고 날마다 교대로 숙직만 하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야 뭐 대수로울 게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세자빈의 간통 사건.
뭐라구요? 누가 어쨌다구요? 아니, 일반 사대부 집에서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대단한 화젯거리였을 텐데, 세자빈이 간통을 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군요. 그것도 상대가 누구였느냐면… 바로 ‘남자’가 아니어야 할 내시였다네요, 글쎄.
1393년 6월, 실록에는 밑도끝도 없이 내시 이만(李萬)을 목베고 세자의 현빈(賢嬪) 유(柳)씨를 내쫓았다는 기사가 튀어나옵니다. 대간과 형조에서는 나라 사람들이 그 이유를 몰라 걱정한다며 좌우의 가까운 사람을 국문해 의심을 풀라고 청했습니다. 임금은 화가 나 세 부서 관원을 모두 순군부 옥에 내려 가둔 뒤 국문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앞서 임금이 좌시중 조준과 우시중 김사형에게 일렀습니다.
“궁중의 내시 나부랭이와 빈(嬪), 잉(媵)을 내쫓아 처벌하는 것은 내 집안의 사사로운 일이니 바깥 사람이 알 바가 아니오. 지금 대간과 형조에서 이 일을 함부로 거론하고 있는데, 틀림없이 바깥 사람이 쓸데없이 의심을 품고 서로 모여 의논해 한 짓이지 이 무리들의 뜻만은 아닐 것이오. 지금 이 무리들을 옥에 가두어 국문코자 하오.”
조준 등이 대답하지 않고 나와 도승지 이직에게 말했습니다.
“대간과 형조는 한 나라의 기강과 관계돼 예로부터 소중하게 여겼소. 부서 전체가 갇히게 되면 나라의 체모가 손상될 것이니 잘 말씀드리시오.”
이직이 들어가 아뢰자 임금이 옳게 여겨 부서 간사만 가두어 국문하려 했으나, 진술 내용에서 연루된 것이 드러나 모두 가두도록 지시한 것이었습니다. 대간 관원들을 모두 지방으로 귀양보냈으나, 그 가운데 공신들만은 집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습니다.
넉 달 뒤 임금은 이조 전서 심효생의 딸을 세자빈(世子嬪)으로 들여 일단 사건을 마무리짓습니다.
그러나 세자의 ‘철없음’은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1395년 9월에는 세자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간관의 지적이 들어와 임금이 세자에게 매일 서연(書筵)에 나아가 강습을 게을리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1396년 1월에는 세자가 궁중에 기생을 출입시키다가 들통났습니다. 세자가 서연(書筵)에서 공부를 마치자 강관(講官)이 모두 나갔는데, 우보덕(右輔德) 함부림이 나아가 말했습니다.
“들은 바가 있는데 말하지 않으면 곧지 못한 것입니다.”
“다 말해보시오.”
“창기(娼妓)가 궁중에 출입한다는데, 사실입니까?”
세자가 무안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다시는 가까이하지 않겠소.”
그러나 세자는 4월에 다시 밤을 틈타 전 중추 유용생(柳龍生)의 집에 나갔다가 들어왔습니다. 공식 행차가 아니었으니, 틀림없이 무언가 또 철없는 짓을 저질렀겠죠?
1397년 4월에도 세자 기사가 나옵니다. 대장군 남지(南摯)와 장군 강유신(康有信)이 세자를 모시고 문밖에 나가 말을 달려 남의 집 염소와 오리를 쏘아 죽여 간관이 탄핵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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