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소호금천씨와 김일제, 그리고 신라김씨

道雨 2009. 4. 27. 18:17

 

 

 

  소호금천씨와 김일제, 그리고 신라김씨

재당신라인 김씨부인묘지명 연결점 역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후대에 경주김씨로 칭하게 되는 신라김씨의 유래는 김알지와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 등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인식은 고려 중기 때 경주김씨인 김부식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말년(末年)에 덧붙여 임금(인종)에게 올린 역사평론에서 분명하게 보인다.

"신라의 옛날이야기에 이르기를 '하늘이 금 궤짝을 내렸으므로 성을 김씨라 했다'고 합니다. (중략) 듣건대 신라인 스스로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의 후예이므로 성을 김씨라 했다 하고, 고구려 역시 고신씨(高辛氏)의 후예이므로 성을 고씨(高氏)라 했다 합니다"

김부식이 금 궤짝 운운한 말은 경주김씨 시조라는 김알지가 지금의 경주 계림에 탄강(誕降)할 때 하늘에서 내려온 금 궤짝에 실려 있었다는 신화를 말한다.

김부식은 나아가 신라김씨가 스스로를 소호금천씨의 후예로 생각했다는 증거가 "신라 국자박사(國子博士) 설인선(薛因宣)이 지은 김유신비(金庾信碑)와 박거물(朴居勿)이 글을 만들고 요극일(姚克一)이 글씨를 쓴 삼랑사비문(三郞寺碑文)에 보인다"고 밝혔다.

한데 신라김씨 외에도 금관가야 건국 시조 김수로에서 시작된 김유신 가문의 가락김씨(김해김씨) 또한 그 뿌리를 같은 소호금천씨에서 찾은 흔적이 발견된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은 신라 사람들이 "소호금천씨의 후예이므로 성을 김(金)이라 한다"고 하면서 김유신의 비문에도 "헌원(軒轅)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다"(軒轅之裔, 少昊之胤)는 구절이 보인다고 했다.

헌원이란 중화 문명의 아버지로 추앙되는 전설적인 제왕인 황제(黃帝)를 말한다. 각종 중국 고대 문헌에서 소호(少昊)는 황제의 아들이자 후계자로서 금덕(金德)으로 나라를 다스린 까닭에 소호금천씨라 불렸다고 나온다.

신라에 의한 일통삼한(一通三韓)을 달성한 문무왕 김법민(金法敏.재위 661-681)은 죽은 뒤에 그 유해가 화장되지만 신라인들은 그의 무덤을 만들고 그 앞에다가 왕의 가문 내력과 업적을 새긴 비문을 세웠다.

이 비문은 문무왕의 선조에 대해 15대조가 성한왕(星漢王)이라고 밝히고 "투후(투 < 禾+宅 > 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 …했다"는 구절도 덧붙인다.(… 부분은 깨져 나간 글자)

'투후 제천지윤'이란 한서(漢書)에 열전이라는 형식으로 그 자신과 후손 7대의 행적이 남은 김일제(金日제 < 石+單 > )라는 인물을 말한다. 한서에 의하면 김일제는 흉노 휴도왕(休屠王)의 태자였으나 나중에 한나라에 투항해 한 무제(漢武帝)를 잘 섬겨 투후라는 제후에 임명됐다.

이런 김일제를 문무왕릉 비문이 '제천지윤'(祭天之胤) 즉, '하늘을 제사지내는 사람(종족)의 후손'이라 한 이유는 한서에 수록된 그의 열전 끝에서 "본래 휴도왕이 금인(金人)을 만들어 천주(天主.하늘)를 제사했으므로 이로 인해 김씨(金氏)라는 성을 받았다"는 언급에서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이 문무왕릉 비문은 워낙 깨져나간 데가 많아 15대조 성한왕이 이런 김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종잡기가 어려웠다.

어떻든 현재까지 주어진 자료를 보건대, 김알지를 제외한 다른 계통에서 시조를 찾는 신라김씨의 뿌리의식은 다시 소호금천씨와 흉노 출신 김일제 두 가지로 세분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권덕영 부산외대 교수가 최근 공개한 재당 신라인 후손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은 이 두 가지 계통의 신라김씨 뿌리의식을 하나로 통합한다.

함통(咸通) 5년(864)에 작성된 이 묘지명에 의하면 정통 신라김씨는 시작이 소호금천씨이며, 김일제는 그 후손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소호금천씨는 가문 시조이며, 김일제는 중시조가 되는 셈이다.

나아가 이 묘지명에는 김일제의 후손이 언제쯤, 그리고 어떤 이유로 신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도 개략적이나마 언급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김일제에게서 7대가 내려와 중국이 전란으로 시끄러워지자, 그 후손들이 '요동'으로 피난해 거기에서 번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 요동이라면 고구려 영역이자 지금의 만주 일대를 말하지만, 묘지명의 문맥으로 보건대 신라를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아가 그 시기는 묘지명에 정확한 언급이 없지만, 한서 김일제 열전에는 그의 7대 후손에 와서 왕망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이로써 본다면, 묘지명이 말하는 김일제 후손의 신라 도래 시기는 전한 말기, 혹은 왕망의 시대가 된다. 기원전후 무렵이다.

정통 신라김씨가 정말 김일제 후손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들이 적어도 문무왕 시대 이후에는 한동안 소호금천씨와 김일제로 이어지는 뿌리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만은 더욱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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