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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금융의 힘

道雨 2009. 7. 10. 14:39

 

 

 

이슬람 금융의 힘 
 율법에 따라 이자 수수와 비도덕적 거래 금지… 부 재분배하는 공공성 돋보여
   
» 이란 테헤란 시장에서 한 상인이 돈을 세고 있다. 사진 REUTERS/ RAHEB HOMAVANDI
금융 스캔들’의 나라 미국이 지난해 또 대형 사고를 쳤지만 이슬람 금융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입었다.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실물로부터 괴리된 금융 거품과 파생상품의 역습을 꼽는다.
이슬람 금융은 실물을 동반했고 파생상품 투자를 금지했다. 이슬람 금융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미국보다 더 힘든 영국은 일찌감치 이슬람 금융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개설했고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자금을 이슬람 채권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지난해 환율 폭등으로 혼쭐이 났던 한국도 오일머니 유치를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슬람 금융을 이해하려면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Shariah)를 알아야 한다. 샤리아는 알라신이 내린 계시록인 <코란>과 예언자 무하마드의 언행을 주요 법원으로 삼고 있다. 샤리아의 문헌적 의미는 ‘인간이 사막의 오아시스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다.

이슬람 금융이 가는 길목엔 이자가 없다. 왜 이자 수수를 금지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자 없이 금융거래가 가능할까?

자본주의에서 이자란 화폐의 사용에 대해 지급하는 대가다. 즉, 돈의 값어치다. 그런데 샤리아는 화폐의 시간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돈의 자기 증식 결과인 이자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코란>엔 ‘신이 장사는 허락하셨지만 고리대금은 금지했다’고 돼 있다. 대출을 해주고 받는 이자는 아무런 노동의 투입 없이 나오는 기생적 행위라고 본 것이다. ‘노동가치설’을 완성한 마르크스와 ‘금리 생활자의 안락사’를 이야기한 케인스를 두루 엮는 가히 혁명적 발상이 아닌가.

 

이슬람 금융상품은 반드시 실물거래를 동반한다. 실물자산을 거래하거나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이자가 아닌) 이윤을 창출해 수익을 배분한다는 원칙을 지킨다(물론 ‘눈 가리고 아웅’ 꼴이 될 위험은 있다).

또 확정 수익을 보장하지 않고 사업의 성과로 이익이 나와야 배분한다. 자금을 빌린 사람은 수익이 발생할 때까지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없어 유리하다. 무이자 금융은 배분의 공평성뿐만 아니라 투자자본의 효율성을 높인다. 상환 능력이 아닌 사업 능력을 보고 대출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윤을 만들려면 돈이 건전한 곳에 쓰여야 한다. 이슬람 금융은 비도덕적 거래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술·담배·포르노·도박·무기 등과 관련된 기업과는 금융거래를 하지 않는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사회적 책임투자(SRI)의 제한 대상과 비슷한 ‘윤리적 펀드’인 셈이다.

도박성이 짙은 기업을 상대하지 않듯 금융 자체도 도박(투기적인 거래)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파생금융상품 투자가 금지됐다.

재밌는 건 선물거래를 금지한 유래다. ‘태중에 있는 새끼의 가치를 예측해 미리 어미 낙타를 매매하지 말라’는 <코란>의 규정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결과가 불확실한 거래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불확실한 사고에 대비하는 보험상품도 논란이 됐다. 소액의 보험료로 고액의 보험금을 받는 것은 투기적 행위라는 혐의도 덧붙여졌다. 다행히 교리상 상호부조라는 취지를 더 높이 사서 보험거래를 용인했다. 보험을 가리키는 ‘타카풀’(Takaful)이란 용어가 본디 상호부조의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생명보험에 해당하는 ‘가족 타카풀’은 보험금을 사전에 합의할 수 없고 고액도 안 된다. 그러니 무슬림 사회에선 보험금을 노린 위장 범죄도 일어나지 않을 터이다.

 

‘자금 퇴장의 금지’라는 샤리아의 금융 원리도 눈길을 끈다. 모든 자금이 경제에 투입될 수 있도록 돈을 장롱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또 자산의 일정 비율을 사회에 ‘희사’토록 한다. 희사는 금융자산은 물론 유동자산에도 해당된다.

그럼 아랍의 사막에서 대표적 유동자산은 뭘까? 낙타다. 그래서 희사는 ‘사막의 가난한 여행자들이 낙타를 얻어 탈 수 있도록‘ 부과하는 세금으로 상징된다.

부의 재분배와 부자들의 부당한 축재를 막는 이슬람 금융의 공공성을 잘 보여준다. 부유층의 구린 돈을 시장으로 유인하려 ‘묻지마 채권’(자금의 출처를 따지지 않는 무기명 채권)을 발행하는 한국의 현실과 퍽 대조적이다.

 

무슬림의 금욕을 글로벌의 탐욕이 가만 놔둘 리 없다. 샤리아가 조금씩 무뎌지며 이슬람에도 파생상품이 고개를 내밀었다.

(흙탕)물과 기름(오일머니)은 섞일 것인가? 오직 알라만이 알 것이다. 인샬라!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 윗 글은 '한겨레 21'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감사합니다.